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된 시국변호사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김삼웅 2022. 11. 1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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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헌은 반공법 위반이라는 혐의를 받고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았다.

인권변호사 한승헌의 필화사건은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변호사 129명의 활동과 각계 인사들의 진정서, 문학인들의 증언이 있었지만, 권력의 각본대로 진행되는 재판에는 약효가 없었다.

 한승헌은 판사→검사→변호사를 거쳐 이제 피고인이 됨으로써 한국 사법사의 진기록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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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30] 대법원에서도 유죄가 확정돼 6년간 변호사업을 못했다

[김삼웅 기자]

   
 한승헌 변호사
ⓒ 자료사진
 
한승헌은 반공법 위반이라는 혐의를 받고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았다. 인권변호사 한승헌의 필화사건은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누가 봐도 정치보복성 구속이기 때문이다. 

이 구속사태에 대하여 변호사 129명(103명에서 추가)으로 구성된 유례없는 변호인단의 활동과 한국기자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대한변호사협회, 서울제일변호사회, 일본의 종교인ㆍ교수ㆍ법조인ㆍ언론인 등 400여 명이 진정서를 제출하고 앰네스티의 국제본부 및 각국 지부의 항의 또는 진정이 있었다.

또한 그의 글이 용공이 아님을 설명하기 위하여 소설가 안수길ㆍ유주현, 문학평론가 이어령, 시인 홍윤숙, 목사 강원용, 그리고 이우정, 수필가 박연구 등이 증인으로 나섰다.  (주석 6)

변호사 129명의 활동과 각계 인사들의 진정서, 문학인들의 증언이 있었지만, 권력의 각본대로 진행되는 재판에는 약효가 없었다. 일찍이 그가 정의한 대로 '정찰제 판결'이 자신의 경우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그를 구속기소한 서울지검 공안부 부장검사와 항소심 재판장이 고시 동기생이었다. 그들은 국가에서 준 '양지'를 배신하고 '음지'를 택한 법조계의 이방인을 '바보'로 알았을까, 아님 내심으로 부러워했을까.

9월 11일 1심 공판에서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1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변호인 사퇴 요구도 용서 못할 일일진대, 그 요구를 거절했다고 해서 2년 반 전에 이미 수만 독자가 읽은 수필을 트집잡아 반공법으로 구속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청색 수인복으로 갈아입고 플라스틱 식기와 대나무 젓가락 두 개를 들고 교도관을 따라가다가 어느 방 앞에서 멈췄다. 그가 열어주는 감방 문으로 들어가니 덜커덩 소리를 내며 등 뒤에서 감방문이 닫혔다. 이제 완벽하게 갇힌 몸이 되었다. 가족 접견도 불허, 서적 차입도 불허, 거기에다 독거수용(獨居收容)이어서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는 절대고독이었다. 심지어 교도관들조차도 내 가슴의 빨간 딱지(간첩이나 국가보안법 또는 반공법 위반자의 식별 표지)를 의식해서인지 대화는 커녕 접근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하면서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석 7)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현 한국지부) 창립총회에서 한승헌 변호사가 창립선언문을 읽고 있다.
ⓒ 국제앰네스티
 
한승헌은 판사→검사→변호사를 거쳐 이제 피고인이 됨으로써 한국 사법사의 진기록을 갖게 되었다. 변호사 자격이 박탈된 그는 이후 각종 정치사건(시국사건)의 증인과 방청인이 되었다.

워낙 재판을 서두르는데다 심상치 않은 징후가 있어서 변호인단은 판사에 대한 기피신청을 냈다. 그런데도 재판부(단독 판사)는 재판을 계속 강행했으므로 그것을 또 하나의 기피 사유로 추가했다. 상례대로 기각결정이 난 것까지는 그렇다치고 그 결정 이유가 걸작이었다.

"모든 국민은 헌법에 의하여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재판 강행은 피고인을 위해서도 이롭다는 것이었다. 

나를 잡아넣은 서울지검 공안부 부장검사와 나를 재판한 항소심 재판장이 모두 나의 고시동기생이었고, 변호인단에도 물론 동기생이 여러 사람 있었다. (주석 8)

그해 9월 11일 공판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되고, 12월 항소심에서 유죄는 마찬가지였지만 3년간 집행유예가 선고되어 풀려났다. 이듬해 11월 대법원에서도 유죄가 확정돼 6년간 변호사업을 못했다.  

주석
6> 최종고, 앞의 책, 78쪽.
7> 한승헌, <'어떤 조사' 필화사건>, <분란시대의 피고들>, 365쪽.
8> <정치재판의 현장>, 148~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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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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