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바꾸고 힘 받는…정기선 ‘미래 개척號’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그룹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중이다. 오랜 기간 사용해온 기업 이미지(CI) 변경을 통해 ‘조선 전문 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화살표 모양으로 ‘HD’ 강조
특허청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 HD현대는 최근 화살표 형상의 이미지를 담은 CI를 상표로 출원했다. 새로 출원된 CI의 특징은 현대가(家)가 사용했던 초록색과 황금색의 삼각형 이미지가 사라진 대신, 그 자리를 전진하는 느낌의 화살표 모양이 차지했다는 점이다. 사명도 ‘HD현대’에서 현대를 뺐다. 색상은 초록색과 검정색으로 디자인했다.
HD현대가 새로 출원한 ‘HD’에는 ‘인간이 가진 역동적인 에너지(Human Dynamics)로 인류의 꿈(Human Dreams)을 실현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일각에서는 기업 CI 변경을 계기로 그룹명도 현대중공업그룹에서 ‘HD현대그룹’ 또는 ‘HD그룹’으로 바꿀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HD현대 관계자는 “로고 변경을 검토 중인 것은 맞지만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이번 CI 교체는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 장남인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 사장은 지난해 10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뒤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 HD현대, 조선 부문 지주사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를 맡아 사실상 핵심 계열사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중이다.
정 사장은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2’에서 “세계 1위 십빌더(Shipbuilder·조선사)에서 인류를 위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퓨처빌더(Future Builder·미래 개척자)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기존 조선, 중공업 이미지를 벗고 ‘첨단 기술 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연말 경기도 판교신도시에 들어서는 글로벌 연구개발센터를 중심으로 친환경 선박과 스마트 조선소, 스마트 건설기계 인프라 구축 등에 힘쓰면서 신성장동력을 발굴한다는 전략이다.
성과도 하나둘씩 나오는 중이다. HD현대의 선박 자율운항 전문 회사인 ‘아비커스’는 최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보트 쇼 ‘포트로더데일’에서 레저보트용 자율운항 2단계 솔루션인 ‘뉴보트(NeuBoat)’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뉴보트는 신경세포를 뜻하는 ‘뉴런(Neuron)’과 ‘보트(Boat)’의 합성어다. 인간의 신경세포처럼 해상 환경에서 스스로 인지, 판단,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를 계기로 미국, 유럽 등에서 레저보트용 자율운항 솔루션 상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자율운항 수준 1단계는 선원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수준, 2단계는 선원이 승선한 상태에서 원격 제어하는 수준을 말한다. 3단계는 선박에 탑승한 선원 없이 원격 제어하는 수준, 4단계는 완전 자율운항 기술을 뜻하는데 아직까지 3단계 이상 기술은 나오지 않았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세계 최초로 대형 선박의 자율운항 대양횡단에 성공했고, 주요 선사로부터 대형 선박 자율운항 솔루션 수주 성과를 내는 중이다. 최근에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 쉘, 두산퓨얼셀과 함께 선박용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 실증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등 차세대 연료전지 시장에서도 독자적 기술력을 쌓고 있다. 신사업 부문에서 하나둘씩 성과가 나오는 가운데 때마침 창립 50주년을 맞은 만큼 새로운 그룹 정체성에 맞게 CI 교체를 추진한다는 관측이다.
▷3분기 영업익 1조716억원
정기선 사장 경영권에 힘이 실리는 것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잇따른 악재에도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실적이 날개를 단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지주사 HD현대는 올 3분기 연결 기준 매출 17조2872억원, 영업이익 1조71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137.5%, 영업이익은 255.2% 증가했다. 앞서 2분기 영업이익도 1조2359억원을 기록해 두 개 분기 연속 1조원을 넘겼다.
사업별로 보면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3사 수익이 급증했다. 조선 부문 지주사 한국조선해양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3.2% 증가한 1888억원을 기록했다. 올 1분기(-3964억원), 2분기(-2651억원) 적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되살아난 셈이다.
한국조선해양이 흑자로 돌아선 것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고 원가 절감에 나선 효과라는 분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이 막힌 국가들이 새로운 수입처를 찾으면서 LNG선 수요가 폭증했다. 한국조선해양은 올 들어 10월 말까지 186척, 221억5000만달러를 수주하며 연간 목표치(174억4000만달러)의 127%를 달성하는 등 글로벌 LNG선 수주를 사실상 ‘싹쓸이’하는 분위기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상반기 이전 수주 물량 인도가 마무리되는 내년 하반기부터 현대중공업 실적 개선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흑자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시장 부진으로 비상 경영을 선포했던 건설기계 부문 분위기도 한결 좋아졌다. 현대건설기계의 경우 3분기 중국 시장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했지만 북미, 인도, 브라질 등 신흥 시장 실적이 살아나면서 3분기 영업이익이 70.3% 증가한 63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평가 손실에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5% 증가한 7022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그룹 분위기가 좋아졌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조선사 노조가 파업을 추진하면서 실적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노조는 지난 10월 27일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과 관련해 “경영진이 코로나19 위협,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핑계로 3사 임단협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다. 사측이 미온적이면 동시, 순환 파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조선 3사 노조는 10월 24~26일 기본급 인상과 임금피크제 폐지, 노동이사제 조합 추천권 도입, 정년 연장 등을 요구하며 일제히 파업안을 가결했다. 사측은 노조 요구를 모두 수용할 경우 매년 2500억원가량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다며 난색을 표하는 모습이다.
건설기계 부문 실적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중국 건설 경기가 더 악화되면 신흥 시장 회복만으로 호실적을 내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정기선 사장이 각종 악재를 딛고, 현대중공업그룹 경영을 순조롭게 이끌지 재계 관심이 쏠린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2호 (2022.11.09~2022.1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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