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지난 5년간 영정·위패 없는 유일 사례 [이태원 압사 참사]
[손가영 기자]
▲ 부산시청 1층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부산 합동분향소에 사흘째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 김보성 |
156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합동분향소가 지난 5년 동안 정부·지자체가 설치한 참사 합동분향소 중 영정사진이나 위패가 없는 유일 사례인 것으로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의 전국 일간지 30개 검색과 행정안전부에 확인한 결과, 지난 2017년부터 정부·지자체가 운영한 2014년 세월호 참사 분향소(2018년까지 운영),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분향소,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분향소, 2020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분향소, 2021년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붕괴 사고 분향소, 2022년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사고 등 7건의 대형 참사 분향소 사례를 살펴본 결과, 영정사진이나 위패가 설치되지 않은 분향소는 이번이 유일했다.
7건 대형 참사 분향소 사례 살펴보니
지난 1월 발생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는 처음 마련된 합동분향소엔 영정사진과 위패가 올려지지 않았으나, 이는 당시 시공사에 대한 유족의 분노 때문으로 "장례를 하지 못했는데 영정사진과 위패를 올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사고 직후 꾸려진 피해자 가족협의회는 시공사가 책임있는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는다며 장례를 미루다가, 사고 발생 한 달 후 광주 서구청에 요청해 합동분향소를 차렸다. 10일 후 협의가 마무리되자 유족들은 장례를 진행했고 합동분향소를 다시 차리면서 영정사진과 위패를 올렸다.
분향소 명칭에 희생자·피해자가 아닌 '사고 사망자'를 쓴 것도 이번이 유일했다. 앞선 사례들은 각각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합동 분향소', '제천 노블 휘트니스스파 화재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 '학동4구역 재개발 붕괴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 '화정 아이파크 신축공사 붕괴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 '대전 현대아울렛 희생자 합동분향소' 등의 명칭을 사용했다.
이천 참사 경우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였으나, 당시 행정안전부, 대통령실, 이천시 등의 대국민 발표문을 보면 '피해자', '희생', '대형참사'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7일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전국 71곳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 중 68곳이 운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정한 국가 애도 기간이 지난 5일 끝나면서, 지난 10월 31일 조성된 합동분향소 대부분이 6일간 운영되다가 폐쇄됐다.
아직 운영 중인 3곳은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와 경기도가 마련한 합동분향소 2곳이다. 이곳은 각각 오는 12일과 9일까지 운영된다. 국가 애도 기간 동안 미처 조문하지 못한 시민들이 적지 않고 아직 시민들의 추모 열기도 식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
ⓒ 이희훈 |
71곳 합동분향소엔 영정사진·위패 대신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神位(신위)'(서울), '이태원 사고 사망자'(부산·울산 등) 등의 명패가 놓였다. 광주시청 합동분향소엔 검은 바탕에 큰 국화꽃이 그려진 액자 사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희생자 기초 현황도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중대본은 참사 초부터 지금까지 사망자와 부상자 총 수만 발표하고 있으며 희생자들의 거주 지역 분포나 연령 등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대본은 7일 "사망자는 변동 없이 총 156명, 부상자도 변동 없이 총 197명"이라며 "우리 국민 사망자 130명의 장례는 어제 모두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 이태원 참사 유족이 부순 윤석열, 오세훈 근조화환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이번 참사로 아들을 잃은 한 유족이 당일 부실대응에 항의하며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근조화환을 쓰러뜨리고 있다. |
ⓒ 연합뉴스 |
정부는 이례적인 이번 합동분양소 설치·운영 방식에 대해 유족 의사 확인이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행정안전부 대변인실은 지난 7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분향소에 영정사진·위패 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유족 의사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고 국민들이 신속히 추모를 할 수 있게끔 분향소를 신속히 설치할 필요가 있었다"며 "분향소는 참사 하루 만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분향소 운영 기간을 6일로 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국가 애도 기간을 정했지만 그 이후는 지역 별로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돼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적 추모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점에 비춰 중앙정부에 중장기적으로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 있는지를 묻자 "아직까지 없다"고 답했다.
대변인실은 피해자 기초 현황 공개와 관련해선 "유족 분들과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협의 중인데 진행이 (많이) 되지는 않았다"라며 "공개 여부는 협의 진행 이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애도 의지에 의구심... 경찰청은 '유족 대응 전략' 보고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참사 발생 직후부터 계속돼 온 책임 회피와 추모 열기 확산을 방지에 우선을 둔 정부 대응방식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행정안전부는 공문을 통해 '이태원 사고'로 표기했다. |
ⓒ 윤성효 |
특히 행안부는 참사 바로 다음날인 10월 30일 교육부·지자체 등에 '글자 없는 검은색 리본을 착용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해 현장 공무원들 반발을 샀다. 논란이 되자 인사혁신처는 1일 보도자료를 내어 "각 기관의 문의가 많았기 때문"이라고만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연합뉴스>는 이와 관련 원래 공문엔 '애도를 표하는 검은 리본'이 적혔으나 '국무총리 지시사항 관련 추가 안내' 공문을 받은 직후 '글자 없는 검은색 리본'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같은 날 행안부의 '이태원 사고 사망자' 용어 지침에 따라 합동분향소 상당수가 '사고 사망자'로 용어를 통일했다. 경남도청은 내부 공문에 '이태원 참사'라고 쓰고 있었으나 공문이 내려오자 '이태원 사고'로 고쳐 썼다. 경기도, 광주광역시 등만 참사 희생자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했다.
정부 책임을 은폐한다는 여론의 비판이 고조되자 서울시는 합동분향소 운영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사고 사망자'를 '참사 희생자'로 뒤늦게 바꿨다.
강원·대구·인천·제주 등 지자체는 시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진 곳에 분향소를 설치해 빈축을 샀다. 강원도는 도청 별관 4층 공간, 대구시는 중심가로부터 9km 정도 떨어진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 인천시는 청사 2층 대회의실, 제주도는 도청 별관 2층에 합동분향소를 마련했다.
정부는 합동분향소 운영에 유족 당사자 의사를 우선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참사 이틀 후 경찰청이 유족 관련 대응 방향 등을 담은 '정책 참고 자료'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진정성은 의심받고 있다. 경찰청 작성 자료엔 "빠른 사고 수습을 위해 장례비·치료비·보상금 관련 갈등관리가 필요하다"며 "외부인 참여가 늘어날수록 협의가 어려워진다며 초기에 '가족 대표를 정해 대화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 '이태원 핼러윈 참사' 국가 애도기간이 끝난 7일 오후 광주시청 합동분향소가 운영 종료되고 추모공간이 새로 마련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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