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만 3개'였지만... 1세대 반도체 노동자는 아팠다
[반올림]
2007년 고 황유미씨의 죽음 이후, 반도체 전자산업의 위험성은 이제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됐습니다. 반올림과 함께 많은 분들이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알리려 노력해 온 덕분입니다. 전자산업 피해자들의 직업병 인정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녹색 회로 기판. |
ⓒ pexels |
한승교씨(1969년생)는 특허가 세 개다. 최종권리자는 삼성전자 주식회사, 발명자는 한씨와 동료들이다. 한씨는 "그때 일했던 사람치고 특허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 초기, 엔지니어들은 '맨땅에 헤딩'을 하며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다. 이들이 개발한 기술은 현재까지도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씨는 1989년, 만23세의 나이로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기흥공장과 천안공장에서 포토공정 엔지니어로 일했다. 포토공정은 반도체 웨이퍼에 감광제를 도포한 후 회로패턴을 형성하는 공정이다. 삼성이 1983년 DRAM 사업에 진출한다는 '동경 선언'을 발표했으니 한씨는 '반도체 노동자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일한 지 10년 만에 한씨는 말기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투석을 바로 진행해야 할 정도로 신기능이 망가져 있었다. 이후 한씨는 인사부서 등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다 2005년 퇴사했다.
2018년 11월 삼성전자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중재안에 따라 지원보상을 하겠다고도 밝혔다. 한씨는 회사가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했던 일에 자부심이 있다. 그와 동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삼성반도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지원대상이 아니었다. 억울했다. 지금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몸 바쳐' 일했는데 보상은커녕 오랜 투병생활로 몸만 망가졌다. 2019년 한씨는 반올림을 통해 산재를 신청했다. 발병 20년 만이었다. 역학조사를 실시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 3월 한씨의 질병을 산재로 인정했다. 지난 8월 16일 한씨와 화상인터뷰를 진행했다.
"일하면서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중심 잡고 서 있기 힘들 정도였다"
- 1999년 발병했는데 2018년에 처음 반올림을 찾았다. 그 전에는 산재라고 생각은 안 했나.
"산재라는 생각은 했는데 주변에 인정되는 사람도 없고 산재신청을 해봤자 안 된다는 얘기만 들었다. 제가 인사부서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안다. 회사 내부고발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다음날 해고됐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는 그런 시대였다. 회사를 등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 산재일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하면서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유기용제를 많이 사용하고 나면 술 취한 사람처럼 어지러웠다. 중심을 잡고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밖에 나가서 시원한 공기를 쐬고 다시 들어가곤 했다. 폴리이미드코팅자동화장치를 개발할 때는 그 팀 사람들이 전부 성기능 저하를 겪었다. 어떤 동료는 바람피운다는 오해를 받고 결국 이혼을 했다."
- 회사에 어지럽다고 이야기 한 적은 있나.
"수도 없이 이야기했다. 부장이나 과장한테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들도 같은 냄새를 맡는데 뭐 어떻게 하겠나?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와', 그게 전부였다."
- 일할 때 보호장구를 안 했나.
"장갑을 주긴 했는데 작업을 하다 보면 장갑이 녹아버렸다. 장갑이 녹는다고 일을 안 하면 윗사람들 눈치가 보이니까 그냥 맨손으로 다 주물럭주물럭 했다. 지금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그때는 회사나 노동자나 안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지금은 안 녹는 장갑을 준다고 한다."
