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兆 시장 놓고…아이코스·릴 ‘신상 경쟁’
2조원.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 규모다. 2017년 3500억원 수준에서 5년 만에 6배 가까이 커졌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국내 담배 시장 전체 2.2%에 불과했던 궐련형 전자담배 비중은 올해 상반기 기준 14.5%까지 늘어났다. 담배 냄새가 안 나고 인체 유해성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장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
계속 커지는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을 놓고 담배 회사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필립모리스가 3년 만에 아이코스 신제품을 내놓더니 KT&G도 질세라 11월 신제품 출시 대열에 합류했다. 시장 3위로 분류되는 BAT로스만스(이하 BAT)도 해외서 선판매 중인 신제품 국내 판매를 놓고 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 후발 주자 KT&G ‘릴’, 올해 첫 역전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이하 필립모리스)은 궐련형 전자담배의 시조다. 일반 담배 흡연자에게는 ‘말보로(Marlboro)’ ‘팔리아먼트(Parliament)’ 등 브랜드로 익숙한 세계 최대 담배 회사로, 2015년 세계 최초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IQOS)’를 선보이며 ‘전자담배계의 애플’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아이코스는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기존 방식과는 달리 담배를 쪄서 피우는 신개념 전자담배다.
아이코스 출범 이후 KT&G ‘릴(lil)’, BAT ‘글로(glo)’ 등 후발 궐련형 전자담배가 잇달아 등장했지만 ‘선점 효과’는 컸다. 2017년 필립모리스 점유율은 90%에 육박했다. 나머지 두 회사는 한 자릿수에 그쳤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달라졌다. 줄곧 1위를 유지해온 아이코스는 올 들어 처음으로 릴에 1위 자리를 내줬다. 편의점업계 판매시점관리시스템(POS) 집계에 따르면 올 1분기 릴의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전용 스틱 시장점유율은 약 45%. 43%에 그친 아이코스를 뒤로한 채 처음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2분기에는 릴이 47%, 아이코스는 41%로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 아이코스와 릴이 엎치락뒤치락하던 사이 ‘글로’도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갔다. 현재 점유율은 12% 정도로 추산된다. 5년간 이어졌던 아이코스 독주 체제가 올해 막을 내린 셈이다.
▷칼날 없앴다…히팅 방식 ‘혁신’
위기감을 느낀 필립모리스가 신제품을 선보이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10월 기존 아이코스 문제점을 보완한 새로운 시리즈 ‘아이코스 일루마’를 선보였다.
가장 큰 변화는 ‘가열 방식’이다. 그간 아이코스 제품은 ‘블레이드 가열’ 방식을 썼다. 일반 담배처럼 담뱃잎을 직접 불로 태우는 게 아니라, 기기 안에 들어 있는 칼날(블레이드)이 방출하는 열로 주변 담뱃잎을 찌는 형태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불편 사항이 터져 나왔다. 먼저 ‘청소’가 불편하다. 스틱 제거 후 블레이드에 담뱃잎 찌꺼기가 끼어버리기 때문이다. 미처 다 제거하지 못한 찌꺼기 탓에 맛과 향이 변질된다는 지적도 계속돼왔다. 블레이드 파손 문제도 있었다.
이번 아이코스 일루마는 새로운 가열 기술 도입으로 그간의 문제점을 해결했다. 바로 ‘스마트코어 인덕션 시스템’이다. 일루마에는 블레이드가 아예 없다. 대신 스틱을 둘러싸고 있는 원통형 기기 내부에서 마치 인덕션처럼 스틱 전체에 열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칼날이 없으니 찌꺼기가 떨어져 나올 일도, 칼날이 부러질 일도 당연히 없다.
여기에 스틱을 삽입하면 자동으로 히팅이 시작되는 ‘오토 스타트’, 남은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업’ 등의 신규 기능도 탑재됐다. 디자인도 호평을 받는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즈’와 ‘iF 디자인 어워즈’에서 잇달아 수상에 성공했다. 백영재 한국필립모리스 대표는 “일루마는 기존 아이코스 모델과 마찬가지로 담배를 태우지 않고 가열하는 덕분에 일반 담배 대비 유해물질 배출이 약 95% 줄어든다. 인덕션 가열 방식으로 청소가 필요 없어진 만큼 사용자 편의성이 훨씬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KT&G, BAT도 신상 출격 대기
▷인공지능(AI) 등 최신 기술 도입
업계 1위로 부상한 KT&G도 질세라 신제품 준비에 나서고 있다. 아이코스가 신제품을 발표한 지 불과 2주 만에 릴 신제품을 선보이기로 했다. 정확한 제품명과 기능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전자담배에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 스마트폰과 연동시켜 흡연 횟수를 분석하는 등 최신 기능이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릴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이번에도 먹혀들지 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후발 주자인 릴은 공격적으로 신제품을 내놓는 방식으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첫 모델 출시 후 불과 6개월 만에 업그레이드 버전인 ‘릴 플러스’를 내놨고, 이후에는 무게를 40% 줄인 ‘릴 미니’를 개발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첫 제품인 릴 솔리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선보인 기기만 7종. 11월 선보일 신제품까지 포함하면 8종이나 된다. 같은 기간 아이코스(4개)보다 2배 이상 많은 제품을 쏟아냈다.
여기에는 과감한 연구개발(R&D)이 빛을 발했다. 2017년 41억원 수준이던 KT&G의 R&D 비용은 2020년 117억원, 지난해에는 214억원까지 늘어났다. 2017년 84건에 불과했던 KT&G 특허 출원 건수 역시 지난해 1186건으로 늘었다. 유럽 특허청(EPO)이 발표한 ‘2021년 EPO 특허지수’에 따르면 KT&G는 삼성과 LG에 이어 한국 3위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KT&G 관계자는 “다양한 소비자 의견을 반영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강화, 소비자 선택폭을 넓혀왔다.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도약하기 위해 R&D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실제로 스틱을 삽입하면 자동으로 예열되는 ‘스마트온’ 기능은 전 세계 최초로 KT&G가 탑재했다”고 자랑했다.
3위 사업자 BAT ‘글로’ 역시 최근 분위기가 괜찮다. 2020년 시장점유율 6%에서 올해 2분기 기준 12%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담배업계에서는 올해 글로의 시장점유율이 15%까지 높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공격적인 마케팅이 먹혀들어간 모습이다. 지난해 글로 공식 웹사이트에서 멤버십 회원이 글로 기기 구매 시 글로 기기 가격을 50% 할인해주는 마케팅을 편 이후 점유율이 껑충 뛰었다. 한국 시장에 쏟는 관심도 남다르다. 지난해 9월 ‘글로 프로 슬림’ 신제품을 전 세계 최초로 한국 시장에 선보이기도 했다.
BAT는 이 기세를 몰아 조만간 신제품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유럽과 일본에서 먼저 선보인 ‘글로 하이퍼 X2’ 판매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지 BAT 대표는 “경쟁사 신제품이 나온다고 당장 신제품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인체에 덜 유해한 위해 저감 제품을 끊임없이 늘려나가겠다. 조만간 신제품 ‘글로 하이퍼 X2’의 국내 출시는 물론 씹는 담배 등 비연소 제품 판매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궐련형 전자담배 빅3가 모두 신제품 라인업 강화에 나서며 한국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 담배업계 관계자는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이 먼저 열린 일본의 경우 궐련형 전자담배 비중이 전체 33%로 한국의 2배가 넘는다. 그만큼 한국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크다”며 “각 사로부터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올해 연말과 내년 초가 향후 시장 판도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2호 (2022.11.09~2022.1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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