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업무 관리·감독 땐 ‘불법 파견’
지방에 위치한 A회사는 늘 구인난에 시달려 생산납기를 맞추기 어려웠다. 인건비 부담에 매출이 얼마나 늘어날지 확신도 없었기 때문에 신규 인력 채용보다 라인 일부를 떼어 다른 B회사에 도급을 주고 B회사 근로자들에게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그런데 어느 날 B회사 근로자들이 A회사 대표에게 자신들을 직접 고용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인건비를 아끼려고 직원 채용을 몇 년간 유보한 채 일부 라인을 도급 준 것인데 갑자기 B회사 근로자 고용을 책임지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깜짝 놀란 A회사 대표가 필자를 찾아와 자문을 요청했다.
A회사 대표는 B회사 직원들과는 고용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 우리 노동법상 근로자를 고용하면 함부로 해고할 수도 없다. 섣불리 인력을 채용했다가 그만큼 매출이 안 나오면 인건비 감당이 안 되니 외주 인력을 활용했을 뿐이다. A회사 대표는 B소속 근로자를 고용해야 할까.
▶ 도급 계약과 파견 계약 달라…파견 근로자에겐 업무 지시 가능
노동법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불법 파견’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노동법은 도급 계약에 아무런 법적 제한을 부과하지 않는다. 도급 계약은 일을 맡은 수급인이 어떤 일을 완성하면 도급인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다. 따라서 도급인은 약정한 일의 결과를 받으면 되지, 이를 넘어 수급인이 수행하는 업무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통상 도급 계약을 체결하면 도급인이 수급인 근로자에게 직접 업무 지휘를 하기도 하고 감독을 하는 등 마치 도급인의 근로자인 것처럼 근태 관리를 하는데, 이러면 불법 파견이 된다. 이렇게 일을 시키려고 했다면 도급 계약이 아닌 ‘파견 계약’을 체결했어야 했다. 파견법이라는 별도 법률에 따라, 외주를 주더라도 파견 계약을 체결하고 법적 요건에 따라 근로자를 파견받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이 경우 파견을 받는 회사는 파견 근로자를 직접 지휘·감독하면서 작업을 시킬 수 있다.
대신, 파견법은 파견을 받는 회사에 여러 제한을 가한다. 파견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은 총 2년 이내여야 하고, 파견을 받을 수 있는 업무 제한과 허가 요건 등이 있다. 이런 요건을 위반하면 형사 책임이 부과되거나 민사상 파견 근로자를 고용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이렇게 까다로운 법적 제한을 피하기 위해 그동안 회사들은 파견 계약 대신 도급 계약을 체결해왔다. 그런데 실제 도급 계약 체결 후 업무를 할 때 도급인은 수급인 근로자 업무에 시시콜콜 개입해서 지시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외주를 줬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업에 필요한 작업이므로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도급인이 업무 지시를 하고, 작업 방법을 정할 거면 도급을 주면 안 된다. 파견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것이다. 도급 계약을 체결하고서는 마치 파견 근로자를 사용하는 것처럼 업무 지시를 하고 관여한다면, 이는 불법 파견으로 간주, 도급인에게 수급인 소속 근로자를 고용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A회사 대표는 수급인 근로자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감독·관리했으므로, B회사 근로자의 직고용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 A회사 대표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근로자인 것처럼 지시·감독하면서 관리하려면 직접 고용하거나 파견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파견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무런 법적 규제가 없는 도급 계약을 체결했다면 그만큼 불편함도 감수하고 수급인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도급을 줄 때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3호 (2022.11.09~2022.1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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