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6개월 준비해 한국형 '인태 전략' 내놨다…미·일과 다른 이것

정진우, 김하나 2022. 11.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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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캄보디아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국판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의 핵심 원칙과 목표를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규칙에 기반해 분쟁과 무력 충돌을 방지하고,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원칙이 지켜지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형 인태 전략은 안보보단 인프라·통상·공급망 분야 등에서의 경제 협력과 번영을 추구하고, 중국을 압박하거나 고립시키는 경쟁 구도가 아닌 개방성과 포용성에 기초한 협력과 연대에 방점을 두고 마련됐다. 또 군사적 개념으로서의 안보가 아닌 ‘포괄 안보’라는 개념을 통해 코로나19와 같은 보건위기나 기후변화 대응 등 글로벌 현안에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이 반영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국판 인도 태평양 전략의 핵심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실제 윤 대통령은 이날 한국판 인태 전략의 3대 비전으로 자유·평화·번영을, 3대 협력 원칙으론 포용·신뢰·호혜를 제시했다. 이날 윤 대통령이 발표한 비전과 원칙 하에 정부는 외교부가 주도해 인태 전략의 구체적 세부 내용을 성안해 연내에 보고서 형태로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의 인태 전략은 미·중 경쟁의 연장선상에서 특정국을 배제하거나 고립하는 대결 구도와는 무관하게, 핵심적이고 전략적 요충지인 인태 지역 내의 협력과 공존을 도모하기 위한 비전”이라며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도인 만큼 경제안보 경쟁력을 확보하고, 공급망과 통상 교역 등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번영 전략을 주로 담았다”고 말했다.


연구용역-세미나 거쳐 성안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후 6개월간 인태 전략의 핵심 내용과 원칙 등을 구상해 왔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앞서 정부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인태 전략을 수립하겠다는 구상을 처음 발표했다. 이후 외교부 북미국이 간사 역할을 맡아 아세안국 등 주요 실국과 인태 전략의 기본 원칙과 핵심 내용을 구상했다. 또 민간 싱크탱크에 연구 용역을 제안해 구체적 방향성을 설정했고, 대학 교수 등 전문가와의 세미나를 거쳐 의견을 취합했다.

정부의 인태 전략 수립 과정에 관여한 외교 소식통은 “인태 전략은 어느 한 부처의 일이 아닌 범정부 차원에서 기업 등 민간과의 협력까지 더해져야 하는 국가 단위의 과제”라며 “이미 미국과 일본은 물론 아세안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까지 인태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당사국인 한국 역시 별도의 전략 수립을 미룰 수 없는 상황으로 봤다”고 말했다.


동남아 순방 첫날 발표, 왜


인태 지역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와 동남아에 더해 인도양 국가와 호주·뉴질랜드 등을 아우른다. 경제적으론 전 세계 국내총생산(GPD)의 약 60%를 차지하고, 전 세계 해상 교역의 60%가 이 지역을 거친다. 게다가 인도와 동남아 등 잠재력이 큰 국가가 많아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미래 성장 엔진’으로 불린다.

특히 동남아는 인태 지역 내의 핵심축이자 미국이 추구하는 인태 전략의 성공 여부를 좌우할 시험대로 평가된다. 동남아에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인태 지역 내에서도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 잠재력 높은 협력 국가들이 많은데, 정작 이들 국가 중 상당수가 미·중 경쟁 사이에서 선택을 유보하는 ‘부동 국가’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인태 전략 발표 시점과 장소를 한·아세안 정상회의로 잡은 것 역시 이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인태 개념 창시한 日, 주도하는 美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동남아 순방 기간 한미 정상회담과 한미일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도 한국판 인도 태평양 전략에 대한 양자 및 3국 간 논의가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특히 윤 대통령은 한·아세안 정상회의와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로 이어지는 이번 순방에서 별도의 한·미 정상회담과 한·미·일 정상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미·일 양국은 미·중 경쟁의 관점에서 인태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은 2007년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적 개념을 처음 꺼내들어 전략화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였던 2017년 이를 차용해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전략으로 구체화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월 “중국의 패권적 도전을 좌절시킨다”는 목표로 한층 가다듬은 새 인태 전략을 발표했다.

이에 더해 한국 역시 인태 전략을 발표한 건 ‘전략적 포괄 동맹’의 길을 걷는 한·미 관계와 한·미·일 간 경제·안보 공조가 강화되는 핵심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전임 문재인 정부 때도 아세안과 인도를 대상으로 한 신남방 정책을 추진했지만, 전략의 지역적 범위와 전략 목표 등의 차이로 인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美 ‘안보’, 유럽 ‘경제’, 한국은?


한국판 인도 태평양 전략은 미국과 달리 중국 견제 기도를 드러내고나 중국을 배제하는 원칙은 담기지 않을 전망이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앞서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물로 한국판 인태 전략 수립을 제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가 미국과 유사한 내용의 대중(對中) 견제용 인태 전략을 구상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인태 전략의 구체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국 배제 색채’를 최소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의 경우 지난 2월 발표한 새 인태전략 보고서에서 동맹·우방과의 연대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명시했다. 특히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 협의체)를 인태 전략의 핵심축으로 설정하는 등 중국에 대한 공세적 기조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의 인태 전략은 중국의 패권국화에 따른 국제질서의 훼손이라는 문제 의식을 담았지만, 핵심 목표로는 경제 네트워크 및 공급망 경쟁력 강화를 설정했다. 인태 전략을 발표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인태 전략의 핵심 내용을 경제 협력 어젠다로 채우면서 동시에 중국 배제에 반대한다는 점을 핵심 원칙으로 설정했다.

한국 역시 인태 전략의 핵심 목표로 경제 안보 관점의 통상 협력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같은 기조는 “공급망의 회복력을 높임으로써 경제 안보를 강화하고 협력적, 포용적 경제·기술 생태계를 조성해 공동 번영을 달성해 나가고자 한다”는 윤 대통령의 이날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도 드러난다.

동시에 윤 대통령이 지속해서 강조한 자유·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연대의 필요성이 담길 예정이라고 한다. 인권 문제 등은 중국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이슈다. 다만 이와 동시에 “특정국을 배제하거나 고립시키는 것이 아닌 자유주의 지역 질서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함께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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