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다 좋은데 나 홀로 적자 낸 SK온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에도 국내 배터리업계는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분기 매출액 7조648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9.9% 증가한 호실적이다. 삼성SDI는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한 5조368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각각 5219억원, 5658억원으로 집계됐다.
전기차 시장 확대 수혜는 물론이고 당초 우려됐던 미국 인플레 감축법(IRA)이 오히려 사업 기회가 되고 있는 모습이다. IRA는 침체된 미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경제 법안이다. 지난 8월부터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만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내년부터는 북미 채굴 광물을 일정 비율 사용한 배터리를 채택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항도 추가 시행된다.
손 미카엘 삼성SDI 중대형 전지사업부 부사장은 “IRA로 인해 미국 친환경 정책이 가속화된다는 점에서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북미 채굴 광물 일정 비율 활용 조항은 공급사 다변화를 통해 충족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배터리업계에 훈풍이 부는 와중에 SK온만 웃지 못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비상장사 SK온 실적은 모회사 SK이노베이션에 합산 발표된다. SK이노베이션 실적 자료에 따르면 3분기 SK온 실적은 매출 2조1942억원, 영업손실 1346억원으로 나타냈다.
▷외형 확대…연내 흑자전환 기대
SK온은 지난해 10월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부에서 분사했다. 폭스바겐, 포드, 현대차 등 글로벌 배터리 수주 물량이 늘자 SK그룹 차원에서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결단을 내렸다. SK그룹은 배터리를 반도체(SK하이닉스)에 맞먹는 사업으로 키울 계획이다. SK온의 목표는 2030년 내 세계 1위다.
목표는 거대했지만 아직까지 수익도 못 내는 처지다.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2098억원, 올해 1분기 영업손실 2743억원, 2분기 영업손실 3266억원을 기록했다. 3분기 영업손실 규모를 1346억원으로 대폭 줄였지만, 흑자전환은 실패했다. 분사 이후 누적 영업손실만 9453억원에 달한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 발생한 초기 투자비용 부담이 실적에 반영된 모습이다. 현재 SK온이 가동하고 있는 공장은 국내 1곳, 해외 공장 6곳이다. ▲서산 공장 ▲헝가리 1·2공장 ▲미국 1공장 ▲중국 창저우, 후이저우, 옌청 공장 등이다. 신규 가동을 예고한 공장은 모두 해외로 4곳에 달한다. 내년 1분기 미국 조지아 2공장을 시작으로 헝가리 3공장, 중국 옌천 2공장, 미국 켄터키·테네시 공장 가동에 나설 예정이다. 비용 부담에도 외형부터 키우겠다는 게 SK온 전략이다. 설비 증설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지면 본격적인 수익 창출에 나설 것이라는 판단이다.
SK온은 올해 4분기 중 흑자전환을 기대한다. 초기 투자비용을 메우고 남을 만큼 외형을 키웠다는 자신감이다. 실제 SK온 수익성은 매 분기 적자지만, 매출 자체는 늘고 있다. 3분기 매출은 2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 매출(8168억원)과 비교하면 168.6% 증가했다.
시장점유율도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지표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홀로 상승세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SK온의 올해 1~9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6.2%로 5위를 기록했다. 1년 전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부 시절 점유율(5.7%)보다 0.5%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점유율 2위 LG에너지솔루션과 6위 삼성SDI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5%포인트, 0.3%포인트 하락했다.
증권가에서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적자가 컸던 것은 후발 주자로서 경쟁력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예상보다 빠른 외형 확대로 인한 일시적 성장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설 이후 초기 비용 문제도 규모와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아 있는 3가지 해결 과제
▷수율, 자금 조달, 안전성 이슈
장밋빛 전망은 조건부다. 해결 과제가 남아 있다. 최대 숙제는 ‘수율’이다. 수율은 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들은 공장 수율 90%를 안정적 수익성 확보 마지노선으로 평가한다. 생산품 10개 중 불량품이 1개 이하일 때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수율은 90~95% 수준이다. 반면 SK온 헝가리 코마롬 2공장과 미국 조지아 1공장 수율은 70~80% 정도로 알려졌다.
SK온은 수율 문제를 시간이 해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11월 3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SK온 해외 공장 수율 관련 “지난해 말과 올해 양산을 시작한 미국 조지아 1공장과 헝가리 2공장은 수율과 가동률 모두 안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업계에서 해외 공장 건설 초기 낮은 수율은 일종의 성장통으로 불린다. 국내 공장 설비를 똑같이 들여와도 현지 인력을 국내 수준으로 교육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경쟁사도 겪었던 문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 전진기지로 불리는 폴란드 공장 수율을 90% 이상으로 확보하는 데 2년 이상 걸렸다.
또 다른 문제는 자금 조달이다. SK온의 올해 말 목표 생산능력(캐파)은 77GWh다. 2025년 목표인 220GWh 달성을 위해선 캐파를 180% 이상 늘려야 한다. 보통 10GWh 설비를 짓는 데 1조원이 투자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3년간 약 15조원을 투입해야 한다. 해외 금융기관 등에서 자금을 조달해 증설을 이어가고 있는데, SK온과 모회사 SK이노베이션 모두 재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SK온 총차입금은 4조5111억원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총차입금은 88.5% 증가한 8조5047억원이다. 모회사 SK이노베이션 부채비율은 9월 말 기준 182.5%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152.5%)보다 30%포인트 높아졌다. 부채비율은 자산 중 부채 비중을 의미한다. 보통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서면 재무건전성이 우려된다고 평가한다.
기대했던 프리 IPO도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프리 IPO는 상장 전 지분 일부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는 수단이다. 당초 SK온은 4조원 정도를 프리 IPO로 조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9월 계획이 수정됐다. 경기 침체로 시장이 얼어붙은 탓이다. SK온은 투자 유치 규모를 4조원에서 2조원대로 낮추고, 이자율도 연 5.5%에서 7.5%로 올리는 투자자 유인책을 내놨다. 그럼에도 조달 자금은 1조원 안팎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SK온은 프리 IPO를 거쳐 2026년까지 IPO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전까지 증설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묘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SK온 자금 조달 관련 “불확실한 환경으로 SK온 투자 리소스 확보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리소스 확보에 계획은 금융 시장 상황과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불거진 안전성 이슈도 풀어내야 할 과제다. SK온은 국내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필드 사고가 없었다. 하지만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로 상황이 달라졌다. 화재 원인으로 SK온이 만든 무정전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가 지목됐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이사는 기자회견에서 SK온 제품이라고 직접 언급하며 책임 소재를 분명히 했다. 홍 대표는 지난 10월 19일 대국민 사과간담회에서 “화재 발생 리튬배터리는 SK온 상품”이라며 “리튬배터리는 원래 화재에 취약하다고 알려졌는데 리튬배터리를 보조전원장치로 쓰면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우려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화재 사고는 배터리업계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다. 안전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SK온은 자사 제품을 소개할 때 화제 제로(0)를 강조해왔다. SK온 측 책임 소재가 밝혀질 경우 안전성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책임 여부에 따라 충당금을 쌓아야 할 수도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 10월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세상은 배터리가 불이 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며 “화재를 무조건 없앤다기보다 가능한 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빨리 끌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해 그런 방도를 연구하자고 논의했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2호 (2022.11.09~2022.1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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