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의 축구로 선교하자”… 골 때리는 그녀들 열정의 ‘킥 오프’

양민경 2022. 11.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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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헤브론 주최 ‘여성 미니축구 문화축제’를 가다
여자 축구팀 5곳이 지난 5일 인천 부평구의 한 풋살장에서 열린 ‘2022 월드헤브론 여성 미니축구문화축제’에 참가했다. 공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예수로 FC, 헤브론 FC, 하나 FC, 태국 FC, 이웃사랑 FC. 월드헤브론이 마련한 트로피엔 최우수선수상을 뜻하는 MVP대신 기량발전상을 의미하는 MIP가 새겨져 있다. 월드헤브론 제공, 그래픽=신민식


“경기장 입장하는 선수들, 다 손잡고 들어가세요. 자꾸 손잡아야 서로 친해질 수 있습니다.”

때아닌 가을 한파로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지난 5일 오전 10시 인천 부평구의 한 실외 풋살장. 두터운 패딩 점퍼 속에 유니폼을 갖춰 입은 여성 40여명은 곳곳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경기 준비에 여념 없는 이들에게 국제축구문화협력사업단 월드헤브론 대표 류영수(69) 목사가 주문한 건 ‘서로 손 잡고 입장하라’는 것. 손을 자주 잡다 보면 상대가 적이 아닌 친구로 보인다는 이유다. “저는 경기장 입장할 때뿐 아니라 훈련에 앞서 찬양하거나 기도할 때도 꼭 손을 잡으라고 권합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기회가 거의 없는 이 시대에 손을 마주 잡고 서로 온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참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축구 유니폼을 입은 여자들이 손을 맞잡은 이번 행사는 ‘2022 월드헤브론 여성 미니축구문화축제’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카타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16강 진출 기원을 위해 월드헤브론이 주관했다. 여자축구팀 5곳이 참가했는데 이 중 3곳이 한국교회와 인연이 있다. 헤브론 FC는 축교선교팀이고 예수로 FC와 이웃사랑 FC는 교회 소속 여자 축구팀이다. 나머지 2곳은 사회인 축구팀이다. 2018년 창단한 하나 FC는 행사의 경기장인 풋볼장에서 연습하는 인천 부평의 여자축구팀이다. 태국 FC는 태국인 예배공동체가 있는 인천 주안장로교회 성도가 주축이 돼 올해 출범한 신생팀이다. 주로 태국 이주노동자나 이들의 아내로 구성됐다.

나이·국적·종교 달라도… 축구로 우정 다지는 여자들
하나 FC와 헤브론 FC 선수들이 경기 전 손 잡고 입장하는 모습. 월드헤브론 제공

이날 행사는 ‘문화축제’란 이름에 걸맞게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다만 경기 규칙은 엄격히 적용했다. 부상 방지는 물론이고 월드헤브론의 핵심 가치인 ‘평등’ ‘우정’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다. 주최 측은 평등한 경기를 위해 초·중·고교 시절 운동선수로 활동한 이들은 출전을 금지했다. 이번엔 특별히 헤딩과 태클도 최대한 억제하기로 했다. 공중볼 경합을 하다 부상당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처럼 헤딩이나 태클로 선수들이 크게 다칠 것을 우려해서다.

경기 전 유니폼과 축구 장갑 등 축구용품 착용 여부 확인은 필수다. “축구문화를 익히려면 장비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는 류 목사의 철학이 반영됐다. 이 때문에 아직 유니폼을 갖추지 못한 태국 FC는 헤브론 FC의 유니폼과 장갑을 빌려 경기에 임했다. “뭔가 지킬 게 많다고 여길 수 있지만, 축구는 공동체가 하는 운동입니다. 축구도 일종의 공동체이기에 상대를 향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 배려란 바로 경기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축구를 축제처럼 즐길 수 있습니다.”

행사를 우정의 장으로 만들려는 주최 측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은 또 있다. 최우수선수상(MVP·Most Valuable Player) 대신 각 팀당 기량발전상(MIP·Most Improved Player)을 준비한 것이다. 축제 자리인 만큼 득점보다 노력에 더 높은 점수를 주자는 의도다. 각 팀 감독의 추천을 받은 선수들은 경기 후 MIP를 받아들고 환하게 미소지었다. 나이와 국적, 직업과 종교도 제각기 다르지만, 축구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선수들은 큰 부상 없이 경기를 마무리 짓고 다음 경기를 기약했다.

