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반전] 고3 엄마입니다, 아이보다 먼저 자도 죄책감 느끼지 않습니다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편집자말>
[김정희 기자]
▲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된 지난 2021년 11월 18일 서울 용산구 선린인터넷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 전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
ⓒ 사진공동취재단 |
11월 17일은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우리 집 고3도 막상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불안했던지, 수능이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에 독서실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선택한 독서실은 집에서 버스 세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평소에도 걸어 다니는 길이었고, 아파트 사이 골목이라 그다지 위험한 곳은 아니었는데 가로등이 많지 않아 밤 시간대에는 어른인 나도 걸어오기 무서운 곳이다.
데리러 가기가 애매했던 이유는 새벽 3시에 기상하는 나의 업무 특성에 따라 식구들의 취침시간이 밤 10시 즈음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우리 집 생활패턴으로 자리 잡힌 지 오래되었다. 그동안 학교와 학원, 집에서 공부한 고3 아이가 집에서는 늦게까지 공부하는 게 별 문제가 아니었는데 아이의 독서실 행은 갑자기 남편과 나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처음 며칠은 아빠가 데리러 갔고, 엄마인 나도 아이가 귀가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잠들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취침과 기상시간이 엉망이 되면서 일상에 많은 지장이 생겼다. 아이도 부담이 되었던지 버스를 타고 알아서 귀가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혼자 귀가한 어느 날, 아이는 좀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버스가 끊긴 밤 12시가 넘어 집에 왔다.
나는 먼저 자려고 했지만 아이가 귀가 전이라 걱정이 되어 자다 깨다 선잠을 잤다. 혹시 아이에게서 연락이라도 올까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채로. 1시가 다 되어 들어온 아이는 버스가 끊겨 걸어오는데 아파트 벤치에 만취한 아저씨가 누워 있어 깜짝 놀랐다며 그때부터 뛰어왔다고 무용담을 풀어놓았다.
집에 누워 있던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 다음부터 아이는 아빠가 데리러 가는 날을 빼놓고는 11시 즈음 독서실을 나와 버스를 타고 귀가했고 나도 아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잠자리에 든다. 나는 나대로 잠을 못 자고 설치니 힘들고 아이는 아이대로 공부하다 말고 들어오니 맥이 끊기는 것도 사실이고.
이런 저런 고충을 지인들에게 푸념했더니 타박했다. 애가 무섭게 그 밤길을 혼자 오게 하냐, 11시면 한창 공부할 시간인데 중간에 맥 끊기게 그때 오게 하냐, 수능이 얼마 남았다고, 엄마가 힘들어도 참아야지... 등등..
'고3 학부모라면 이래야지'
고3학부모라는 타이틀. 공부는 아이가 하는 것이고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지만, 안 좋다 하더라도 그 또한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 여겼었다. 아이는 수험생의 위치에서, 나는 그 보호자로 책임과 응원을 다해 주는 것이 각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는 여전히 세상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고, 주변의 평판과 조언과 지나가는 말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고3 학부모라서 힘들지?" 이미 힘들다는 것이 당연한 전제로 깔려 있다. 힘들지 않다면 그건 너무 무심한 엄마라는 소리로 들렸다. 가족의 일상이 고3 아이에게 맞춰지다 보니 발생하는 어려움을 호소하자, "참아야지!! 수능 끝날 때까지 모든 일을 좀 미루고 양해를 구하고 하지 말아야지!!" 부모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다.
사실 이런 소리는 처음 듣는 소리가 아니었다. 학원에 대한 정보, 아이가 선택하려는 과와 대학의 입시전형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전문가 수준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무심하고 관심 없는 부모라는 취급을 받았다. 수시 원서를 접수할 때도 그동안 아이를 가르친 학교 선생님들과 학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가 잘 쓰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수시 원서를 작성해보니 모든 것이 생각과는 달랐다.
이런 경험들을 이야기하자, 왜 자소서 컨설팅 학원이 따로 있겠냐,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고 안 받고 차이가 크다는 등 수험생 학부모였던 선배 언니들의 폭풍 잔소리를 들었다. 그런 말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혹시나 무심한 나로 인해 아이가 손해를 보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불안해하는 아이를 위해 마감 전날까지 수시 원서의 내용을 함께 고치고 또 수정하며 마무리했었다.
▲ 먹고 살기 급급했던 우리 부모님은 후자에 가까웠다. |
ⓒ cocoandwifi, Pixabay |
나는 수능 1세대였다. 갑자기 바뀐 입시제도, 이전과는 다른 다양한 전형 방식, 모두가 서툴렀고 모호했던 고3 그해. 공부만 잘하면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었다고 믿었다. 바뀐 입시제도와 시험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대라 발 빠르게 이것저것 알아보고 준비했던 엄마들이 있는가 하면, 공부는 학생이 하는 거고 응시 접수는 학교에서 잘 해주려니 믿는 부모들로 나뉘었던 때. 먹고 살기 급급했던 우리 부모님은 후자에 가까웠다.
당시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 차선위 선택지로 입학한 대학에서 같은 반 하위권 성적의 친구가 더 좋은 과에 입학한 사실을 알았을 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또 차마 대놓고 원망하지도 못했다. 다른 집과 달랐던 우리 집 상황, 다른 엄마들처럼 발 빠르게 정보를 알아내 더 나은 선택을 해주지 않았던, 나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차마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런 기억들이 나로 하여금 좋은 엄마, 당연한 고3 엄마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만든 건 아닐까? 혹시나 지금 나의 어정쩡한 태도가 내 딸로 하여금 나와 같은 원망을 갖게 만드는 건 아닐까? 자식을 위해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 생각과 불안감이 주변의 조언과 잔소리에 무심할 수 없게 만드나 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도 하고 학원도 보내고 있는데 그 모든 것을 내가 일일이 다 신경 쓰고 책임져야 하는가, 잠까지 설치면서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 과연 고3 부모의 당연한 자세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걱정과 의문 사이를 주변 사람들의 과한 조언들이 파고들어 죄책감을 증폭시키나 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왜 부모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길 바라는지, 왜 엄마가 아이의 입시에 대한 죄책감을 다 떠맡아야 하는지 불만이다. 변한 시대에 맞게 고3 부모의 태도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밤에 독서실로 데리러 가기보다는 맛난 음식을 사먹고 택시를 탈 수 있는 카드를 주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는 요즈음, 과한 기대로 부담을 주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인생에 충실하길 바라는 바뀐 시대에 걸맞은 고3 부모이고 싶다.
물론 엄마라는 이 자리가, 안다고 해서 뜻대로 감정 조절이 되는, 걱정을 내려놓고 무심해질 수 없는 자리라는 걸 잘 알기에 나의 바람과 태도는 종종 엇갈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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