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양당 독점 정치의 폐해
미국 중간선거 하루 전인 지난 7일(현지시간) 캔자스주 최대 도시 위치타의 올드세지윅카운티 법원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서다. AP통신에 따르면 사람들은 2시간 이상 줄을 선 뒤에야 사전투표를 할 수 있었다. 인구 40만 명, 면적 431㎢(서울의 71%)의 위치타에 사전투표소는 이곳 하나뿐이었다. 공화당 성향의 세지윅카운티 선거관리위원회가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가 높은 사전투표를 장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 경합주에선 일부 우편투표를 무효로 만들기 위해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기도 했다. 공화당 지지자 일부는 선거 조작을 의심해 총과 방탄복으로 무장한 채 사전투표함을 순찰하고 다른 유권자를 감시하는 등 불법적인 행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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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당 대립에 미국 선거 불신 커져
한국에선 사회 갈등 더욱 부추겨
다양성 담을 권력구조 마련해야
」
민주 정치의 기본인 선거가 불신을 받을 만큼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하원과 각 주의 주요 공직에 출마한 공화당원 중 300명가량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한 2020년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선거 불복론자다. ‘트럼프 키즈’로 불리는 이들 중 210명 이상이 당선을 확정 지었다.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의 지지를 받은 공화당 당선인들은 상·하원과 각 주 정부·의회에서 활약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준비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후보들이 연방 상·하원을 휩쓰는 ‘레드 웨이브’(Red Wave)가 일지 않자 부정선거 프레임을 다시 꺼내 들며 “항의하라”고 부추겼다. CBS 뉴스는 공화당 후보 절반 이상이 ‘패할 경우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은 공화당이 급진주의 정당이 됐다고 진단한다. 공화당은 백인 우월주의에 동조하고 여성 낙태권을 부정하며 소득분배 정책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공화당 의원들은 부자와 기업 세금 감면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미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오바마케어(건강보험제도)나 연금제도의 수혜자는 대폭 줄이려 한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집권 이후 공화당의 모토가 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빈부 격차를 확대해 왔다. 미국 대법원은 2014년 개인이 연방선거 후보 개인과 정당에 낼 수 있는 기부금 상한선을 폐지했다. 나아가 ‘수퍼 정치행동위원회(PAC)’에 무제한 정치 헌금을 할 수 있게 되며 기업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부자들은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원하는데 공화당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주자 거액을 후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사회에서 부자들의 목소리가 과대 반영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은 정치 후원금에 상한선을 두고 선거공영제를 운용해 금권정치의 폐해는 미국보다 낮다. 그러나 국민의 정치 불신은 심각한 수준이다. 정치가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확대 재생산하는 꼴이다. 젠더 갈등 등 한국의 균열 구조의 상당 부분은 정치적 이득을 노린 정당의 부추김에 의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빈부 격차, 진영·젠더·세대 갈등을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지배하는 양당 정치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두 당이 당내 민주화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제3당이 나와 양당 독점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또 1987년 헌법 개정으로 이루어진 제왕적 대통령제가 더는 사회 변화를 감당할 수 없는 만큼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민주화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는 정치 민주화는 국가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한국이 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지만, 북한이 최빈국이 된 까닭은 포용적 정치·경제체제를 갖추지 못한 데 있었다.
최근 서울대 국제학연구소가 개최한 글로벌전략세미나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인가?’는 시의적절했다. 세미나에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등 과거 대통령들은 “강해진 권력을 감당할 만한 충분한 준비와, 감당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서 “최근 한국 정치에서는 권력은 너무 무거워졌는데 무거운 권력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내각제로의 과감한 권력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며 “언론과 정당이 이념 갈등을 포함한 사회 갈등을 조정한다기보다 오히려 조장하는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공론장과 문화를 바꾸는 걸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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