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저출산 시대의 청구서
지방 의료의 위기가 오고 있다. 지방 의료를 지탱하는 거의 유일한 공적 의료시스템인 공중보건의(공보의) 제도가 저출산으로 지속 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보의 제도는 대체복무의 일종으로, 병역의무를 진 의사 면허 소지자를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의 지역의료기관에서 3년간 복무토록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숫자가 계속 주는 게 문제다. 전국 각지에 배치된 공보의 숫자는 2011년 1866명이었으나, 2020년 기준으론 1643명으로 10년 사이 223명 감소했다. 고작 몇백 명 줄어든 것이 대수냐 생각될 수 있지만, 영향은 절대 적지 않다.
공보의 단체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도 공보의가 배치된 지역의료기관으로부터 1㎞ 반경 내에 다른 의료기관이 존재하는 경우는 고작 52.8%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공보의 정원 200명이 줄면, 그중 100명은 1㎞ 반경 내에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에서 발생한 결원이라는 뜻이다. 가령 인구 2000여 명의 신안군 자은도는 2017년까진 공보의 2명이 배치됐었으나, 2018년부터는 1명으로 절반이 줄었다. 1년 새 의사 1인당 담당 환자 수가 1000명에서 2000명이 된 것이다. 대도시의 의사 1명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향이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의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도 다수의 돌봄 기관에서는 대체복무의 일종인 사회복무요원의 노동력을 투입해 돌봄 수요를 감당케 하고 있다. 병역 자원의 감소가 이어지면, 이들도 현역병으로 징집될 개연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돌봄 노동에도 거대한 공백이 발생할 텐데, 이를 대비하려는 조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짜에 가까운 의무복무 인력 벌충을 하는 데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젊은이들의 노동에 국가가 제값을 치르지 않은 상태로 저출산의 청구서를 계속 미뤄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태원 참사 원인도 조금 다르게 읽을 여지가 있다. 지휘계통 책임과 별개로 일선 경찰들은 참사 전부터도 대규모 인원 통제를 전담하는 기동대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원래는 이 역할도 대체복무인 의무경찰이 담당했다. 그러다 의경 제도가 점진적으로 폐지되며 기동대 인력은 2018년 대비 절반인 1만3000여 명으로 줄었다. 직업 경찰로 구성된 경찰기동대로 대체하는 과정이 재정문제로 순탄치 못해서다. 인력을 어디에 배치하느냐 이전에 적정한 인력을 확보했어야 한다는 문제가 선행하는 것이다. 안전도 비용이란 점을 간과한 대가다.
병역 자원의 감소는 시작일 뿐이다. 과거 통상적 출산율을 가정하고 설계된 제도들이 저출산 시대를 맞아 곳곳에서 삐걱대고 있다. 늦었지만 비극적 참사를 계기로 꼼꼼한 정책 점검을 시작할 때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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