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적 정보·부족한 인력… 자살예방법 과제 산적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쿠키뉴스 공동주관
“개인정보 보호제도 준수하며 업무 추진 쉽지 않아”
“260개 센터당 1명 충원 요청했지만, 기재부 33명만 승인”
“고위험군에 직접 찾아가는 예방 서비스 필요해”
“도움을 드리고자 자살 위험이 높은 관리 대상자에게 전화를 걸면 이미 ‘상 중입니다’라거나 ‘입원 중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채규창 광진구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자살예방 사업 수행기관이 적시에 개입해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자살시도자에 대한 양질의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효과적 자살예방을 위한 지역사회 협력전략 모색 정책포럼’이 개최됐다. 포럼에 모인 자살예방 정책, 법률, 의료계, 실무 전문가들은 자살시도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유관 기관이 신속히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8월부터 시행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하 자살예방법)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개정 자살예방법은 자살 위험이 높아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자살시도자가 발생한 경우, 본인 및 그 가족의 동의 없이도 경찰 및 소방과 자살예방 업무 수행기관 간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사후관리, 통계분석, 정책 설계를 위해 보건복지부·경찰청 간 정보제공도 가능하도록 했다.
채 센터장은 “현재는 자살시도 직후 3일 내에 경찰로부터 센터로 정보가 제공되는데, 이때는 자살시도자와 그 가족이 극히 불안정한 시기이므로 정신건강서비스를 제공받기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어 “자살예방법에 자살시도자에 대한 정보 확보 근거가 있지만, 개인정보보호 제도에 저촉되지 않도록 신경 쓰며 업무를 보느라 행정적인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김지윤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 사무관은 “개정안의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도 있지만, 전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된 사례통계를 보면, 법 시행 이후 10대가 연계되는 사례가 증가했다”며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위험군에게도 도움이 닿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면서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보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무관은 “보건복지부는 260개 센터당 1명씩 인력을 충원할 수 있도록 기재부에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33명의 충원만 관철된 상황”이라면서 “센터를 운영하기 위한 기초적인 업무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밀접한 사례관리를 실시하기 어려운 상황은 없어야 한다”고 우려했다.
정보공유 시스템의 체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공유했다. 김 사무관은 “차세대 사회서비스 정보시스템을 활용해 행정적 비용을 절감하고 정보 오류 및 누락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가 민감한 개인정보의 수집 및 파기의 주체로 기능할 필요가 있고, 정보보안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현장의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현장 실무기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청도 나왔다. 윤진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지역기반사업부장은 “인건비가 주어져도 최소한의 인력만 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고, 인원을 확보해도 업무를 볼 사무실 공간을 마련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업무를 위해 컴퓨터를 구입할 비용도 확보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완벽한 근무환경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업무를 볼 수 있는 안정된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살시도자를 보호할 공간을 설치할 필요성도 강조됐다. 윤 부장은 “자살시도자를 구조해도, 이들을 보호할 공간이 없어 일선 경찰의 어려움이 크다”며 “자살시도자가 다행히 다치지 않은 경우, 응급실에 가거나 병원에 입원하기 쉽지 않으며 가족이 인계해가지 않는 상황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이 밤새 업무를 보는 경찰서에서 보호하기도 어려운 만큼, 구조된 이들이 안전하게 밤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꼭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은빈 쿠키뉴스 기자는 “개정안 시행을 계기로 더 많은 생명을 구하려면, 법이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이 충분히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 고위험군에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며 “지역 중심으로 자살 고위험군을 위한 촘촘한 사례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취재 중 자살을 시도한 경험을 이야기해준 한 취재원은 ‘다음 진료 때 보자’는 정신과 의사의 사소한 인사가 자신을 지금까지 계속 살아있게 했다고 말했다”며 “가까운 곳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살은 더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며, 사회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문제로 이해되고 있다”며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자살을 예방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킬러·준킬러’ 빠진 수능, 작년보다 쉬웠다…최상위권 변별력 비상
-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 본회의 통과…야당 단독 처리
- “세대분리 성공해 자립하고 싶어요” 독립제약청년들의 바람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⑨]
- 이재명 운명의날 임박하자…친윤·친한, ‘특감’으로 뭉쳤다
- 수능 국어 지문 링크에 ‘尹정권 퇴진’ 집회 일정…수사 의뢰
- 야6당 합심해 김건희 특검법 처리…尹거부권 맞서 재표결 준비
- “수능 수학, 지난해보다 쉽게 출제…미적분·기하 다소 어려워”
- 이재명에 쏠리는 청년층 지지…尹반사효과인가 전략적 성과인가
- 전 세계에 김도영을 알렸다…그를 어찌 막으랴
- ‘손흥민 A매치 130경기’ 한국, 쿠웨이트전 선발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