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규제만으로 사망사고 못 줄여…자율체계로 전환 시동
산업현장에서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자율규제와 자율에 기반을 둔 위험성 평가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처벌 위주의 법으로는 아무리 강하게 시행한다고 해도 법을 피하는 데 관심을 두기 때문에 안전사고 예방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주장은 고용노동부가 10일 주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수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나왔다. 이에 따라 정부의 산업재해 관련 정책이 처벌에서 예방 위주로 방향 선회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촘촘한 정부 규제만으로는 더는 사고사망 재해를 줄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사망사고 등이 좀처럼 줄지 않는 현상을 두고서다.
전 교수는 대안으로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제정하는 행위규범의 이행도 법령 준수로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업장 실정에 맞게 안전대책을 수립해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현장 적용성에서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어떤 사업장은 끼임 사고가 많고, 어떤 사업장은 추락사고가 잦다면 사업장별로 사고에 대처하는 방법이나 예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전 교수는 1960년대 강력한 안전사고 처벌법을 시행했던 영국이 자율 규제로 선회한 뒤 산재 사고가 급감한 사례를 제시했다.
60년대 영국은 감독관을 증원하고, 불시감독을 늘리는 등 다양한 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중대재해는 줄지 않고 잇따랐다. 10여 년이 지난 72년 영국은 로벤스 보고서를 내놨다. 로벤스 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7명의 전문가가 2년 동안 연구해서 낸 보고서다. 요지는 안전 관련 법규가 너무 많고, 규제가 심해서 사업장을 가장 잘 아는 사업주나 근로자의 참여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령을 일원화·체계화하고, 자율 기준의 활용과 자율 안전 관리 촉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오늘날 영국 산업안전보건 정책의 근간이 됐다. 다른 선진국도 이 보고서에 근거한 산업안전 정책을 수립하는 등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전 교수는 "영국은 자율규제시스템에 기반한 안전보건 철학 제시하고 실천하면서 안전사고 예방 효과를 획기적으로 높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자율적인 안전보건 규범의 제정과 그 이행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뒤 "지금부터라도 자율이라는 철학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처벌 위주의 산업안전 법령과 정책은 기업이 스스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없게 한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기업은 방향을 못 잡고 형사처벌을 피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이 됐다. 대기업조차 안전역량을 체계적으로 향상시키기보다 당장의 형사처벌을 피하는 데 관심이 집중돼 자율안전의 의지와 움직임이 오히려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사업주 스스로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감소대책을 마련하는 '위험성 평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이는 안전분야의 국제기준"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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