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칼럼]성냥팔이 소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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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당대 백린 공장의 잔인한 현실을 담은 동화라는 이야기도 있다.
백린 공장에서는 임금이 싼 어린 소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소녀들은 몇 년간 일하다가 백린 중독 현상으로 턱뼈가 녹아서 얼굴이 무너지고, 공장에서 쫓겨나곤 했다고 한다.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을 기꺼이 사주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어느 신사 같은 이웃의 시대로 갈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도 덜 외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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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당대 백린 공장의 잔인한 현실을 담은 동화라는 이야기도 있다. 백린 공장에서는 임금이 싼 어린 소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소녀들은 몇 년간 일하다가 백린 중독 현상으로 턱뼈가 녹아서 얼굴이 무너지고, 공장에서 쫓겨나곤 했다고 한다. 공장에서는 그렇게 소녀 노동자들을 쫓아낼 때 퇴직금은 커녕 성냥만 한 자루 들려 내보냈는데, 소녀들이 그렇게 얻은 성냥을 팔며 겨우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이면서, 당대 현실이 반영된 안타까운 이야기는 지금도 서글프게 다가온다.
추운 계절이 다가오니 우리 사회의 외로움에 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성냥팔이 소녀는 사람들에게 '성냥 사세요'라고 호소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저 소녀를 무시하고 지나갈 뿐이다. 소녀에게는 가정도 없지만, 이웃도 없고, 공동체도 없으며, 사회도 없다. 자신을 보살피는 이 하나 없이, 모두 '남'일 뿐인 세상을 살아갈 뿐이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도 점점 이웃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만 떠올려 보더라도, 온 동네 사람들이 이웃 아저씨이자 아주머니였다. 학교가 일찍 끝나면 문방구나 경비실에서 놀며 부모님을 기다리기도 했고, 같은 동의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당연히 친구 부모님들이 밥도 먹여주곤 했다. 요즘에는 옆집 사람과 인사하는 일도 드물고, 동네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두루 알고 지내지도 않는다. 서로 간섭과 참견이 없어진 개인주의 문화의 이점도 있지만, 그만큼 외로움이 심화 된 면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우리에게 이웃이란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사세요."라고 간절히 말했으나 무심코 지나친 길거리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 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의 '코로나 시대'는 우리를 더 극적으로 서로로부터 분리시켰다. 함께 만나는 일이 어색한 일이 되었다. 타인이란 당연히 눈빛과 숨과 비말을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라 경계하며 거리를 두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각자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의 스마트폰 세계로 함몰되고, 현실에서 서로를 만나는 경험은 더 드물어졌다. 서로가 서로로부터 유리되면서, 우리들은 더 외로워졌다. 스마트폰의 세계도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스마트폰 SNS 속 화려한 타인들의 이미지는 우리를 초라하게 느끼게 만들고,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켰다. 타인들은 점점 가까이 하고 싶기보다는, 가까이 있으면 시기질투나 느끼게 만들어 멀리해야 하는 존재 같은 것이 되었다. 우리는 더 자주, 더 수시로 온라인을 통해 연결되었지만, 진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내 곁의 이웃은 잃어갔다.
이런 시대에 아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있다면, 어떻게 다시 '이웃'을 되찾을 것인가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이웃은 과거의 이웃과는 또 달라야 할 것이다. 가까운 이웃들이 서로 비교하고 평가하며, 편견으로 낙인 찍고, 참견과 간섭으로 서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런 문화는 걷어낸 새로운 이웃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심화된 것은 그런 집단주의 속 이웃에 대한 피로감도 영향을 미쳤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새로운 시대의 이웃이란,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며 지지해주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를테면 '경청의 이웃'이면 어떨까 싶다. 훈계의 이웃, 강요의 이웃, 뒷담화의 이웃 같은 것이 아니라 서로를 환대하는 이웃 말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을 기꺼이 사주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어느 신사 같은 이웃의 시대로 갈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도 덜 외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정지우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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