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남세균 독소 검출 논란에 계속 말 바꾸는 국립환경과학원

강찬수 2022. 11.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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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민 50%가 마시는 수돗물을 원수를 취수하는 매곡취수장 앞 낙동강에 녹조가 진하게 발생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지난 7월 대구 수돗물에서 녹조를 일으키는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의 독소가 검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후 이와 관련된 논란이 석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특히,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서는 수돗물에서 남세균 마이크로시스틴 독소가 검출된 사실이 없다며 여러 차례 반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환경과학원은 계속 말을 바꾸고 있어 스스로 신뢰와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은 지난 7월 21일 대구환경운동연합이 대구 정수장 3곳의 수돗물을 채집해 부경대 식품영양학과 이승준 교수팀에 남세균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 분석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효소 결합 면역 흡착법(ELISA)의 분석 키트를 사용해 측정한 이 교수팀은 대구 고산정수장에서는 0.226 ppb, 매곡정수장에서는 0.281 ppb, 문산정수장에서는 0.268ppb의 총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환경과학원 빌려온 키트로 실험


지난 7월 26일 대구 문산취수장 앞 낙동강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녹조 원인 생물인 남세균이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이에 대해 국립환경과학원은 산하 낙동강물환경연구소에서 같은 시료를 분석한 결과, 수돗물에서는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즉각 반박했다.

또, 액체 크로마토그래피(LC-MS/MS)를 사용한 분석에서도 독소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환경과학원은 "ELISA 방식은 정확도가 떨어져 LC-MS법을 사용하기 전에 사전 조사 용도로 사용될 뿐, 수돗물에서 남세균 독소를 정량하는 방법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낙동강 물환경연구소도 ELISA 키트를 사용해 수돗물을 분석한 것이 지난 8월이 처음이었다는 점이다.

키트도 환경과학원 내 다른 부서에서 빌려서 사용했다.
반복 측정을 통한 측정치의 정도관리(精度管理)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당시 낙동강 물환경연구소가 원수에서 측정한 값을 보면, 마이크로시스틴 6종을 측정한 LC-MS 측정값은 0.547~1.551ppb, ELISA로 마이크로시스틴 270여 종을 측정한 총 마이크로시스틴 농도는 0.345~1.107ppb였다.

일부 성분만 측정한 LC-MS 측정값이 오히려 더 높아 측정치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거엔 ELISA 키트 개발 지원도


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강원대 연구팀이 효소결합면역흡착법(ELISA) 키트를 개발했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
환경단체 등에서는 ELISA법이 미국 환경보호국(EPA)에서도 공인한 측정 방법이라고 맞섰다.

더욱이 과거 환경과학원에서도 "독소를 간편하게 측정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며 학회에서 발표한 바 있고, 국내에서 ELISA 키트를 개발하는 연구도 지원하기도 했다.

낙동강네트워크·낙동강대구경북네트워크 등 영남권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 1일 오전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대구 수돗물 녹조 독소 오염 파동에 대한 환경부와 대구시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도중 일부 회원들이 달성군 매곡정수장 인근 낙동강에서 퍼온 물을 투명 용기에 따른 뒤 대구시장 항의방문과 서한문 전달을 시도하며 청사 정문 앞에서 청원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스1

환경과학원은 다시 "8월 23~24일과 8월 29~30일에 각각 낙동강 수계 10곳 정수장의 원수와 수돗물을 채집해 분석했는데도 ELISA와 LC-MS 두 방법 모두 수돗물에서는 독소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원수에서는 LC-MS로 측정했을 때 마이크로시스틴 6종을 합산한 농도 기준으로 8월 23~24일에는 0.059~1.189 ppb, 8월 29~30일에는 0.014~0.839 ppb가 검출됐다는 것이다.

8월에는 인천 환경과학원 본원에서 직접 분석했는데, 이곳 상하수도연구과도 ELISA 키트를 처음 사용하긴 마찬가지였다.

환경부 물환경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낙동강 물금-매리 지점 표층에서 LC-MS로 측정한 마이크로시스틴 측정값은 7월 18일 2.8ppb였고, 7월 25일에는 41.9ppb까지 측정됐다.

이는 상하수도연구과가 아닌 조류경보제와 관련해 환경과학원 물환경연구과에서 측정한 수치다.
이는 이 교수팀이 분석할 당시 낙동강 원수에 독소 농도가 높았을 수 있음을 주는 값이다.

하지만 물환경연구과 측정치에서도 8월 22일 이후에는 물금-매리 지점 등에서도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강정고령보에서도 7월에는 0.3ppb가 검출됐는데, 8월에는 검출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환경과학원은 녹조가 심하지 않을 때 측정한 값을 바탕으로 수돗물에서 남세균 독소가 검출되지 않으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셈이다.


"정량한계는 검출한계의 3배"란 주장도


미국에서 수돗물 마이크로시스틴 검출 흐름도. 효소결합면역흡착법(ELISA)를 먼저 사용하고, 농도가 0.3 ppb 보다 높으면 액체크로마토그래피(LC-MS/MS)로 추가 분석하고, 이보다 낮으면 그 검출 결과를 보고하고 또다른 독소를 추가로 검사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
국립환경과학원은 이 교수팀이 내놓은 측정치에 대해 미국 환경보호국(EPA)의 최소 보고 농도인 0.3ppb를 밑돌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불검출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ELISA 키트의 검출한계는 0.1ppb이고, 실제로 측정치가 의미를 가지려면 정량한계(통상 검출한계의 3배 수준)보다 높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미국 EPA는 6살 미만의 어린이에 대해서는 0.3ppb, 6살 이상의 어린이와 성인에는 1.6ppb의 권고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대구 수돗물에서처럼 0.3ppb 이하로 검출됐다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자신이 사용한 키트는 환경과학원이 사용한 것과 달리 검출한계가 0.016ppb였다고 밝혔다.

