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로 팔겠다며 140억짜리 그림 태운 사업가 … 수익은 고작 1500만원
멕시코 검찰, 문화재 훼손 혐의로 수사 착수
[아시아경제 방제일 기자] 한 암호화폐 사업가가 멕시코의 국민 화가인 프리다 칼로(1907∼1954)의 그림을 대체불가토큰(NFT)으로 만들어 팔겠다며 원본을 불태우는 '쇼'를 연출했다가 돈도 잃고, 교도소에 갈 위기에 처했다.
블록체인 기술 업체 '프리다.NFT(Frida.NFT)'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르틴 모바라크(57)는 지난 7월 30일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한 저택에서 프리다 칼로가 일기장에 그렸던 1944년 작 채색 소묘 '불길한 유령들(Fantasmones Siniestros)'을 불태우는 이벤트를 벌였다. 그러면서 모바라크는 이 그림을 담은 NFT 1만개를 제작해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의 야심찬 계획은 빗나갔다. 모바라크는 지금껏 NFT 4개만 팔아 불태운 원본 가격의 1000분의 1밖에 건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멕시코 당국의 수사를 받아 최대 징역 10년에 처할 수도 있는 위기를 맞았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모바라크는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기부하기 위해 그림 소각과 NFT 판매를 추진했다"며 "주의를 끌기 위해 뭔가 극단적인 일을 해야만 했다"고 언급했다.
멕시코 출신으로 현재 플로리다에 거주 중인 모바라크는 1990년대에 닷컴 업체를 차려 큰 돈을 벌었으며, 항공기 사업과 광산개발 사업에도 뛰어들었으나 재미를 보지 못하다가 비트코인으로 지금의 부를 일군 것으로 알려졌다.
모바라크는 작품 소각 쇼 당시 이 작품의 고해상도 디지털 버전을 한정판 NFT 1만개로 만들어 개당 3이더리움(ETH)에 판매하고, 이 중 30%를 어린이를 위한 자선사업에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NFT는 4개 밖에 팔리지 않았고, 이 중 일부는 대폭 할인 판매했기에 그의 수중에 들어온 돈은 1만1200달러(약 153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NYT는 전했다.
모바라크는 이 그림 원본을 2015년에 개인 수집가로부터 사들였으며 작품의 시가는 1000만달러(약 140억원)라고 밝혔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투자금의 1000분의 1만 회수한 셈이다. 최근 암호화폐 시장이 급속히 냉각하면서 NFT 시장도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NFT 시장은 최근 거래량이 고점 대비 97% 급감하는 등 심각한 시장 침체를 겪고 있다.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관련 자산들도 마찬가지다.
모바라크는 이번 프로젝트가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삶의 질을 높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만약 프리다 칼로가 살아 있었다면 '얼른 하세요. 내가 불을 붙일 테니'라고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 그림의 고해상도 디지털 복제품을 NFT로 판매하는 것은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이 작품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한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림을 소각했다는 이유로 멕시코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멕시코 검찰은 자국의 '국민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문화재라고 주장한다. 이번 소각 사건이 8월 하순 유튜브 영상 공개로 알려지자 멕시코 검찰은 모바라크의 행위가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9월부터 수사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다 소각된 작품이 진품인지에 대한 의혹도 제기된다. 작품을 불태웠기 때문에 확인할 방법은 없다. 진품이 맞다 하더라도 값어치가 과연 1000만달러가 되느냐에 대해서도 미술계에서는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모바라크가 실제로 진품 원본을 불태운 것이라면 중요 문화재 파괴 범죄가 되고, 그게 아니라 가짜를 불태운 것이거나 진품의 복제품을 몰래 만들어 불태운 것이라면 사기, 위조, 저작권법 위반 혐의 등이 적용될 수 있다.
그는 NYT 기자에게 진품 원본을 불태운 것이 맞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소각을 실행하기 전에 변호사와 상의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모바라크는 '이 그림을 소각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보느냐'는 질문에는 한참 말을 하지 않다가 한숨을 푹 쉰 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하기를 좋아한다"고 답했다고 NYT는 전했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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