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왜 '고철덩어리 미사일'을 속초 앞바다로 쐈나

장희준 2022. 11. 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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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침범' 北미사일에 러시아어 발견
지대공을 일반 탄도탄 궤적으로 발사
軍, 경사 발사로 '의도적 南 겨냥' 판단
"사정거리 300㎞… 충분히 요격 가능"

[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 북한이 분단 이래 처음으로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겨 쏜 미사일은 60년 전 개발된 SA-5 미사일이었다.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구형인 데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동체에 러시아어가 박힌 점을 미뤄볼 때 북한이 옛 소련 시절 들여온 무기로 추정된다.

다만 미사일을 기존의 용도와 다르게 발사한 탓에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으로 탐지되기도 했는데, 일각에선 우리 군의 요격체계에 혼란을 주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군 당국은 북한의 의도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의도적인 도발'이었다는 점을 강력히 규탄했다.

울릉도 놀라게 한 미사일엔 '러시아어'

9일 국방부에서 북한 미사일 잔해물 추정 물체를 공개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국방부는 북한이 지난 2일 동해 NLL 이남으로 쏜 미사일 잔해물을 인양해 분석한 결과, SA-5 미사일로 판명됐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군은 문제의 미사일이 속초 앞바다에 낙탄하자, 해군을 투입해 인근 해역을 수색해 왔다.

군이 인양한 잔해물은 SA-5 미사일의 후방 동체로, 대략적인 규격은 길이 3m에 폭 2m, 직경 0.8m로 측정됐다. 주날개 4개와 함께 동체 내부에서 액체연료통, 엔진 및 노즐의 일부 잔해가 발견됐다.

장비 표면에는 러시아어 표기가 즐비한 데 반해 조선어(한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이 러시아에서 완제품이나 부품을 들여온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다만 북한이 해당 미사일을 러시아에서 직접 수입한 것인지, 제3국에서 가져온 뒤 자체적으로 개량을 거친 것인지는 확인이 어렵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과거 소련에서 개발한 무기를 다양하게 도입해 운용해왔다"며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이 러시아제라고 단정짓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SA-5 미사일…"1960년대 개발된 구형"

동해에서 건져 올린 북한의 SA-5 미사일 동체 후방 [사진제공=국방부]

SA-5 미사일은 러시아명으로 'S-200'이라 불리기도 한다. 1960년대 옛 소련이 개발한 지대공미사일로, 온전한 본체의 길이는 10.7m에 이르며 탄두 중량 217㎏다. 북한은 과거 이 미사일을 들여온 뒤 자체 개량을 거쳐 사거리를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미 공군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밀집 배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스커드미사일과 비교하면 70~80% 수준의 추력을 낸다. 구분되는 차이점은 발사 후 추력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스커드 계열 미사일은 연료를 차단해서 사거리를 조절하는데, SA-5 미사일은 지대공의 특성상 추력 조절 기능이 탑재돼 교전 상황에서 추력의 레벨을 변경하는 게 가능하다.

SA-5 미사일을 비롯한 지대공미사일은 지상의 레이더 시스템과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목표물을 향해 날아간다. 본래의 역할에 맞게 지대공으로 발사하면 40㎞ 상공에 떠 있는 전투기까지 격추시킬 수 있다. 이때 목표물을 지나치거나 당초 계획했던 임무에 실패하게 되면 공중에서 자동으로 폭발하게끔 돼 있다.

그러나 이번 SA-5 미사일은 발사 지역의 상공에 이렇다 할 목표물이 없었을 뿐더러 '자폭'하지도 않았다. 그대로 NLL을 넘어 우리 영해에 다다를 때까지 정상 비행한 뒤 낙하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SA-5 미사일을 지대지미사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대지로 발사하면 SA-5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는 300㎞에 이른다. 남한의 중부 지역까지 타격 범위 안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軍 탐지·요격체계에 혼선 주려 했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북한이 쏜 SA-5 미사일은 정점 고도 약 100㎞로 190㎞ 거리를 날아와 속초 동쪽 57㎞ 해상에 떨어진 것으로 탐지됐다. 군은 제원상 SRBM으로 추정했지만, 북한이 지대공미사일을 지대지로 발사해 탄도미사일의 포물선 궤적을 그리게 한 것이다. 그 의도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먼저 우리 군의 탐지·요격체계에 혼선을 주려는 기만전술을 펼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러나 군은 초기에 기종을 밝혀내지 못했을 뿐 미사일이 보인 비행 궤적을 모두 탐지했다. 궤적이 걸린다는 점은 북한이 쏜 미사일이 그다지 위협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았다는 의미다.

'재고 소진'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각종 전략 무기들을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이 신형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구형 물량을 소진하려 했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이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 기간 중 35발에 달하는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하기 전까지 올 들어 구형 미사일을 쏜 것으로 포착된 전례가 없다.

단순히 재고 소진 차원이 아니라면, 북한의 미사일 재고가 바닥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개발된 지 60년 가까이 지난 구형 미사일을, 그것도 기존의 용도와 다르게 지대지미사일로 발사한 건 위력이나 전술적 의미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올 들어 다양한 고체연료 기반의 신형 미사일을 80발 넘게 마구잡이로 쏴댄 만큼 이 과정에서 보유량이 급속도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군, '北 의도'에 "명백히 의도적인 도발"

북한 탄도미사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명확한 건 북한이 SA-5 미사일을 남쪽을 겨냥한 경사각으로 발사했다는 점이다. 다른 방향으로 쐈다면 휘어지면서 남쪽으로 향해야 했지만, 그런 비행은 불가능한 미사일인 만큼 '의도적인 NLL 침범'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지대공미사일로 쐈더라면 북한의 사격통제 레이더와 미사일이 교신을 주고받는 신호가 우리 측의 감시·정찰 자산에 포착돼야 했지만, 그런 정황은 없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교전 상태가 없거나 지나쳐버릴 경우 일정한 지점에서 자폭해야 하는데 폭발하지 않고 남쪽까지 비행했다는 점 역시 의도적 도발을 방증한다.

군 당국은 북한이 '고철 미사일'을 쏜 의도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명백히 의도적인 도발이라는 점을 거듭 규탄했다. 특히 어떤 미사일을 어느 방식으로 발사하든지 결과적으로 '단거리 탄도탄의 궤적'을 보인 이상 충분히 요격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군의 엇나간 초기 판단으로 대북 방공망에 허점을 보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최고의 미사일 전문가로 꼽히는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북한은 수명이 다 된 지대공미사일을 지대지로 전환해 대남 공격에 활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이번에 시험 삼아 발사해본 것일 수 있다"며 "실제로 남한을 타격할 때 전술핵을 장착한 신형 미사일 틈에 구형탄을 섞어 방공망에 혼선을 초래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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