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 아성 무너뜨린 전동차의 ‘다윗’
‘다윗이 골리앗을 제쳤다.’
국내 전동차 시장 얘기다. 종전까지 전동차 시장 전통의 강호는 현대로템(골리앗)이었다. 그런데 후발 주자 우진산전이 등장, 압도적 1위로 알려졌던 대기업을 제치고 수주 1위를 차지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재계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국정감사 이후 더욱 화제가 됐다. 일부 정치인이 현대로템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올리면서 추가 세금 투입, 코레일의 만성 적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리를 펴려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우진산전이 국내 전동차 시장점유율 1위였다. 우진산전은 2020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수주액이 1조1945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현대로템은 우진산전 수주액의 3분의 1 수준인 3412억원(15%)을 수주하는 데 그쳐 3위로 내려앉아 있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진산전이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하는 여론이 증폭됐다.
▷ 1974년 전동차 부품 국산화로 시작
우진산전은 1974년 김영창 회장이 창업한 전통 있는 회사다. 창업 당시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동차 국산화를 위한 부품 국산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열차 부품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해 전동차를 조립하던 시절이었다. 김 회장은 상공부가 계획한 1단계 국산화 부품인 ‘속도 조절용 저항기’를 자체 개발하기 위해 철도 산업에 뛰어들었다. 속도 조절용 저항기는 모터 회전수를 조절해주는 부품으로 열차가 움직이고 멈추게 하는 핵심 부품이다. 우진산전이 이 부품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사업은 본궤도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어 1980년대 초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함께 외국에 의존해오던 국내 철도 차량 핵심 전장품도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후 철도 차량 신기술(PMSM), 주요 장치에 대한 납품 실적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고무차륜경전철, 모노레일, 철제차륜경전철, 대형 전동차 제작까지 가능할 정도로 기술력을 키워왔다.
최근에는 신사업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전기차 사업이 대표적이다. 전동차용 전장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전기버스에 적용, 개발에 성공했다. 우진산전 기술력이 집약된 ‘아폴로1100’을 시작으로 급속 충전식 중형 저상 전기버스 ‘아폴로900(9m급)’과 ‘아폴로750(7.5m급)’ 버스가 지금은 서울, 경기, 부산, 대구, 대전, 청주, 김해, 전남 일대 등을 누비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작은 철도 부품업체에서 전동차와 전기버스 중심의 사업 영역을 축으로 완성차를 제작, 납품하며 신교통 시스템을 이끌어가는 중견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 조달 시장 입찰 방식 바뀌며 두각
업력이나 기술력 등에서 상당한 내공을 쌓았다는 우진산전. 그럼에도 이번 국감 이후 오히려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받은 부분도 있다.
‘저가 수주 수혜주’라는 지적이다.
2020년 우진산전의 매출액은 2566억원. 그런데 지난해 3440억원대로 훌쩍 뛰었다. 수주 잔고도 1조원을 넘겼다. 한 분야에서 수주 사업을 하는 제조업체치고는 이례적인 성장세다.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로템이 사실상 독점하던 국내 전동차 시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단시간 내 급성장은 분명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이를 정부 조달 정책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철도 차량은 통상 한번 만들면 25~30년 정도 사용한다. 전동차는 대부분 1980년대 도입됐다. 2015년 이후 전동차 교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변화 속에 국내 조달 시장은 2019년 이후 2단계 규격·가격 분리 동시 입찰제로 전환했다. 이 입찰제는 1단계 평가에서 최소 기준을 충족하고, 2단계 평가에서 가장 낮은 가격만 제시하면 공급업체로 선정되는 방식이다.
입찰 기준이 바뀌면서 우진산전은 2019년 서울 지하철 5·7호선 336칸, 2020년 코레일 1호선 신조전동차 410칸과 일산선 80칸, 부산 1호선 200칸, 서울 4호선 260칸 등을 잇달아 수주했다. 일부 업계 종사자는 “새로운 입찰제는 기술력, 적기 납품에 대한 보장이 부족하더라도 수주가 가능하다. 우진산전이 다른 업체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해 수주를 휩쓸었지만 납기는 지키지 못해 문제가 많다. 애써 국산화를 하고 있던 영역도 해외 부품을 써서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날 선 비난을 하기도 한다. 동시에 저가 수주를 하면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여력이 사라지면서 국내 철도 산업 자생력, 경쟁력이 뒤처질 것이라는 일부 업계 우려도 제기됐다.
▶ 우진산전 입장은?
▷ “차곡차곡 기술력 쌓아” 항변
우진산전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우진산전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윤을 남기지 못할 정도의 저가 수주는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대기업이 독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 기업이 도산하거나 새로운 기업이 진입하지 못할 정도의 낮은 가격 전략으로 적정 가격을 제시한 우진산전이 수주에 실패했던 시기도 있었다. 우진산전이 무리하게 저가 수주를 했다면 철도업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우진산전은 2020년 영업이익 71억원, 지난해는 135억원으로 꾸준히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연구개발, 생산설비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 확산 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공장 증설에 나서 전동차 생산량을 이전보다 2배 이상 늘린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우진산전은 해외에서 오히려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항변한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등의 시장에서는 전동차 핵심 부품인 추진제어장치, 보조전원장치 업그레이드 사업을 완수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서 운용 중인 APM 전동차, 쿠알라나무 국제공항과 반다르 칼리파(Bandar Khalipah) 지역을 연결하는 노선에서 운용 중인 데무(DEMU) 전동차도 우진산전 제품이다. 회사 측은 “기술력을 입증받지 않았다면 수출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논란 어떻게 정리?
▷적극적인 해외 진출로 국내 시장 탈피
철도업계에서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전동차 시장이 경쟁 입찰로 바뀌면서 5392억원(10.7%)의 예산 절감이 이뤄졌다는 분석 자료(코레일, 서울교통공사 합산)가 있다. 경쟁 체제의 장점, 즉 시장 논리가 작동한다는 말이다. 추후 입찰 기준만 보완한다면 이런 체제를 꼭 비난할 것만은 아니라는 여론도 존재한다.
더불어 우진산전이 국내 시장뿐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로 외화벌이를 한다면 저가 입찰 논란에서 한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미 우진산전은 태국과 홍콩 국제공항에 일부 E&M 시스템을 수주했는가 하면 미국 매사추세츠주 교통국에서 발주한 보조전원장치 84량 업그레이드 사업 등 2개 주로부터 수주한 사업을 완수하기도 했다. 미국 다른 4개 주 전동차방송장치, 보조전원장치 등 업그레이드 사업, 신규 차량에 장착되는 전장품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우진산전 관계자는 “중견 기업으로서 다른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강점이 ‘기동력’이다. 해외 시장 수주 역시 대규모 물량보다는 경쟁 대기업들이 노리지 않는 소규모 열차 수주로 물꼬를 트고 있다. 미국, 아시아 시장 등 공항 셔틀 차량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많은데 단위 물량이 적다 보니 대기업들이 나서기에 주저하고 있는 ‘틈새시장’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2호 (2022.11.09~2022.1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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