트라우마 가진 두 남녀의 결정적 차이

김동근 2022. 11. 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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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더 브릿지>

[김동근 기자]

 
 영화 <더 브릿지> 포스터
ⓒ 애플티비+
 

우리는 살면서 때론 피해자가 되고 때론 가해자가 될 때도 있다. 어느 누구도 가해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비록 범죄나 심각한 폭력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억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사소한 문제들이 발생할 경우 서로 이야기하고 용서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얻는다. 긍정적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도 하는데, 이런 과정이 우리가 겪는 아주 일상적인 인간관계일 것이다. 

물론 관계가 악화되기도 한다. 서로 오해가 깊어지면서 관계가 멀어진다.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려고 시도하지만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가까운 가족 간에 그런 관계가 되기 쉽다. 자신의 자아가 생기면서 부모님과 멀어지기도 한다. 대화를 하지 않으면 서로가 가진 생각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겪는 회복의 과정

영화 <더 브릿지>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린지(제니퍼 로렌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었다가 차량 이동 중 적군의 공격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는 장면이 영화의 초반을 채우고 있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받은 듯한 그는 아주 조용하게 재활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멍하니 앉아서 허공을 보고 있는 모습과 어려운 재활에 힘들어하는 모습은 그가 가지게 된 트라우마가 얼마나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 <더 브릿지> 장면
ⓒ 애플티비+
 

린지가 재활 치료를 마치고 엄마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엄마가 있는 집에 가지만 여전히 불편해 보인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색하다. 영화는 그녀가 왜 그렇게 엄마와 집을 불편해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하는 표정과 행동을 따라가며 여전히 트라우마 속에 갇혀있는 린지의 모습을 비출 뿐이다.

린지는 차 수리를 하러 갔다가 자동차 정비공은 제임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를 만나게 되고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자주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런데 두 사람에겐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한 공통점이 있다. 린지가 군에서 차량을 타고 이동 중에 적군의 공격을 받아서 얻은 트라우마가 있다면, 제임스는 과거 자신이 가족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차가 뒤집히는 사고를 냈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재미있는 건, 린지는 자신이 머무르는 고향 집에서 멀리 떠나려고 하는 것이고 제임스는 반대로 집에만 머무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관심을 가지는 건 두 사람이 가진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데 있다. 두 사람이 가진 트라우마는 비슷하지만 무척 달라 보인다. 린지는 집이 싫지만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제임스는 집에서 가족과 머무르고 싶지만 가족을 두고 떠나는 상황에 직면한다. 

서로의 트라우마를 위로하는 린지와 제임스

영화가 따라가는 린지는 사실 어린 시절에 겪은 일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오빠가 약물 중독으로 감옥에 간 이후 엄마와 살면서 불행한 일을 겪었다. 

이런 린지 앞에 나타난 제임스라는 사람은 자동차 사고 이후 자신이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린지와 제임스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죄책감의 유무다.
 
 영화 <더 브릿지> 장면
ⓒ 애플티비+
 
또한 린지가 제임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측은함이 있다. 나보다 불쌍하다는 생각, 그러니까 동정심이 더해져 자꾸만 제임스와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린지는 가족과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잃은 제임스를 만나면서 편안함을 느꼈겠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를 보며 위안도 얻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낀다기 보다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삶을 이어갈 힘을 얻는 관계로 보는 편이 맞다. 

영화 <더 브릿지>는 린지가 심리적으로 회복되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따라간다. 영화에는 극적인 순간이 없다. 하지만 불안정한 린지가 집에서 엄마와 겪는 갈등상황이 불안감을 전달하고, 제임스와의 대화는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린지의 트라우마가 회복되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처럼 그 세밀한 감정들을 잘 전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제임스가 가진 트라우마와 죄책감 역시 무척 설득력 있게 그린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심리치료를 받은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린지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군인 역할을 무척 실감 나게 하고 있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수수한 옷차림, 그리고 공허해 보이는 눈빛은 진짜 군인의 모습이다. 그가 제임스와 교류하며 조금씩 눈빛이 살아나는데 이 또한 자연스럽다.

제임스 역을 맡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과거에 코믹한 역할을 많이 맡았던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는 무척 심각한 역할을 맡았는데 트라우마와 죄책감 속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인물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이 영화의 제작사는 최근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그리고 공포영화에서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A24다. 두 배우의 열연은 애플티비+를 통해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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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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