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권의 감성골프] 그린 키퍼는 어젯밤 아내와 싸우지 않았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2022. 11. 1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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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정현권의 감성골프'가 매경이코노미 온라인 판에 시작합니다. 골프 경험, 심리, 매너, 룰, 패션, 레슨, 카풀, 클럽 등 다양한 소재를 인문학 발걸음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골프는 필드에서 클럽을 휘두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행위이며 여기에서 흥분하고 감동합니다. 격주로 금요일마다다양한 소재를 때로 교수, 프로선수, 정신과의사 등 전문가 도움도 빌려 맛깔 나는 칼럼을 약속 드립니다.

매일경제에 입사해 기자 부장 국장을 거친 필자는 현역시절 골프 담당을 한 인연을 살려 현재 골프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대학골프연맹 공정위원으로도 활동합니다.

“오늘 투온을 하고도 4퍼트를 두 번이나 저질러 미치겠어요. 샷은 괜찮은데 막상 그린에서 타수를 두 배나 까먹고 멘털이 말이 아닙니다.”

지난주 남양주 한 골프장에서 동반자가 그린을 빠져나오며 탄식했다. 필자와 재미나게 게임하는 경쟁 상대다. 워낙 빠른 그린 스피드에다 홀마다 라인 읽기가 까다로운 곳에 핀이 꽂혀 모두 쩔쩔 맸다. 그린에서 승부가 갈렸다.

그린에서 핀 위치 결정이 궁금하다. 핀 위치에 대한 골프 룰은 따로 없다. 영국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이다. 골프장이 상황에 맞게 꽂으면 그만이다. 대부분 골프장이 주말이나 공휴일에 핀을 평이한 곳에 배치한다. 어렵게 꽂으면 퍼트 시간이 길어져 팀이 밀리기 때문이다.

내장객이 적은 월요일이나 평일에는 까다로운 곳에 꽂는다. 평일 그린에서 타수가 더 많이 나오는 이유다. 프로 대회에서는 라운드마다 핀 위치가 다르다. 마지막 날 핀이 가장 어렵게 꽂힌다. 핀 위치는 크게 4개 구역이다. 즉 그린을 4개 핀존(Pin Zone)으로 나누고 구역마다 다시 4개로 쪼개 관리한다.

골프장들은 최소 14개 핀 위치를 확보한다. 코스 설계자 의도에 따라 핀을 꽂는 것도 중요하지만 잔디 상태가 관건이다. 잔디연구소에 따르면 홀을 옮겨 구멍을 메우고 잔디가 원래대로 복구되는 데 14일 소요된다. 이마저 잔디를 밟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다.

최소 14개 핀 위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근 생긴 골프장 그린은 작고 굴곡도 많아 핀 포지션이 적은 편이다. 이래서 그린 가장자리에 핀이 자주 꽂히며 잔디 상태가 좋지 않다는 증거다.

미국골프협회는 핀 위치와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린 가장자리에서 3m 이상 정도 떨어지고 그린 경사가 끝나는 지점에서 1m 정도 멀어야 한다. 1m 기준은 보통 그린 스피드에서 볼을 굴렸을 때 멈추는 지점이다. 빠른 그린 스피드로 요즘은 1m 지점에서도 볼이 잘 멈추지 않는다.

그린을 관리하는 그린 키퍼(Green keeper)는 경사에서 더 멀리 핀 위치를 찾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자연 그린 중심에서 멀리 가장자리로 핀이 옮겨 간다. 이런 조건에서 가로, 세로 각각 3m 정사각형 면적에서 핀 위치가 결정된다. 정리하면 코스 설계자 의도를 존중하되 잔디 상태, 당일 내장객 수, 기상 조건 등이 고려 요소다.

그린을 공략할 때마다 그린 키퍼가 꼭 앞에서 핀을 바꾸는 장면을 본다. 하필 그날 20번째나 30번째 팀이었기 때문이다. 핀을 변경하는 기준은 보통 핀 주변을 100~150명이 밟았을 때다. 한 팀은 캐디를 포함해 5명으로 20팀(100명)이 그린을 밟으면 핀을 교체한다. 여름에는 15팀(70명)이 지나갈 때마다 핀 위치를 바꾼다.

그린 키퍼는 20번째 팀이 그린을 빠져나올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핀 위치를 옮긴다. 같은 팀만 스토커처럼 따라붙으면 부담을 주기에 19번째와 21번째 팀을 오가며 작업한다.

핀이 고약하게 꽂히면 “그린 키퍼가 전날 와이프와 싸웠나”라는 농담을 한다. 그린 키퍼가 자기 맘대로 핀을 꽂는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인데 그는 아내와 싸우지 않았다. 핀은 지그재그 순서로 꽂는다. 그린 오른쪽 앞에 핀을 꽂으면 다음에는 왼쪽 가운데, 그 다음은 오른쪽 뒤편이다. 다시 왼쪽 앞 이런 순서로 핀 위치 14곳을 정한다.

핀을 꽂아야 하는데 잔디 상태가 좋지 않으면 딴 곳을 찾으려 다른 그린 키퍼와 정보를 공유한다. 물론 잔디 상태 판단은 주관적이기에 그린 키퍼가 핀 위치 결정에 어느 정도 재량은 있다.

핀 위치를 18홀 전부 어렵게 하면 오히려 변별력이 없다. 6개 홀마다 상중하 난이도로 핀 위치를 설정한다. 골프장별로 보통 2개조로 나눠 9홀씩 핀 위치를 조정한다. 홀을 바꿀 때마다 위치를 모두 공유하기에 조건은 균등하다. 처음이 앞 핀이면 다음 홀은 중 핀, 세 번째는 뒤 핀 등 6개씩 핀 위치를 적절하게 배치해 재미를 더한다.

핀 색깔과 꽂는 위치는 골프장마다 다르다. 빨강은 앞 핀, 흰색과 노랑은 중앙, 파랑과 검정은 뒤 핀이다. 핀을 꽂는 홀 직경은 108㎜, 깊이는 최소 101.6m㎜ 이상이고 원통은 지면에서 최소 25㎜ 아래 묻는다.

2019년 마스터스 마지막 날 2타차 선두 몰리나리와 공동 2위 피나우가 모두 12번 짧은 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렸다. 우즈는 땅콩 그린 오른쪽 가장자리에 꽂힌 핀을 보지 않고 아예 멀리 중앙에 공을 안착시켰다. 둘 다 더블 보기를 범한 사이 파를 잡은 우즈는 결국 역전 우승했다. 우즈는 이듬해 이 홀에서 공을 세 번이나 물에 빠트려 8온 2퍼트(7오버타) 대참사를 당하고 홀을 빠져나왔다. 천당과 지옥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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