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혔나" 원화값·코스피 급등...한은 '베이비스텝' 밟을까
미국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잦아드는 기미에 전 세계 증시가 반색했다. 11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3.4% 급등하며 지난 두 달의 하락분을 만회했다. 탄력을 받는 건 주가지수만이 아니다. 원화가치는 이날 하루에만 60원가량 오르며 달러당 1310원대로 올라섰다. 오는 2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란 예상에 무게가 실린다.
11일 증권 시장은 '파티 타임'이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3.4% 오른 2483.16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 8월 26일(2481.0) 이후 77일 만에 2480선을 회복했다. 코스피가 3%대 상승 폭을 기록한 건 지난해 1월 8일(3.97%) 이후 1년 10개월여 만이다. 코스닥 지수도 전날보다 3.31% 오른 731.22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밤 나스닥(7.35%) 등 뉴욕 증시의 상승세를 이어받았다.
특히 긴축과 상극인 '성장주'가 간만에 약진했다. 카카오페이는 상한가를 기록했고, 카카오와 네이버도 각각 15.55%, 9.94%씩 급등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기관은 9916억원, 외국인은 6921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개인은 1조6630억원어치를 팔았다.
외국인이 '사자'에 나서며 원화값도 뜀박질을 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59.1원 오른(환율 하락) 달러당 1318.4원에 거래를 마쳤다. '1달러=1310원'대를 밟은 건 지난 8월 17일(종가 달러당 1310.3원) 이후 처음이다. 하루 상승 폭은 세계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4월 30일(4.38%) 이후 최대다.
시장에 봄바람이 분 건 전날 미국의 물가 '피크 아웃(정점 통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다.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7.7% 상승했다. 8개월 만에 7%대로 내려왔다.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6.3%·전년동월대비)도 4개월 만에 상승세가 꺾였다.
물가가 잡힐 기미에 긴축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긴축이 밀어 올린 달러 강세도 고개를 숙였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2%가량 급락해 107선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공적 기관 해외투자계획 조정과 중국의 입국자 코로나 19 격리 기간 단축 등도 원화가치를 밀어 올렸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오전에는 미국 물가(상승 압력이)가 예상보다 낮아지면서 금리 인상 기조 완화 기대감이 원화가치를 끌어올렸고, 오후에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환 헤지 비율 확대 기대감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완화 소식에 원화가치가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원화가치가 안정되고 미국 물가가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며 한은이 긴축의 보폭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오는 24일 금통위에서 '베이비 스텝'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한국경제학회와 공동 개최한 국제컨퍼런스 개최사에서 "최근 들어서는 인플레이션과 환율이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속도도 제롬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는 “미국 물가의 7%대 하락은 굿(좋은) 뉴스”라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의 물가 안정 흐름이 계속 이어질지와 국내 금융과 경제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본 뒤 이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결정을 하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시장 전망은 '베이비스텝'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권희진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이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며 "크레디트 시장의 유동성 경색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보니 한은이 이번 금통위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제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Fed는 다음 달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빅스텝) 올리며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며 "Fed의 최종금리 전망치를 연 4.75%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도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서며 이번 금통위에서는 베이비스텝을 단행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시장이 긴축 감속의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지만 (물가 지표의) 한 달 치 호재로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Fed 관계자들이 과도한 기대감에 선을 긋고 있어서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한 달 치 데이터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긍정적인 물가 지표가 여러 번 나와야만 안심할 수 있다"며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도 인플레 둔화를 반기면서도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높다"며 "통화정책이 당분간 더욱 제약적인 수준이 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고 평가했다.
김연주·정은혜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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