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샷 부르는 핫플 제조기, 비주얼 디렉터 조미연
Q : 당신의 필드에서 비주얼 디렉터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A : 시공부터 감리, 스타일링에 이르기까지 공간을 만드는 전반적인 일을 담당한다. 쉽게 말해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을 디렉팅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전문가의 시선에서 클라이언트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여 제시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에는 비주얼 디렉팅의 영역을 브랜드의 그래픽 디자인이나 브랜딩 파트로까지 조금씩 확장해가고 있다. 최근 ‘오르’라는 여성 패션 브랜드의 BI, 브랜딩 리뉴얼부터 쇼룸 건물 신축과 인테리어까지 총괄했다.
Q : 공간은 건축, 시공, 인테리어 등 각각의 영역이 세분화되어 있다. 그런 모든 요소를 관장한다고 보면 될까?
A : 리모델링이나 건축 프로젝트 같은 경우 파트너로 함께하는 회사가 있다. 비주얼 디렉팅이라고 하면 단순히 그림만 구상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은데, 건축 소재, 마감재, 컬러와 디테일까지, 설계에 들어가는 세세한 부분에 모두 관여해 총괄한다. 하다못해 건물의 인허가에 대한 사항부터, 대지 면적에 대한 용적률, 소방법 등 비주얼 이면의 것들까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진행해야 한다.
Q : 패션 회사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어떤 경험이 당신을 공간으로 이끌었나?
A : 패션 회사에서 옷의 소재와 컬러를 기획하는 R&D 업무를 15년 정도 했다. 패션이 워낙 다양한 것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기획 파트의 일을 하다 보니 패션이 아닌 다른 시각적인 분야에까지 관심이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특히 업무와 굉장히 밀접한 매장의 구성, 인테리어, 스타일링까지 함께 진행하며 공간에 대한 시각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러다 친한 친구의 매장 인테리어를 맡아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구찌가 한창 전개하던 컬러 플레이 방식이나 레트로한 디테일에 영감을 받아 브릭 컬러 카펫, 핑크 컬러의 요소에 식물을 가미하는 식으로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건축 비전공자 시선에서 새롭게 구성한 인테리어를 업계에서 흥미롭게 바라봐주셨고, 그걸 계기로 여러 인테리어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제안해주셨다. 지금 무언가를 해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니던 회사를 떠난 건데, 여기까지 오게 됐다.(웃음)
Q : 우연한 기회로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것과 본업으로 대하는 업무의 강도나 방식 등은 많이 낯설게 다가왔을 것 같다.
A : 그래서 초반에는 거의 온종일 현장에 붙어 있었다. 하나의 공간이 다 완성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익힐 수 있다는 생각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 오가는 분들께 눈총을 받았던 때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터득한 것이 많았다. 클라이언트는 알 수 없는 현장에서의 한계점도 있었고. 덕분에 클라이언트와 현장 사이에서 조율하고 소통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 현장에 가지 않는 날에는 눈만 뜨면 관련 자료를 디깅하고 찾아보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공간의 구조, 형태, 텍스처 등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자료란 자료는 모두 찾아봤을 정도다.
Q : 반대로 패션업계에서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된 것도 있었을 것 같은데.
A : 패션 회사에서 근무할 때, 한국적인 요소를 옷에 풀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의 전통 건축물에 쓰인 패턴이나 컬러를 옷에 적용하고, 자개 문양을 단추 형태로 제작해보며 영감의 소스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나름의 훈련을 거쳤다. 덕분에 지금 아트북을 보고 영감받은 요소나 아트 피스를 공간 안에 적용하는 건 수월하게 해나갈 수 있게 됐다.
Q : 에이치픽스 도산이나 로우클래식과 같은 국내 상업 공간을 주로 진행해왔다. 이 공간들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작업기를 들려준다면?
