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수십대 밟고 지나갔다”… 오봉역 사고에 유족 ‘피눈물’

구자창 2022. 11. 10.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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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 선로에 시멘트 열차들이 멈춰서 있다. 코레일은 지난 5일 발생한 인명사고 원인 조사를 위해 오봉역 인근 대형 시멘트사들의 열차 운행을 당분간 중지시켰다. 연합뉴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속 30대 직원이 지난 5일 경기도 오봉역에서 화물열차 연결작업 중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벌어진 가운데 유가족이 “사전 예방을 했더라면 참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피해자의 동생이라고 밝힌 A씨는 지난 8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코레일 오봉역 사망사고 유족입니다(제발 많은 분들이 봐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앞서 지난 5일 오후 8시30분쯤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 2인 1조로 화물열차 연결·분리 작업을 하던 코레일 소속 남성 직원(33)이 기관차에 치여 숨지는 일이 벌어진 것과 관련해 “억울한 죽음을 알아 달라”고 한 것이다.

A씨는 “2018년 코레일에 입사했을 당시 저희 오빠는 사무영업으로 채용이 됐다. 그런데 사무영업직으로 입사를 했는데 수송 쪽으로 발령이 된 게 너무 이상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채용된 직렬과 상관없이 현장직으로 투입이 된 부당한 상황이었지만 힘들게 들어간 회사인데 어느 신입사원이 그런 걸 따질 수 있었겠느냐”며 원치 않게 위험한 업무를 감내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그래도 첫 회사이며 첫 사회생활이니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근무를 하던 와중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빠와 같이 입사했던 동기 한 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당시 같이 입사했던 동기 중 대다수가 그 충격으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하거나 다른 역으로 급히 떠났다고 전해 들었다”며 “저희 오빠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많은 선배분이 ‘여기서 조금만 더 있으면 원하는 역으로 갈 수 있다’ ‘너까지 그만두면 힘들다’고 해 조금 더 남아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트 판 화면 캡처


A씨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에 자갈이 깔린 철로를 매일 1만보 이상 걸으며 일했고, 평소 발목 염증 등으로 인한 다리 통증을 자주 호소했다고 한다. 고인은 항상 안전에 유의하고 있다며 안전사고와 관련해 개선이 많이 됐다고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는 34번째 생일을 이틀 앞둔 지난 5일 차가운 시신이 돼 돌아왔다. A씨는 부모님과 함께 오빠의 생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전화로 오빠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사망 사고 다음 날 현장을 찾아간 유가족은 열악한 근무 환경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A씨는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고 생각도 못했다. 우리 오빠가 일하던 현장을 본 부모님과 삼촌들은 말을 잇지 못했고 철조망에 매달려 오열했다”며 “철길 옆은 울창한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철조망으로 인해 사고가 나도 도망칠 공간도 없었고, CCTV는 당연히 설치돼 있지도 않았으며, 밤에는 불빛조차 환하지 않아 어렴풋이 보이는 시야 속에서 일을 했고, 유일한 소통수단인 무전기 또한 상태가 좋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A씨는 “그 무거운 열차 수십대가 저희 오빠를 밟고 지나 끝까지 들어갔다고 한다”며 “저 많은 열차를 단 2명이서, 그것도 숙련된 2명도 아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인원 포함 2명이서 손으로 연결하고 떼고 위치 바꾸는 등의 일을 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같이 일하던 사람이 1명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이상하다는 걸 빨리 인지해서 (작업을) 멈췄더라면, 피할 공간이 넓어서 빨리 도망이라도 쳤더라면”이라고 탄식하며 “오빠가 억울하지 않게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고 말했다.

A씨는 사망 사고 이후 코레일 측의 대응에서도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빈소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코레일 관련 직원들이라며 온 분들은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저희 오빠의 죽음은 빨리 해결해야 될 일이었다”며 “사고 관련해 물어도 아는 것이 없다며 영혼 없는 말만 했다. 오빠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우리 가족의 동태와 반응 살피기에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 측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봉역 사고 원인은 인력이 부족해 입환 작업을 2인 1조로 한 것”이라며 “3인 1조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코레일 관계자는 아직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 관련 내용을 명확히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코레일 측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긴급 안전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고인의 명복과 유가족께 조의를 표하며 장례 등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코레일 근로자 사망 사고는 올해만 4차례 벌어졌다. 모두 작업 중 열차에 치인 사고였다. 코레일은 열차 운행 시 선로작업 금지와 열차 경보 앱을 운영하는 등 안전 강화 대책을 마련했다며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사항이 없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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