환경과학원 주장대로 검출한계의 3배인 0.048 ppb를 정량한계라고 해도 대구 정수장 수돗물의 측정치가 0.2ppb 이상이고, 정량한계보다 높아 유효하다는 게 이 교수의 입장이다.

낮은 농도에서도 건강에 해를 끼치는 독소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더 낮은 농도에서도 검출할 수 있는 성능이 개선된 키트를 사용하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성능 개선된 ELISA 키트 사용 안 해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5월 18일 오후 인천 서구에 위치한 국립환경과학원을 방문해 과학원 업무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 제공]
환경과학원은 이 교수의 키트가 EPA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환경과학원은 예산을 들여 검출한계가 0.016ppb인 키트를 부랴부랴 샀는데, 실제 사용하지는 않았다.

환경과학원 측은 구매 이유에 대해 "이 교수와 비교 실험을 위해 샀다"라고 해명했는데, "태풍 힌남노 때문에 9월에 예정했던 낙동강 수계 수돗물 분석 실험이 취소되면서 새로 산 키트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교수는 "해외에서 많은 연구가 우리와 동일한 ELISA 키트를 사용해서 실험하고 논문을 발표하는데, 환경과학원 주장대로라면 그 많은 연구가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본지 확인 결과, 남성 정자 속 남세균 독소를 측정한 중국 연구팀도 ELISA 키트를 사용했고, 이 실험에서 평균값·중간값 자체가 0.16ppb였다. 환경과학원이 말한 0.3ppb보다 훨씬 낮다.


미국 미네소타 수돗물 기준은 0.1 ppb


지난 7월 경남 창원지역 수돗물을 취수하는 낙동강 본포취수장 앞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고, 상수원수의 녹조 농도를 낮추기 위해 물을 뿌려 녹조를 밀어내고 있다. 낙동강 네트워크
이 교수 측은 또 미국에서는 ELISA로 측정한 총 마이크로시스틴 농도가 0.3ppb 이하라도 무시하지 않고, 따로 보고하고 관리에 활용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상당수의 정수장에서는 LC-MS 방법은 사용하지 않고 ELISA법만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버몬트 주는 수돗물이든 상수원수든 총 마이크로시스틴이 0.16ppb 이상 검출되면 즉각 시민들에게 알리고 취수를 중단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는 아예 수돗물의 마이크로시스틴 권고기준을 0.1ppb로 정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정자 감소를 우려해 마이크로시스틴이 0.03ppb 이상 든 물을 3개월 이상 못 마시도록 하고 있다.

ELISA를 사용해 기준을 강화한 미국 사례를 제시하며 환경과학원 측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잘 모르는 내용"이라는 답변만 내놓았다.

이와 함께 환경과학원 측에서는 고도정수처리를 하면 남세균 독소를 99.98% 제거할 수 있어 원수에서 독소가 검출된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99.98%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제시한 정수처리시설 기준에 따라 이론적으로 계산한 수치이고, 그것도 일정 시간 최상의 조건이 갖춰졌을 때 실현할 수 있는 수치다.
정수 속도와 수돗물 생산량, 온도, 원수 속 오염물질 농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환경부는 '국가 수도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낙동강 수계 활성탄 교체 주기를 3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원수 수질 여건을 고려하면 3년마다 교체하는 지금의 상황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다.

국가 수도 기본 계획에 담긴 낙동강 수계 활성탄 교체 관련 내용.
국가수도기본계획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 특위 부위원장은 "환경과학원의 행태는 과학적 불확실성 때문에 국민의 건강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전 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위험을 과장하는 것도 안 되지만 위험을 축소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돗물 논쟁 성과 기준에 반영돼


지난 2001년 5월 수돗물 바이러스 오염 논쟁 당시 오세훈 의원 등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의원들과 최열 사무총장 등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서울 한남동 보광정수장을 방문해 수돗물 바이러스 오염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중앙포토]
과거 수돗물 세균·바이러스 논쟁 등과 관련해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문제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지만, 결국은 환경부가 고개를 숙이고 이를 받아들였다.

1993년 당시 서울대 미생물학과 김상종 교수팀이 서울 수돗물에서 세균이 검출됐다고 발표하면서 벌어진 논쟁의 경우 현행 '먹는물 수질기준 및 검사 등에 관한 규칙'의 저온 일반 세균, 중온 일반 세균 기준을 추가하는 것으로 반영됐다.

2001년 김 교수팀과 벌어진 수돗물 바이러스 논쟁 결과도 정수장의 '정수처리기준 등에 관한 규정'의 ▶여과에 의한 병원성 미생물의 제거율 ▶바이러스 정밀 분포실태 조사 방법 등에 반영돼 있다.

수돗물 논쟁이 절대 무의미하지 않고, 더 나은 수돗물을 만드는 데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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