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구나”… 두 눈 빠진 채 사료먹던 페키니즈의 사연 [개st하우스]
외부 충격에 눈 튀어 나온 듯
수술 후 다른 삶에 빨리 적응
“지난 8월쯤 외부의 강한 충격을 받아 두 안구가 빠져나온 가엾은 페키니즈가 유기견 보호소에 입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시신경 다발이 노출될 만큼 끔찍한 중상을 당해 치료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어요. 누가 봐도 죽음을 앞둔 절망적인 상태였죠. 그렇지만 아이는 그 와중에도 코로 냄새 맡으며 힘겹게 사료를 먹더라고요. 살고 싶구나…. 그 모습을 보고 꼭 살려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유기견 봉사자 모임, 페키구조대 남해강(27) 대표
동그란 얼굴에 눌린 코, 쏟아질 듯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귀여운 견종이 있습니다. 시츄, 페키니즈, 불도그, 치와와처럼 납작한 얼굴을 한 개들을 묶어서 단두종(flat faced dog)이라고 부릅니다. 그 중에서도 페키니즈는 성견이 돼도 강아지 시기의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을 그대로 간직해서 반려견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단두종의 귀여운 외모는 머리 작은 개체끼리 번식을 거듭한 근친교배의 슬픈 결과물이죠. 단두종은 작은 두개골 때문에 호흡곤란과 안구질환으로 평생 큰 고통을 겪습니다.
사연의 주인공인 2살 페키니즈 주원이의 두 눈이 튀어나오게 된 것도 단두종이 가진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마도 외부 충격이 있었을테고, 원래도 약한 두 눈이 튀어나오게 된 겁니다. 수의사는 주원이 상태가 심각하다고 진단했습니다. 부상이 너무 심해서 치료를 받더라도 사망할 위험이 크다고 했죠. 하지만 제보자 해강씨는 주원이를 구조해 치료하기로 결심합니다.
주원이가 발견된 것은 지난 8월 28일입니다. 두 안구가 얼굴에서 빠져나온 채 죽어가는 어린 페키니즈가 강원도 원주보호소에 입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사실 주원이라는 이름은 ‘원주’에서 구조한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진 속 녀석의 눈가는 피로 흥건했습니다. 보호소에 따르면 주원이는 안구에 연결된 시신경 다발이 드러날 만큼 심각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치료한다고 살아날까. 해강씨와 동료들은 처음에는 구조를 주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원이는 그 와중에도 힘겹게 사료를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수술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녀석은 위에서 소화액 분비도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해강씨는 구조를 결정합니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사료를 받아먹는 주원이를 보며 살고자 하는 간절함을 느꼈다”며 “사연을 알리면 많은 시민이 응원해줄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 수의사에게 문의한 결과, 안구 주변이 감염돼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수술을 받으면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는 소견을 받습니다.
해강씨는 즉시 구조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지역 봉사자의 자가용을 이용해서 주원이를 원주보호소에서 안구수술이 가능한 서울 정말로동물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주원이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습니다. 수술을 담당한 정아영 수의사는 “안구는 큰 충격으로 인해 돌출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진료 당시 시각반응이 전혀 없었고 이미 심각한 오염이 진행돼 적출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주원이는 24시간 수액처치로 수술을 견딜 체력을 비축한 뒤 지난달 3일 안구를 적출하는 큰 수술을 받습니다. 회원들로부터 250만원을 후원받아 수술비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 포천에서 애견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제보자 해강씨는 버려진 페키니즈를 구조하는 페키구조대 대표이기도 합니다. 시민 1000여명이 모인 페키구조대는 2019년부터 유기동물보호소에 입소한 페키니즈를 긴급구조하는 SNS 동호회. 봉사자를 모집하고 치료비를 모아 입양을 추진하죠. 그렇게 지난 4년간 34마리를 구조했습니다. 주원이를 구조한 것도 바로 페키구조대였습니다.
페키니즈는 불법 펫숍에서 60만~100만원의 분양비를 요구하는 고급 견종이지만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단두종 특성상 안구, 호흡기에 유전적 장애를 안고 태어나 견주에게 버림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해강씨는 “보호소에서 발견된 페키니즈의 상당수는 시력상실이나 안구탈출 같은 안구질환을 앓아 치료비를 모금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해강씨는 어쩌다 페키니즈 한 견종에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해강씨가 페키니즈와 인연을 맺은 건 2005년. 당시 10살이던 해강씨는 어린이날 선물로 하얀 페키니즈 ‘뽀야’를 선물받게 됩니다. 해강씨와 유년기를 함께한 뽀야는 지난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종 특유의 호흡기 질환인 단두종호흡기증후군, 폐수종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16년간 뽀야를 간호하고 매끼 약을 챙기는 것은 해강씨의 몫이었죠.
해강씨는 “인간의 욕심이 만든 이 견종을 힘닿는 데까지 구조해 인간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며 “저는 친자매처럼 자란 페키니즈를 정말 사랑하지만 유전병이 많은 이 견종을 더 번식시켜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해강씨는 구조 이후 입양처를 찾지 못한 2마리의 페키니즈를 자택에서 직접 돌보고 있습니다.
그 뒤 주원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다행히 두 안구를 제거한 얼굴 부위는 후유증 없이 아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원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삶에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비록 낯선 장소에서는 물건에 부딪히는 등 다소 어려움을 겪지만 두어 번 오가며 익숙해진 실내와 산책로에서는 발달한 청각과 후각을 활용해 자유롭게 걸어 다닙니다.
지난 5일 국민일보는 경기도 포천에서 보호 중인 주원이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11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주원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넓은 잔디밭을 능숙하게 돌아다녔습니다. 또한 실내에서도 배변패드 위에 정확히 소변을 보고, 후각을 이용해 밥그릇을 찾아갔죠. 미애쌤은 “개들은 후각과 청각이 발달해 시각을 잃은 노령견이나 장애견들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미애쌤이 소리가 나는 고무공을 던져주고, 입에 물어 당기는 장난감을 제공하자 주원이는 신나게 갖고 놀았습니다.
주원이는 동물병원에서 집도의의 돌봄을 받으며 입양처를 찾고 있습니다. 해강씨는 “주원이는 다른 견종이나 고양이와 사회성도 좋아서 칼, 가위 등 날카로운 물건만 바닥에 두지 않는다면 실내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산책을 좋아하는 친구라서 하루 한 번 산책할 수 있는 보호자를 만났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페키니즈 주원이의 가족이 되어줄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길 바랍니다.
-2살 추정, 5.8kg의 중성화 수컷
-다른 개, 고양이 등과 잘 어울림. 공격성 없음
-앞을 볼 수 없지만 후각으로 배변패드, 밥그릇을 잘 찾아다님
-산책을 좋아하며, 목줄 착용하면 안전에 문제없음
■페키니즈 주원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00번째 견공입니다 (83마리 입양 완료)
-주원이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인스타그램 @savethepeki에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이성훈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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