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그날 이후’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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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3일.
나는 그날의 많은 순간을 기억한다.
그날 거기에서 울지 않았다면, 그 앞에서 기도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날 밤 호스피스 중이던 엄마의 병실에서 인터뷰 기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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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3일. 나는 그날의 많은 순간을 기억한다. 점심시간 즈음 식사를 거르고 버스를 탔었다. 광역버스에 올라타 창가에 앉았다. 따뜻한 날은 아니었다. 창밖으로는 흐린 풍경들이 달리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어쩐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5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인터뷰 약속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슈퍼가 보였다.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갔던 것 같다. 한낮의 학교 앞 슈퍼는 한가했다. 캔 커피를 사들고 나왔다. 학교 건너편에는 작은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 앉아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정자에 앉았다가 주변을 서성이다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문을 향했다. 인터뷰 장소로 들어가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유독 생생하다. 학생과 교사 245명을 잃은 곳, 아픈 기억과 힘찬 현실이 공존하는 곳, 웃음 너머에 깊은 슬픔이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을 직면해야 한다는 게 겁이 났다.
운동장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모래 먼지를 날리며 축구를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스탠드에 모여 앉은 아이들에게서 웃음소리가 퍼져나왔다. 활기차 보였다. 그 자리에는 그저 평범한 고등학교가 있었다. 인터뷰 장소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의 마음건강센터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단원고의 스쿨닥터를 만났다. ‘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라는 제목의 시리즈 기사를 위한 인터뷰였다.
우리는 상처와 치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해 함께 걱정했다. 인터뷰 기사의 한 대목이다. “‘집단’으로 묶으면 함부로 대하기 쉽다. 살아 돌아온 것을 대단한 혜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생존 학생들이라는 이유로 공격당하거나 특별한 취급을 받을까봐 벌써 걱정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4·16 기억교실’을 찾아갔다. 텅 빈 교실을 바라보니 수많은 감정이 일렁였다. 하지만 위로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날 거기에서 울지 않았다면, 그 앞에서 기도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날 밤 호스피스 중이던 엄마의 병실에서 인터뷰 기사를 썼다. 스쿨닥터와 나눈 이야기가 위로로 다가왔다. 그 시간 기사를 쓰며 힘을 냈다.
진짜 트라우마는 ‘세월호 참사, 그날 이후’에 생겼다. 스쿨닥터와 나눴던 우려는 그 무렵에도 이미 현실이었다. 공격이 있었고, 확산됐다. 상상할 수 없는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부당한 비난이 쏟아졌다. 비난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다수의 응원은 묻히고, 확성기를 들고 비난하는 소수의 외침이 전부인 양 울려 퍼졌다. 착시 현상이 나타났다. 비난이 대세가 된 것처럼 보였다. 단식을 하는 유가족 옆에서 ‘폭식 퍼포먼스’를 하던 자들이 부각됐다. 비인간성을 성토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무고한 유족을 공격하는 무참한 행태도 사회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약자에 대한 혐오가 다양성으로 포장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의 트라우마는 거기에서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 그날 이후’의 사회적 반응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치유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됐다. 인터뷰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언론 인터뷰를 할 수 있겠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았다. “아뇨. 악플 달리잖아요.”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욕하는 악플들이 줄을 잇고 있다. 트라우마는 끝나지 않았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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