골 때려 얻은 것?… 육아 해방, 건강 증진, 이웃 사랑!
이웃사랑 FC와 헤브론 FC 선수들이 웃으며 볼 경합을 하는 모습. 월드헤브론 제공

토너먼트가 아닌 풀리그(full league) 형식으로 순위를 매긴 이번 행사의 우승팀은 헤브론 FC였다. 2승 2무로 하나 FC와 같은 성적을 냈지만 골 득실에서 앞서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헤브론 FC에 합류해 이날 팀의 MIP로 선정된 이미경(36)씨는 “우승도 기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폰을 만지는 대신 운동장을 뛰며 건강하게 시간을 보낸 것이 굉장히 의미 있게 느껴진다”고 했다. 두 딸과 경기장을 찾았다는 이씨는 “축구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육아에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다. 운동장에 들어가면 온전히 나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내가 건강해야 가족도, 더 나아가 교회와 나라도 건강하게 세워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년간의 사회 축구 경험으로 노련한 경기 운영을 보여준 이명숙(57) 하나 FC 대표도 “축구를 하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건강해야 가족도 건강해진다”며 축구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코로나19로 한동안 경기를 못 하다가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감독님께 여러 기술을 배웠는데 그 훈련 자체도 참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이런 친선 경기를 계속 마련해 지역 사회 축구문화가 활성화됐으면 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태국 FC는 팀 창단 후 연습 한 번 못 하고 치른 첫 경기였지만 4경기 중 1승을 챙겼다. 이날 출근해야 하는 선수들이 있어 일부 경기에서 전력 누수가 있었음에도 얻은 귀중한 승리였다. 이날 태국 FC MIP를 받은 수파펀 릿노라칸(49)씨는 “축구하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참 반가웠던 시간”이라며 “무엇보다 우리 태국 사람과 축구를 하며 예수님을 알릴 기회가 생긴 것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에도 여자 축구 바람 불길
월드헤브론 대표 류영수(가운데) 목사가 지난 5일 인천 부평구의 한 실외 풋살장에서 경기 전 월드헤브론 관계자들과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월드헤브론 제공

국내 여자축구 위상이 올라가고 관련 예능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면서 직접 공을 차보려는 여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월드헤브론은 이런 추세와 최근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힘입어 한국교회에도 여자축구 열풍이 확산되길 기대하고 있다. 박종호 한국기독교축구선교연합회(한기축연) 한국본부장은 “목회자가 주축인 한기축연에서 활동하며 느낀 건 교회 구성원과 소통하고 건강한 교회를 이뤄가는 데 축구가 제 기능을 톡톡히 한다는 것”이라며 “한국교회에 여자축구단이 여럿 만들어지고 활동도 활발히 이뤄진다면 교회 내 소통은 물론이고 복음 전파의 수단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축구로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확대하는 교회는 이미 여럿이다. 교회에서 지은 풋살장을 개방하거나, 성도를 중심으로 구성한 축구팀에 지역주민을 영입하는 식이다. 문준호 월드헤브론 사무국장은 “이번 행사에 참여한 한 교회가 풋살장을 만든 지 3개월 됐는데, 같이 운동하며 우정을 나누던 한 가정을 최근 신앙의 길로 인도했다고 들었다”며 “건전한 축구문화가 향후 한국교회의 건강한 부흥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드헤브론은 오는 20일 개막하는 카타르 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교회에 300개 여자축구단이 세워지길 기대하고 있다. 월드컵(11월 20일~12월 18일) 이후 불어날 여자축구 특수 영향을 고려했다. 한국교회에서 축구팀이 융성했던 시기는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직후로 당시 1000여개 축구단이 활동했다. 류영수 목사는 “토트넘 홋스퍼 FC나 에버튼 FC 등 영국 프리미어리그 여러 축구단이 교회 축구팀에서 시작했다. 꼭 프로축구팀 창단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교회서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축구를 배우고 즐긴다면 그 자체만으로 한국 기독교 문화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검소, 친절, 겸손 등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한 축구문화가 사회 전반에 퍼져 축구가 복음의 통로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목회자가 된 류 목사에게 이번 월드컵 성적 예상을 물었다. 그는 “야박한 말일 수 있지만 실력 차가 나는 국가와의 경기는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 비길 경기는 이기고, 질 경기는 비길 수 있는 기량이 대표팀에 생기도록 기도할 뿐”이라며 웃었다.

인천=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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