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IMM PE’ 상장사 투자 안 한다고 선언…EOD 공포 엄습
국내 대표 사모펀드(PEF) 운용사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상장사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 내부 논의를 거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앞으로 상장사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IMM PE의 상장사 포트폴리오인 에이블씨엔씨와 한샘 투자 성과 부진이 이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IMM PE는 현재 EOD(기한이익상실)가 발생하면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의 인수금융 만기를 연장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투자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할 상황에 놓이자 주요 출자자(LP) 분위기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에이블씨엔씨와 마찬가지로 인수 후 지분 가치가 크게 하락한 한샘 투자에 출자한 LP들마저 최근 싸늘해진 눈초리를 보낸다고 알려졌다”는 것이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IMM PE의 부진한 투자 성과가 더욱 부각되는 이유는 피투자 회사가 상장사인 탓이 크다. 상장사는 기업가치가 공개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성과를 계산하기 비교적 수월하다. 또 기업가치가 수시로 변동하기 때문에 담보인정비율(LTV)을 맞추기도 까다롭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상장사 투자를 기피하는 PEF 운용사가 많다. IMM PE 역시 포트폴리오 상장사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펀드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투자 원금 대비 90%·82% 하락
올 들어 주식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며 IMM PE는 직격탄을 맞았다. PEF 운용사 중 상장사 포트폴리오가 많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에이블씨엔씨와 한샘 외에도 하나투어, 쏘카 등에 투자했으나 주가 부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샘이 대표적인 사례다. IMM PE는 지난해 10월 국내 가구·인테리어 1위 업체인 한샘 지분 27.72%를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으로부터 약 1조4413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652만1509주를 주당 22만1000원에 인수하는 내용이다. 계약 체결일인 지난해 10월 25일 종가가 11만65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배 가까운 프리미엄을 얹어준 셈이다.
하지만 올 들어 주식 시장에 부는 한파를 피하지 못하고 한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지난 10월 25일 한국거래소에서 한샘은 3만93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1년 만에 주가가 82.2% 하락하며 지분 가치가 크게 축소됐다.
에이블씨엔씨 역시 마찬가지다. IMM PE는 지난 2017년 4월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회장의 지분 25.54%를 약 1883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주식 공개 매수를 통해 1392억원을 들여 지분 27.94%를 추가로 확보한 뒤 유상증자를 통해 1000억원을 투자해 지분을 59.2%까지 끌어올렸다. 에이블씨엔씨 인수에 총 4000억원 이상 투입한 셈이다. 당시 평가한 주당가액은 4만3636원이다.
그러나 인수 후 실적이 저하되며 주가가 급락했다. 최근에는 주가가 4000원 초반대까지 떨어지며 5년 7개월 만에 지분 가치가 90% 이상 축소됐다. 에이블씨엔씨 인수에 대주단으로 참여한 신협중앙회가 IMM PE의 인수금융 만기 연장을 거절한 이유 중 하나 또한 주가 반등에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상장사 포트폴리오에 대한 투자 성과가 부진하자 IMM PE의 위상도 흔들리는 분위기다. 지난 8월 우정사업본부가 진행하는 PEF 출자 사업에서 IMM PE가 탈락한 것에 대해 업계는 놀라움을 드러냈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IMM PE가 한샘 딜 때문에 저조한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 주요 LP 중 하나인 우정사업본부가 외면했다는 점에서 IMM PE가 받는 충격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IMM PE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업계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조 단위 블라인드 펀드를 운용하는 IMM PE가 EOD에 빠졌다는 사실은 업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이슈”라며 “대형 운용사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인데 중소형 운용사는 투자와 회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 어렵고 디폴트 위험 높아
상장사 투자가 어려운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상장사는 회사 본질 가치와 무관하게 외부 환경에 의해 기업가치가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최근 주식 시장처럼 급격한 금리 상승과 함께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면 기업가치는 크게 요동칠 수 있다.
비상장사의 경우 매출이나 영업이익,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등 실적으로 기업가치가 평가되지만, 상장사는 주가로 기업가치가 정해진다. 비상장사와 비교해 불가항력적인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기업가치에 따라 인수·합병(M&A) 계약에서 지분 가치에 추가되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PEF 운용사 입장에서는 상장사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급격한 주식 시장 침체로 기업가치가 급락한다면 대주단과 체결한 재무약정을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도 커진다. LTV를 설정해 일정 비율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 재무약정에 포함됐다면 주가 하락에 따라 EOD에 빠질 우려가 있다.
EOD가 발생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대주단이 강제로 해당 주식을 매각할 수 있게됨에 따라 투자자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주단은 빌려준 원금에 이자 정도만 받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굳이 투자자의 투자 원금을 챙겨줄 필요가 없다. 인수자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싼 가격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즉, 짧은 시간에 망가진 회사를 되살려 매각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가치 극대화를 통한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조건이 형성되는 셈이다.
이는 연쇄적으로 다음 펀드레이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트랙 레코드가 훼손되고 업계 내 신뢰를 잃어 LP 모집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장사를 인수하게 되면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회사의 본질적인 가치와 무관하게 외부 환경에 따라 기업가치가 평가돼 매각 시 제값을 받지 못할 수 있고, 재무약정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회사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점도 PEF 운용사에는 부담이다. 개인 주주 마음에 들지 않는 사업을 추진할 경우 문의가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운용사의 본질적인 역할이 아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상장사 투자를 기피하는 운용사가 많다”는 것이 PEF 운용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PEF 운용사가 인수 후 회사를 정상화하기까지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사실 한샘의 경우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다. PEF 운용사가 보통 3~5년 사이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나선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투자 성과를 논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상장사는 기업가치가 투자자에게 공개되다 보니 성과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운용사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고 회사 체질 개선에 나서는데, 이런 일을 본격 시작하기도 전에 투자 성과에 대한 문제가 지적된다는 점은 아쉬운 사실이다. 운용사들이 상장사 투자를 꺼리는 이유가 이런 점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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