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예수 시대나 지금이나 희생양 찾는 데 급급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한 여인을 예수 앞으로 데리고 왔다. 율법에 따라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며 예수를 시험하듯 묻는 이들에게 예수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을 돌로 쳐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말에 떳떳하지 못했고, 결국 직전까지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외치던 군중은 하나씩 자리를 떠났다. 성경 요한복음에 나온 일화다.
서울 이태원에서 지난달 29일 벌어진 압사 사고로 156명이 맥없이 쓰러졌다. 꽃다운 청춘이 대부분이었던 이번 참사에 많은 이들이 슬퍼했다. 하지만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가족의 아픔을 보듬기도 전에 참사의 책임부터 묻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이 인파 뒤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를 외치며 사람들을 밀어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는 의혹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제기됐다. 사람들은 그를 발본색원하고자 그의 신상을 캐기 시작했다. 또 한쪽에서는 외국의 귀신 놀이 축제에 참여해서 그렇게 됐다며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한 논객은 칼럼에서 “아득한 옛날 사람들은 재앙이 오면 ‘원인’을 찾는 대신 ‘범인’을 잡아 없애곤 했다. 물론 그걸로 문제가 해결될 리 없지만, 이 주술적 관행이 적어도 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은 주었을 게다. 우리는 거기서 얼마나 진화했을까”라고 되물었다.
이번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으며 공동체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논조에 공감이 갔다.
미국 국토안보부 차관보를 지낸 국가안보·재난관리 전문가인 줄리엣 카이엠은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서울의 극심한 인구 밀도가 사건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서울 시민들은 사람으로 가득한 공간에 익숙하다”며 “이러한 성향 때문에 거리가 인파로 가득 찬 상황에서도 크게 경각심을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뇌 구조에 자리 잡지 않았던 인파와 군중으로 인한 압사 사고의 위험성에 이제부터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과거 비슷한 압사 사고가 발생했던 일본에서는 지자체에서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행사가 열리는 도쿄 시부야의 모든 거리를 돌아다니며 위험한 장소를 미리 점검해 두었다고 한다. 일본 언론들도 핼러윈 행사 전날 시민들이 안전을 위해 알아야 할 사항을 상세히 보도했다고 한다.
‘안전 수칙은 피로 쓰였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사회에 경각심이 일고, 사후 대책이 정립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대책을 논하기보다는 희생 제물을 찾는데 급급한 것 같다.
이 모습에서 십자가형에 처한 예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앞서 간음한 여인의 사건처럼 예수가 율법을 거스르며 사람들을 선동한다며 예수에게 ‘신성 모독죄’를 씌웠다.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만 시원했으나 오히려 자신에게 죄를 물었던, 마음에 ‘죄책감을 심어준’ 예수가 미웠던 군중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다.
그들 논리에 따라 ‘사회 혼란’을 일으킨 한 명을 제물로 삼고 십자가형에 처해야만, 누군가가 자신들의 죄를 대신해 본보기로 죽어야만 속이 풀렸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 책임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위정자들의 모습이 지금도 재현되는 듯하다. 이번 참사로 인해 우리 모두 각자의 마음에 자리 잡았을 희생자들을 향한 부채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결국, 누군가를 제물로 바쳐야만 속이 풀리는 건가.
시시비비는 가려야 한다. 이성적으로 잘못된 구조와 제도를 밝혀야 한다. 감정적이어야 할 부분은 피해자와 그 유가족의 희생과 슬픔을 보듬는 일에만 필요하다.
지금도 사람들은 외친다. “토끼 머리띠 한 사람을 잡아 돌로 쳐라!” “대처 못 한 말단 경찰을 잡아 돌로 쳐라!” “서양의 귀신 놀이가 좋다고 놀러 간 이들을 잡아 돌로 쳐라!”
이들의 아우성이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희생자들의 흐느낌을 덮는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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