A : 에이치픽스는 가구 매장이지만 갤러리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있었다. 가구를 판매하는 매장에 가보면 눈앞에 의자, 침대, 소파 등 여러 가구가 펼쳐져 있어 내가 원하는 제품을 찾아가게끔 만드는 구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다. 이런 평면적인 공간 자체를 갤러리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공간 구성을 다르게 가져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의도적으로 콘크리트 기둥을 더하거나, 공간을 구분하는 요소를 더해 가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 공간의 포인트였다. 매장 안에서 원하는 가구를 보러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모든 가구를 감상할 수 있는 일종의 시퀀스를 만들었다. 또 다른 포인트는 실제 미술 작품을 함께 진열해두는 것이었다. 미술 작품을 갤러리에서만 볼 수 있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실제 공간 안에 가구와 작품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구를 보러 왔다가 아름다운 작품도 보고 또 그것이 매출로도 이어질 수 있는 방안까지 자연스레 의도했다. 가구와 작품이 함께 놓여 있는 장면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소장 욕구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로우클래식 쇼룸은 가로수길에 위치한 공간을 리뉴얼하는 작업이었는데, 공간을 구상하기 전에 브랜드 분석을 선행했다.
Q : 당신이 이해한 로우클래식은 어떤 브랜드였나?
A :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 브랜드임에도 오히려 한국적인 것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유심히 봤다. 로우클래식이라는 브랜드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이게 한국 브랜드인지 일본 브랜드인지, 브랜드의 태생이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한국적 요소를 공간 안에 불어넣는 것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기존 쇼룸의 인테리어는 유리와 컬러풀한 아크릴 소재를 사용해 캐주얼한 무드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새로운 로우클래식은 한국적 물성을 가지고 정제되고 우아한 한국적인 미를 지닌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아뜰리에 KHJ 김보경 작가의 원목 조형물을 들이고, 한국적인 선이 느껴지는 행어, 돌 소재로 구현한 외벽 등의 요소로 로우클래식이 한국 브랜드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Q : 당신이 만들어낸 것엔 당신의 어떤 일면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나?
A : 문을 열었을 때 펼쳐지는 첫 장면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에게도 첫인상이 있듯 모든 공간도 고유한 첫인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화장실도 문을 열자마자 변기가 보이게 디자인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작업을 진행했던 개포동의 카페 피크는 텍타의 가구들로 구성한 공간이었는데, 텍타 본사의 캔틸레버 체어 박물관의 조형물에 영감을 받아 비계 형태의 상징적 구조물을 제작했다. 이것을 피크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볼 수 있도록 1층 한가운데 배치했다. 이처럼 어떤 공간이든 첫눈에 임팩트가 느껴질 수 있는 요소를 하나씩은 두려고 한다.
Q : 단 하나의 작업물로 당신을 대표해야 한다면 어떤 작업을 꼽을 수 있을까?
A : 에이치픽스 도산을 꼽고 싶다. 150평 남짓한 대형 공간을 진행한 첫 프로젝트였고, 여러모로 내게 터닝 포인트가 돼준 작업이었다. 갤러리라는 큰 콘셉트 안에서 건축적 요소를 살려 설계했고, 공간 안은 집의 내부를 표현한 공간, 바깥에서 집 안을 바라보는 구조로 구현한 공간, 갤러리 본연을 표현한 공간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연출하고자 했다. 에이치픽스 도산 작업 이후로 건축적 구조를 살린 디자인을 하는 데 자신감을 얻게 됐다.
Q : 패션 분야에 시즌별로 두드러지는 트렌드가 있는 것처럼 공간 비주얼에도 유행을 선도하는 흐름이 있어왔다. 비주얼 디렉터로서 체감하는 동시대 트렌드가 있다면?
A : 한동안 내추럴한 것이 강세였다가 얼마 전까지는 ‘미드센추리’라 칭하는 모던한 비주얼이 트렌드였다. 그리고 다시금 정제되고 시크한 분위기의 공간이 주목받는 것 같다. 하지만 공간마다 개성이 뚜렷한 곳이 많아지면서 이제 인테리어 트렌드라는 경계 자체가 희미해졌다고 본다. 오히려 공간을 바라보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는 것에 눈길이 간다. 실험적인 도전을 하는 공간을 보고 과거에는 거부감을 주로 느꼈다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모습으로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Q : 요즘 팔리는, 사랑받는 비주얼엔 어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나?
