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노조간부에 대한 ‘악의 축’ 표현 모욕죄 무죄 취지 파기환송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노동조합 간부들을 '악의 축'이라고 표현한 노조원에게 모욕죄 유죄를 인정한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노조 집행부를 비판하며 조합 운영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다소 모욕적인 표현이 사용됐다고 해도 정당행위에 해당돼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A씨에게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유죄를 인정,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모욕죄의 위법성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부산의 한 버스회사에서 운전기사로 근무하던 A씨는 사실은 2017년 8월 6일 회사 노조지부장인 B씨로부터 연차유급휴가수당에 대해 허위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으면서도, B씨를 비방할 목적으로 같은 해 12월 배모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광수대에 채용비리 제보를 했다는 이유로 B씨를 비롯한 노조 간부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허위사실을 얘기해 뉴스에 보도되도록 함으로써 B씨로부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또 부산버스노동자협의회 회원이었던 A씨는 2018년 5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집회 일정을 알리는 글을 올리면서 "버스노조 악의 축, 김OO, 최OO 구속수사하라!!"고 적어 두 사람으로부터 모욕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김씨는 1991년부터 2008년까지 부산지역버스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았던 인물로, 사건 당시에는 부산지역버스노동조합의 상임지도위원이었고, 최씨는 위 부산지역버스노동조합의 사무처장이면서 부산지역마을버스노동조합의 지부장을 맡고 있었다.
검찰은 A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 법원은 A씨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는 유죄로 본 반면, 모욕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기재된 '악의 축'이나 '구속수사하라'는 등의 표현은 수사기관의 적절한 수사를 통한 사실관계 확인을 촉구하며, 노조위원장 직선제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표현으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정당행위)에 의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다.
A씨는 다른 버스 기사들과 함께 부산버스노동자협의회라는 소규모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단체는 소식지를 만들어 ▲퇴직금 누진제 폐지 및 그 과정에서의 의견수렴절차 미비에 대한 비판 ▲퇴직금 누진제 폐지의 대가로 받은 돈에 대한 적정성에 대한 의문제기 및 노동조합 소유 재산의 운영에 대한 투명한 공개 촉구 ▲노동조합 위원장 선출에 대한 직선제 요구 등 자신들의 주장을 담아 버스기사들에게 배포했고, 집회를 열면서 '버스노조 악의 축 김OO 전 위원장을 구속하라', '버스노조 40년 몸통 최OO 사무처장을 구속수사하라'는 등의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게시한 글은 '노동조합의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을 위해서는 노동조합 위원장 직선제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므로, 많은 참석을 바란다'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은 위 소식지 내지 현수막 등과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고 할 것인데, 이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피고인은 수사기관의 적절한 수사를 통한 사실관계 확인을 촉구하며 직선제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그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고, 위 소식지에서 지적하는 내용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까지 보이지 않으며, 피고인이 게시한 글 전체에서 모욕적인 표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심은 1심과 달리 A씨의 모욕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A씨가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과, 피해자와의 민사소송에서 패소해 위자료를 지급한 점 등을 고려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사는 1심의 모욕죄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며 "A씨의 표현은 조합원들에게 김씨와 최씨가 범죄행위의 주범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데, 부산버스노동자협의회에서 2018년 5월호 소식지를 통해 제기한 의혹들에 대해 이 무렵 수사를 촉구한 사실도 없고, 의혹들이 진실일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객관적인 정황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근거 없이 범죄행위의 주범인 것처럼 표현한 것은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검사의 항소가 이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다시 결론이 뒤집혔다.
재판부는 먼저 모욕죄에 관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원용했다.
앞서 대법원은 "어떤 글이 모욕적 표현을 담고 있는 경우에도 그 글이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사실을 전제로 해 그 사실관계나 이를 둘러싼 문제에 관한 자신의 판단과 피해자의 태도 등이 합당한가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자신의 판단과 의견이 타당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다소 모욕적인 표현이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대법원은 "인터넷 등 공간에서 작성된 단문의 글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해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표현도 지나치게 모욕적이거나 악의적이지 않다면 마찬가지로 위법성이 조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피고인(A씨)이 사용한 이 사건 표현은 피해자들의 사회적인 평가를 저해시킬 만한 경멸적인 표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피고인이 노동조합 집행부의 공적 활동과 관련한 자신의 의견을 담은 게시글을 작성하면서 이 사건 표현을 한 것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노동조합의 의사형성 과정에 참여하고 내부문제에 대해 의견 개진을 비롯한 비판 활동을 할 권리가 있다"며 "피고인 등 협의회 회원들은 위와 같이 조합의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조합 재산의 투명한 운영, 위원장 직선제 등을 요구하고 있었고, 피고인은 그 주장을 하기 위한 집회 참여를 독려하면서 이 사건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조합의 운영 등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위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악의 축'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북한 등을 일컬어 사용한 이래 널리 알려지면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상대방 측의 핵심 일원이라는 취지로 비유적으로도 사용되고 있어 피해자들의 의혹과 관련된 이 사건 표현이 지나치게 모욕적이거나 악의적이라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구속수사하라!!'는 표현은 협의회에서 2018년 5월호 소식지를 통해 제기한 의혹들에 대해 수사기관의 적절한 수사를 통한 사실관계 확인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위 부분 자체로는 피해자들의 사회적인 평가를 저해시킬만한 경멸적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게시한 글의 전체적인 내용은 조합의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조합 위원장의 직선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므로 많은 참석을 바란다는 취지"라며 "피고인이 게시한 글 전체에서 이 사건 표현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표현에 대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유죄로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모욕죄의 위법성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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