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플랫폼 ‘짝퉁과의 전쟁’… 신뢰회복 사활
명품 플랫폼 업계가 가품 논란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그동안 명품 플랫폼들은 “판매하는 모든 상품은 100% 정품을 보증한다”고 홍보하며 급성장해 왔다. 하지만 플랫폼에서 판매한 제품이 가품으로 드러나는 사례가 잇따른다. 병행수입, 구매대행 등 복잡한 유통구조가 안고 있는 한계 때문이다. 불안감이 커지자 플랫폼들도 검수 시스템을 강화하고 유통구조 변화를 꾀하고 있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발란에서 지난달 판매한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스투시의 ‘월드투어 후드집업’은 리셀 플랫폼 ‘크림’으로부터 가품 판정을 받았다. 공식 온라인몰에서는 품절로 구할 수 없는 제품이다. 이 제품은 발란에서 출시가(16만7000원)의 배를 넘는 30만원에 판매됐다. 반면 리셀 플랫폼 ‘크림’은 제품 라벨과 시리얼 넘버 등이 정품과 다르다며 가품으로 판단했다.
발란의 가품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에도 발란에서 175만원에 판매된 운동화 ‘나이키 에어 조던1X트레비스 스캇 레트로 하이 모카’가 한국명품감정원으로부터 가품 판정을 받았다. 이미 같은 제품을 지니고 있던 소비자가 소재, 로고 모양 등에서 이상함을 느껴 정품 검수를 맡긴 결과다. 당시 해당 제품을 판매한 발란의 입점업체는 “일본 업체에 속았다”고 해명했다.
지난 2년간 명품 플랫폼 업계는 ‘100% 정품’을 앞세우며 급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가품 원천차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병행수입업자나 구매대행업자가 입점한 오픈마켓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병행수입은 명품 브랜드의 공식 판권·유통권을 보유한 업체가 직접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개인, 일반업체가 별도 경로로 물건을 들여와 판매하는 걸 말한다. 해외 백화점이나 편집숍 등에서 풀린 물량을 수입해 아울렛, 온라인몰 등에서 백화점보다 20~30%가량 싸게 판다.
명품 브랜드에서 생산한 제품이 국내 플랫폼에 유통되기까지 여러 손을 거쳐야 한다. 일반적으로 ‘브랜드→부티크→현지 에이전시→병행수입업체→플랫폼’의 경로를 거친다. 플랫폼에서 판매된 제품의 가품 여부를 알려면 판매 당사자인 병행수입업체가 통관·구매 증빙 서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만 직접 수입하지 않거나 구매대행, 에이전시와 같은 3자 대행방식으로 유통하는 경우 제품 출처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유통 과정이 복잡하다 보니 속이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가품을 끼워넣을 수 있다.
명품 플랫폼 입장에서는 수천명의 판매자가 파는 상품을 전수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더 많은 상품을 들여오기 위해 입점업체를 늘리는 과정에서 판매자 검증이 부실해지기도 한다. 현재 발란에는 병행수입업체 1000여곳이 입점해 있다. 부티크 직매입과 병행수입을 3대 7의 비중으로 운영한다. 트렌비도 전체 취급 상품의 60%를 직접 조달하고, 40%는 병행수입 등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대부분 병행수입으로 유통되는 머스트잇은 현재 8000여명의 판매자가 입점해 있다.
명품 플랫폼들도 이런 취약점을 알고 있다. 대부분 업체가 가품 판정 시 100~300% 보상제를 운영하는 이유다. 트렌비는 아예 사설 감정기관까지 설립했다. 국내외에서 40여명 규모로 운영하던 자체 명품 감정팀을 독립 법인으로 분리해 ‘한국정품감정센터’를 세웠다. 트렌비 관계자는 “명품 플랫폼에 있어 가품 이슈는 숙명과도 같다. 가품 유통 차단의 핵심은 사후 보상제도가 아닌 사전 검수 시스템에 있다”고 말했다.
유통구조를 바꾼 플랫폼도 등장하고 있다. 캐치패션은 병행수입, 구매대행 없이 명품 브랜드와 직접 계약하거나 브랜드를 공식 유통 판매하는 글로벌 이테일러사와 파트너십을 맺는다. 호텔스닷컴, 스카이스캐너 등과 같이 파트너사의 판매채널을 한곳에 모아 연동하는 것이다. 급성장하고 있는 젠테도 유럽 부티크와의 직접계약 체결로 기존의 복잡한 유통구조를 일원화했다. 현재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에 있는 부티크 100여곳과 직계약으로 제품을 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가품 이슈가 반복할수록 명품 플랫폼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캐치패션 관계자는 “온라인 명품 구매 경험이 늘수록 최저가만을 찾기보다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취향에 따라 원하는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날 것”이라며 “고가의 해외 명품 구매는 정품 공급처 관리가 최우선이다. 정품 검수나 보상제도 등의 투자 대신 새로운 가치 제안에 집중할 수 있다. 정품이냐 가품이냐 논란이 커질수록 옥석을 가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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