A : 결국 코어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과거에는 새로운 비주얼에 무조건 열광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새롭고 자극적인 비주얼만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려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공간이든 포토존에 목숨 걸기 보다는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공간에도 담고자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자연을 강조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브랜드라면 공간의 작은 요소에도 자연과 관련된 오브제를 두거나 공간 연출을 함으로써 브랜드의 본질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이런 본질적인 코어가 있어야 소비자가 공간 너머의 브랜드에 궁금증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공간을 다녀온 후 ‘거긴 어떤 제품을 파는 곳이었지? 공간의 분위기만 생각나는데’정도의 감상이라면, 그건 성공적인 공간 비주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Q : 브랜드는 지속 가능한 운영 방식을 고민하지만, 한편에서는 포토존을 앞세운 팝업 스토어가 매일같이 열린다. 그 모습이 퍽 모순적인데, ‘인스타그래머블’이라는 단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A : 일회성 공간이 무분별하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게 당연히 여겨지면서 브랜드 입장에선 만들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인식이 생긴 시대이니 말이다. 대신 팝업 스토어를 한 번 만들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임했으면 좋겠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열심히 만든 공간이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게 마음 아프다. 자극적인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공간 디자인도 리사이클링할 수 있다는 새로운 방법을 업계에 제안할 수 있으면 좋겠다.
Q : 온라인 쇼핑몰이 대거 등장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불편한 행위로 여겨졌던 한편, MZ세대의 등장은 오프라인 공간을 소비하는 트렌드를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증강현실, NFT 같은 가상 공간도 등장했다. 이 흐름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A : 실제로 젠틀몬스터나 카카오와 같은 주요 기업들이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고 들었다. 매장에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증강현실 기술로 제품을 착용해보고 그것이 구매로 이어지는 서비스가 존재하는 한편, 여전히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도 존재한다. 앞으로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이 2가지 모습이 공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편리한 쇼핑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도 물론 필요하지만, 불편하더라도 사람의 손을 통해 직접 느껴야 하는 것 역시 분명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하고 정교해질수록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행위는 더 소중해지지 않을까?
Q : 최근 본 비주얼 중 신선하다고 느낀 것이 있다면?
A : 얼마 전에 코펜하겐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느꼈던 대니시 디자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가의 좋은 가구를 모시듯이 두고 사용하는 편인데, 그들이 가구를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 칼한센앤선 의자가 공공장소에 놓여 있을 정도로 일상에서 밀접히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놀랐다. 실제로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을 받으면 사고 싶었던 의자를 산다고 하더라. 이사를 가더라도 처음 샀던 그 가구를 소중히 챙기는 마음이 대니시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투영돼 있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더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Q : 의식하게 되는 비주얼도 있나?
A : 금호 알베르에서 진행한 탬버린즈 팝업 스토어 공간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위안’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공간 구성부터 브랜딩까지 너무 잘돼 있었다. 웅크린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인스톨레이션, 향으로 풀어낸 제품, 음악 등 모든 게 콘셉트 안에서 유기적으로 구성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베르 위 공간은 뚫려 있어 비가 오는 날에는 그 인스톨레이션도 고스란히 비를 맞게 되는 구조다. 비 맞은 인스톨레이션의 모습이 좀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는 누군가의 감상 후기를 보고 과연 공간의 구조와 날씨까지 의도해 만들었을까 싶더라. 여러모로 영리하게 잘 만든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Q : 비주얼 디렉터로서 늘 새로운 결과물을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은 없나?
A :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밖에 못 했지?’라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에 강박이 생기더라. 누군가 잘 만들어놓은 공간을 보면서도 감탄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것 같고. 이런 순간을 이겨내기 쉽지 않지만,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결국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잘 만든 결과물에 보내주시는 칭찬과 피드백을 들을 때면 언제 힘들었냐는 듯 뿌듯함을 느낀다. 힘들지만, 결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이 비주얼 디렉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Q : 힘든 만큼 느끼는 보람도 큰 법이니까. 비주얼 디렉터로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A : 지금까지는 시공부터 스타일링까지 세세한 부분 하나까지 관여해왔는데, 앞으로는 큰 방향성을 잡는 일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한다. 비주얼 디렉터로서 남들보다 앞선 제안을 하려면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컬러나 소재를 사용하는 방법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 클라이언트도, 어떤 제약도 없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나?
A : 쉽게 구현할 수 없는 형태의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를테면 건물의 천장이 열린다든지,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구조를 지닌 공학적인 곳 말이다. 상상에서만 가능한 모습을 이렇게나마 꿈꿔본다.(웃음)
Copyright © 코스모폴리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