아세톤, 신너, IPA, 현상액, PR, PR스트립용 용액이 남긴 것
한씨가 맨손으로 만졌다는 물질은 아세톤, 신너, IPA(이소프로필알코올), 현상액, PR, PR스트립용 용액 등이다. 이중 아세톤과 IPA는 다수의 실험에서 신장독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씨 역학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아세톤에 노출된 49세 남성은 경미한 횡문근융해증과 급성신부전이 발생했다. IPA를 마신 사람에게서 무뇨증, 과뇨증, 급성 세뇨관 괴사, 신부전이 발생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중 아세톤과 신너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고독성 물질로 분류돼서다. 아세톤은 당시 작업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물질이다. 수분을 빼앗아가는 아세톤의 성질 때문에 노동자들은 늘 손이 바짝 마르고 하얗게 일어났다고 한씨는 기억했다. 일을 하다 손에 PR 등의 화학물질이 묻으면 신너 같은 유기용제로 닦았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요구하는 플래시몹 삼성반도체 직업병 첫 피해제보자 고 황유미 씨의 7주기를 하루 앞뒀던 2014년 3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소속 회원들이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의 죽음을 표현하는 플래시몹을 벌이고 있다. |
ⓒ 유성호 |
위험한 환경 속 하루 17시간 근무
-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생산라인 현장과는 차이가 큰 것 같다.
"훨씬 열악했다. 당시에는 자동화가 거의 안 돼 있었다. 다 수동으로 했다. 가령 지금은 웨이퍼(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되는 둥그런 판)가 자동으로 이동한다. 당시에는 오퍼레이터가 화학약품이 발린 웨이퍼를 들고 직접 이동했다. 이동하는 내내 유해물질을 피부와 눈, 코, 입으로 들이마시는 거다."
- 같은 엔지니어라도 지금과 업무가 달랐을 거 같다.
"반도체 초기라서 '셋업' 작업이 많았다. 없던 작업·기술을 개발하는 일이다. 여러 셋업 작업을 했고 그중 폐액자동처리장치와 폴리이미드코팅자동화장치는 특허를 받았다. 셋업 할 때는 실험을 많이 하니까 더 많은 유해물질에 노출된다."
- 그럼 폐액자동처리장치를 만들기 전에 폐액은 어떻게 처리됐나.
"여사원(오퍼레이터)들이 스포이드처럼 생긴 펌프를 들고 폐액을 빼낸 다음에 말통에 담아놓으면 엔지니어들이 치우는 식이었다. 얼마나 환경이 안 좋았겠나. 지금은 작업과정에서 나오는 폐액은 모두 관을 통해 지하로 흘러들어간다. 우리가 개발한 이후에 모든 라인에 이 장치가 적용됐다. 삼성에 엄청나게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한씨의 역학조사 보고서에서 폐액자동처리장치와 폴리이미드코팅자동화장치의 개발과 셋업 과정에서 일반적인 엔지니어에 비해 화학물질과 세척액에 상당히 높은 농도로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복합적인 유기용제에의 노출은 만성신부전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
한씨는 이런 환경에서 하루 17시간씩 근무를 하곤 했다. 반도체를 만드는 족족 팔리던 시기였다. 밤늦게 퇴근하고도 설비가 고장 나면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장시간 노동 역시 산재 인정의 근거가 됐다. 다수 연구에 따르면 장시간 근무와 수면시간 감소, 야간교대근무는 신장기능을 떨어뜨리고 만성신장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 2007년부터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불거졌는데 그때 어떤 생각을 했나.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고 황유미씨 이야기 나올 때 '저게 무슨 산재야?' 생각했다. 사용하는 케미컬(화학물질)도 노동시간도 엔지니어보다 적었기 때문에 '황유미씨가 산재면 엔지니어들은 다 죽었어야 했겠네?'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아프다. 심지어 같이 근무했던 임원들조차 다들 50대 중후반에 사망했다."
- 본인의 산재가 인정됐을 때 어땠나.
"이제라도 인정이 돼서 다행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서류를 그대로 보내주고 '너도 신청하라'고 했다. 그만큼 아픈 사람들이 많으니까. 삼성에는 아직 서운한 게 많다. 그 당시에 고생한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서 싸운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인데 아무런 보상이 없으니까… 반도체 산업이 이렇게 발전했지만 당시에 일한 사람들의 희생은 알려지지 않았다."
* 인터뷰 | 이하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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