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나이 듦과 성장은 다르다
우리의 인생은 때론 행복하고 때론 불행하다. 우리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평범하고 사소했던 그 하루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는다. 인생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건전지처럼, 심지가 얼마 남지 않은 촛불처럼 유한하다. 이런 우리의 인생이 눈부시려면, 바다에 떨어진 황혼처럼 눈부시게 떠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월은 재빠르게 지나간다. 어느새 아이에서 청소년이 되고, 순식간에 성인에서 노인이 된다. 그러나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어디까지 나이를 먹는 것, 나이 듦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난 후 유년기에서 청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를 거치며 성장하는 데는 고통과 시련이 따른다. 그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다.
미국의 작가 마야 안젤루는 “껍질이 벗겨지는 아픔이 없이는 열매가 열릴 수 없듯이 젊은이도 유년기와 사춘기의 아픔과 절망을 겪지 않고서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온갖 불행을 겪으며 자랐지만 소설가, 시인, 가수, 배우, 영화감독, 교수, 인권 운동가 등으로 활동해 희망의 상징이 됐다. 그것은 사랑이 고통을 치유해 주었고, 이를 통해 성장했기에 가능했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이 고통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과정을 야곱의 ‘천사와의 씨름’에 비유하고 싶다. 자신을 축복해주기 전까지는 보내주지 않겠다고 천사와 씨름하던 구약성서의 야곱처럼, 난관에 봉착하면 치열한 씨름을 해야 한다. 이 천사와의 씨름에서 ‘찬란한 패배’를 하더라도 그것은 성장의 과정이다. 인간은 역경을 견뎌낼 뿐만 아니라 역경을 통해 오히려 성장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문제에 부딪히면 용기와 지혜가 필요해지는데, 사실 이때 용기와 지혜가 생겨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모건 스콧 펙은 “문제에 직면할 때 없던 용기와 지혜가 생기며 이때 인간은 영적·정신적으로 성장한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성장하는 데 고통과 시련이 따른다는 것이다. 안젤루의 말대로 유년기와 사춘기의 아픔과 절망을 겪지 않고서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랄 수 없다. 그렇다고 성장을 위해 일부러 고통에 부딪힐 필요는 없지만, 기왕 만난 고통이라면 성장으로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통을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약 고통을 만났다면 먼저 ‘내가 운이 없거나 내가 약해서 지금 마음이 힘든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잘 견디고 있는 내 마음을 토닥여주고 안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또는 고통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는 능력이다. 고통에는 신비한 ‘속죄의 힘’이 있다. 이 힘은 우리가 겪는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을 뜨게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다.
지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다. 나이 드는 것이 두렵고 점점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힐까, 치매나 노환으로 고통을 겪게 될까 걱정하며 산다. 그러다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알 길이 없음을 진정으로 깨달은 후에야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게 된다. 너무 늦기 전에 행복한 삶의 의미를 찾아보자.
오늘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나를 행복하게 하고 성취감을 느끼게 했던 중대 사건들은 무엇인가.”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하면서 가치 있었던 활동들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나를 어떤 인물로 기억하길 바라는가?” “삶의 전환점이 됐던 사건,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만일 삶을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다르게 하고 싶은가.”
이론적으로는 나이가 들면 느긋해질 뿐만 아니라 자신이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영성이 깊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 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영적 훈련이나 영적 여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은 나이 듦을 새로운 모험과 축복의 길로 인도해준다. 결국 인간의 지혜는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감과 사랑의 정서, 자기성찰의 의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성의 결과물이다. 지혜는 노인이 됐다고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얻어진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토대로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면 우린 노년의 지혜를 선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젊음이 떠난 자리에 지혜가 남기를 바라본다.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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