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두 대통령 법 인식이 주는 피로감
윤 대통령, 장관 질타에 "잘못했나"
정치·상식 대신 법 우선은 잘못
반려동물을 선물받은 정상 중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있다. 2005년 게오르기 파르바노프 불가리아 대통령이 생후 2개월 된 토종견 ‘발칸’을 건넸다. 부시 부부가 애견인인 걸 염두에 두고서였다.
미국 대통령도 선물은 받지만 소유는 못 한다. 선물 대부분이 곧장 국립기록보관소 창고로 직행하곤 한다. 당시 기준으로 305달러 이상은 안 됐다. 그렇다면 강아지는? 발칸의 운명이 드러난 건 그로부터 1년 뒤였다. 그사이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먼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직원이 국립기록보관소에 연락했다. “개를 가지러 올 수 있나요?” “도자기로 만든 개요?” “아뇨. 진짜 개요. 귀여워요.” “살아 있는 동물은 안 받아요. 귀엽든, 안 귀엽든.”
부시 대통령 부부는 이미 반려견이 두 마리라 더 이상은 곤란했다. 자신들의 텍사스 목장도 생각했으나 너무 고온 지역이라 문제였다. 결국 워싱턴 인근에 사는 불가리아계 미국인 부부에게 선물했다. 이를 위해 재무부에 강아지값으로 430달러를 냈다고 한다.
발칸 얘기를 왜 하는지 다들 알 것이다. 2주 전 이 지면에 ‘문 대통령 앞에 쌓이는 질문’을 쓰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풍산개 때문에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시행령이 바뀌었고, 또 바뀔 수도 있다고 전했다. 3월 개정에선 풍산개를 대통령기록관이 아닌 다른 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고, 6월 입법예고에선 예산 지원 근거도 마련했다고 말이다.
더 쓰려 하지 않았는데, 문 전 대통령의 ‘법상’ 입양이 불가능했다는 주장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현행법에선 외국에서 받은 선물은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이긴 하다. 그렇다고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동물까지 상정했을까. 법 목적이 보존인 만큼 “살아 있는 동물은 안 받는다”는 미 국립기록보관소의 입장이 합리적이다. 설령 대통령기록관이 풍산개도 대통령기록물이라고 고집한다 한들(그럴 리 만무하지만), 문 전 대통령에겐 얼마든 ‘반려동물=대통령기록물’이란 불합리를 해소할 힘과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4년간(개의 일생으로 보면 3분의 1이다)을 ‘가족’이라고 알리곤, 제도는 바로잡지 않았다. 퇴임 임박해서야 ‘대통령기록물이니 이관하겠다’고 했다가 비난을 받자 양산으로 데려갔고 금전적 지원을 안 해준다고 ‘위탁관리’를 관뒀다. 문 전 대통령이 잔뜩 법 운운했지만, 그저 키우지 않기 위한 핑계로 보이는 이유다.
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종종 느꼈던, 정체성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정치인보단 법조인이란 걸 다시금 절감한다. 상식으로 판단해야 할 때, 법률용어를 들이대며 자기방어에 치중하는 걸 보면서 말이다. 이번에도 “정치의 영역에 들어오기만 하면 이처럼 작은 문제조차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흙탕물 정쟁으로 만들어버리는지”라고 비난했지만 정작 문 전 대통령부터 잘못했는데 법 탓을 했다. 500여 년 전 피렌체의 한 지식인이 “산더미 같은 법률 서적이 그저 특정 사건을 자신의 이해에 맞추기 위한 법률가들의 도구”란 질타가 떠오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나은가.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최근 이런저런 논란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그 역시 법적 마인드가 강하며, 특히 정치적ㆍ도의적 책임보단 처벌 가능성만 중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경질론을 두고 “잘못한 게 뭐냐”고 감쌌다니 더 그렇다. 이 장관은 경찰이 자기보호를 위해 팩트를 뒤섞곤 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순진했다. 참사 초기 대응을 어렵게 한 치명적 실수였다. 윤 대통령은 그런데도 경찰만 뭐라는 듯 보인다. 주변에선 “의무가 없는데 책임을 물을 수 없지 않으냐”(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같은 소리나 하고 있다.
상투적일 수 있지만, 너무나도 옳은 얘기여서 다시 인용한다. “정치가는 자기 책임을 거부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도 없으며 또 해서도 안 된다.”(막스 베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때 법 논리를 들이대는 두 대통령을 보는 건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다.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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