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우리 탓?" 尹 발언 전문까지 올렸다…들끓는 경찰·소방

채혜선 2022. 11. 10.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에서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뉴스1

“경찰서장이 뒷짐 안 지고 빨리 갔었다면 사고가 안 났을까요?”

지난 8일 오후 9시쯤 경찰 내부망 ‘폴넷’에 올라온 글 중 일부다. 현직 경찰관인 글쓴이는 “경찰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니라 왜 사고의 모든 잘못이 경찰에게만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냐”고 의문을 나타냈다.


경찰 “왜 우리에게만 책임을”


윤희근 경찰청장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인파관리(Crowd Management) 대책 TF’ 1차 회의에 참석 하고 있다. 뉴스1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칼끝이 사실상 경찰에 집중되면서 경찰 내부에서 반발 기류가 만들어지고 있다. “비판 화살이 경찰에게만 쏠리는 ‘경찰 만능주의’ 아니냐”는 게 반발의 핵심이다. 경찰관 A씨는 9일 오전 폴넷에 올린 글에서 “경찰에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라 경찰의 의무범위를 확인해봐야 한다”면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이나 그 시행령에 따르면 주무관청은 경찰이 아니라 행정안전부·소방청·해양경찰청”이라고 주장했다. “참사 책임이 전적으로 경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게 글의 요지다.
경찰 수사를 평가·점검하는 직책인 한 수사심사관은 “재난안전법에 따라 예방책임은 재난관리책임기관인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에 있고 사고 발생 시 긴급구조책임은 소방청에 있다”고 적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경찰 업무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며 경찰을 강하게 질타한 뒤 내부 분위기는 더 뒤숭숭해졌다고 한다. 폴넷에는 윤 대통령의 “그걸 조치도 안 해요” 등 당시 발언 전문을 옮긴 글도 올라왔다. 이 밖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경찰에 모든 포화가 집중돼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세상 모든 재난에 대한 책임은 대한민국 경찰이라는 명제가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다”와 같은 글이 잇따랐다.

참사 당일 현장에 급파됐던 한 경찰관은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태원 현장에서 ‘경찰 너희 때문이다’ ‘사람 죽여놓고 밥이 넘어가냐’ 등 온갖 욕을 다 들었다”며 “심폐소생술(CPR) 등 밤새 수습했는데, 현장에서 고생한 경찰이 모든 걸 떠맡는 분위기”라며 억울해했다. 경비 업무를 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힘없고 소위 ‘빽’ 없는 우리가 다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며 씁쓸히 웃었다.


용산소방서장 입건에…소방도 반발 커져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9일 오전 서울 용산소방서에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대응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사 당일 구조 현장을 지휘했던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경찰에 지난 7일 입건되면서 소방 내부에서도 반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꼬리 자르기식 수사”(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서울소방지부 8일 성명)라는 것이다. 특수본은 최 서장이 사고 당시 소방대응단계를 신속하게 발령하지 않은 경위 등을 파악하고 있다.

김주형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본부장은 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그 누구든 그분(최 소방서장)보다 더 잘했을지 의문”이라며 “현장 대원들처럼 현장을 챙겼는데 입건된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임무인지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일 소방청 119대응국장도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서장은 지휘뿐 아니라 관리, 상황 파악 등에 직접적·적극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 태만이나 늑장보고와 같은 부실 대응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는 일부 경찰 간부들과 최 소방서장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소방에서 내놓고 있다.

온라인에선 참사 직후인 지난달 30일 현장 브리핑에서 손을 떨며 설명을 이어간 최 소방서장에게 응원을 보내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서울소방재난본부나 용산소방서 인터넷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는 최 소방서장을 응원하는 글이 9일 오후 4시 기준 각각 1000여개 넘게 올라왔다. 한 시민은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걷지도 쉬지도 못하고 뛰던 모습을 국민은 다 보았다”는 글을 남겼다.

소방 내부도 경찰처럼 들끓고 있는 분위기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내부망에는 “소방 특사경(특별사법경찰)이 현장에서 경찰이 문제가 될 때 입건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왜 우리만 당하는 거죠?”라는 글이 올라왔다. 일선 소방서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구급대원이 인명구조에서 실패하면 과실치사를 따지겠다는 것인지, 힘없는 소방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소방 관계자는 “경찰이나 소방 한 기관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 전체 시스템이 붕괴한 사건”이라며 “인파가 많이 모일 것을 예상하고도 아무런 대책이 없던 이유부터 따지고 들어가야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본은 9일 브리핑에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내부 문건과 보디캠 현장 영상, 소방 무전 녹취록 등 수사 상황을 종합해 최 소방서장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특수본 관계자는 최 서장의 수사 진행 상황과 관련해 “증거와 법리에 따라 공정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