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나이 많다고 더 가져가나"…MZ 분노 묵살한 '꼰대법'

김기찬 2022. 11.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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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9월 22일 서울 중구 정동 1928 아트센터 컨퍼런스룸에서 MZ세대 노조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고용노동부


"일은 우리가 했는데, 나이 들었다고 더 많은 월급에 성과까지 챙겨가는 건 꼰대 아니냐."

"법이 왜 내 개인 시간을 컨트롤 하나. 일이 있어서 휴가를 쓰려는데 회사 사정을 내세워 내 시간을 맘대로 주물러도 되는가. 이건 법과 회사발 꼰대행위다."

거창한 노동개혁이 아니다. 나를 존중해 달라는 MZ의 목소리다. 시대가 변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미래 노동시장의 주역이다. 노동시장 진입이 본격화하며 이미 M세대가 임원 반열에 오른 곳이 생길 정도로 세대교체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에겐 1960~70년대 공장에 출퇴근할 당시 만들어진 노동법이 안 맞다. 근무 장소가 정해져 있고, 일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는 시대에나 걸맞은 궤짝형 노동법일 뿐이다. 그 틀에서 형성된 회사의 근로문화도 이들에겐 괴리감을 들게 한다.

그런데도 이런 목소리가 산업현장에선 제대로 울리지 않고 반영이 잘 안 된다. MZ세대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노조 간부)이 임금·단체협상을 하니, 우리 얘기는 안중에 없다"는 말로 풀어냈다.

지난 9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노동개혁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 출범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와 MZ세대 근로자 간 두 차례 온라인 소통회를 비롯해 수차례 이어진 간담회에서 MZ의 불만이 표출됐다. 발언록을 들여다보면 임금체계와 근로시간에 대한 개선 요구가 많다.

9일 '2022 중앙포럼'에서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1953년에 만들어진 노동법이 아직 현장에서 중요하고 유일한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며 "혁신적 인력운용이 가능해야 경쟁력이 높아지는데, 채용·보상·승진이 근로자가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과 벗어나 있다"고 비판했다. 혁신·자율·공정이 향후 노동시장의 키워드가 돼야 한다고 했다. 토론자로 나선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창의적 근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주 52시간, 하루 8시간이라는 근로시간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MZ의 불만과 요구는 이런 진단과 다르지 않다.

지난 8월 26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 회장(당시 부회장)이 MZ세대 직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꼰대를 위한 임금체계"

국내 임금체계의 대세는 연공형이다. 해만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다. 일의 성과나 직무와 관계없이 나이가 들면 월급이 많아지는 구조다. MZ세대는 이걸 '꼰대형 임금'이라고 성토한다.

제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임금 결정 기준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20대 근로자(구매직)가 설명을 덧붙였다. "대부분 회사가 직급을 없애는 추세다. 그런데 호봉제가 버티고 있다. 불만이 많다"는 것이다. 직급이 없어져서 따지고 보면 회사에선 같은 지위인데, 나이가 많다고 돈을 더 가져간다는 불만이다.

MZ세대의 이런 생각이 임금이나 단체협상을 할 때면 사라져, 결과적으로 MZ세대는 산업현장에서 소외된다. 한 근로자(판매직)는 "노조 또는 사원협의회가 대부분 기성세대로 구성돼 기성세대 위주로 임금협상이 진행되니 젊은 사람들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몰두하는 바쁜 탓에 공정한 임금체계를 바라는 MZ의 요구가 묵살된다는 얘기다.

심지어 "학자금이나 건강검진 같은 회사 복지는 20~30대에겐 큰 의미가 없는 구시대적인 내용이다"라는 불만까지 나왔다. 나이 든 사람만을 위한 복지제도만 확충되고, 리프레시 휴가나 미혼자 경조 지원과 같은 MZ가 원하는 복지는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복지제도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 간담회 때마다 쏟아졌다.

다만 임금체계 개편에 동의하면서도 평가에 대해선 불만이 많았다. 정보통신(IT) 업종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평가체계가 좋아도 평가자의 자질이나 능력이 충분치 못하면 직원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같은 업종의 또 다른 근로자는 "성과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평가 기준이 모호할 수 있으므로 직무에 따라 주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며 직무급으로의 전환이 평가체계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MZ세대 인식


◇"정부·제도·회사발 근로시간 꼰대"

금융업에 종사하는 30대 근로자는 "재택근무나 시차출퇴근 같은 제도는 다양하게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끝나면서 재택근무는 끝났고, 시차출퇴근은 사문화됐다"고 말했다. 회사가 정하는 방침이 일방적이어서 근로자가 시간 배분과 같은 결정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꼰대형 회사의 절대 권력 앞에 유연화 제도가 무용지물이라는 불만이다.

대기업 사무직인 30대 근로자는 "젊은 사람은 초과근로를 원하지 않는데, 나이 있는 분들이 초과근무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일이 끝난 뒤 자기 시간을 갖고 싶은데, 상사가 별일도 없이 초과근로를 하며 버티는 통에 퇴근조차 마음대로 못한다는 얘기다.

조선업의 30대 근로자는 "비가 억수같이 와서 일을 못 하면 월급이 확 준다. 햇빛 쨍쨍할 때 좀 더 일해야 (임금을) 맞출 수 있는데, 주당 52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니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일감이 많을 때는 좀 더 일하고, 일감이 없을 때는 더 일한 만큼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52시간제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설업종의 근로자는 "공사 상황에 따라 주 52시간을 맞추기 힘든 경우도 있다"며 동조했다. 연장근로를 주(週) 단위 대신 사업장이나 업종 사정에 따라 월(月) 또는 분기, 연 단위로 관리하면서 총 평균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이면 용인해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IT 업종에 종사하는 50대 근로자조차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재택근무나 유연 근무의 장점을 많이 체득했다. 그러나 수주산업에선 (납기일에 맞춰야 하는 등) 아직도 고객사 영향이 절대적이다"며 경직적인 근로시간 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고용부가 블라인드 앱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이런 요구와 일치한다. 응답자 3명 중 2명(61%)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30대 건설 근로자는 "여가활동, 자기계발, 출산 등을 위한 근무시간 조정과 그에 따른 임금변동에 대단히 찬성한다. 다만 진급 등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성세대의 인식이나 관행을 바꿀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하면 좋겠다"(30대 생산직 근로자)는 건의까지 나왔다.

무역업에 종사하는 30대 근로자는 "육아휴직을 쓸 경우에는 대체근무제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 시간을 법이나 회사가 양보하도록 강요할 게 아니라 회사가 다른 사람을 일시적으로나마 써서 업무를 처리하도록 유연한 고용·근로시간 활용 정책을 요구한 것이다.

MZ세대의 건의에는 정부나 법 또는 회사가 감 놔라 배 놔라 식으로 획일적·경직적으로 지시하고 지휘하며 묶어놔 필요할 때 휴식을 취하거나 더 일할 수 없다는 불만이 묻어난다. 정부와 제도, 회사 주도의 '꼰대형 근로시간 규제'의 유연화를 바라는 것이자 근로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보장해달라는 요구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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