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용산구청장이 아니면 어느 구청장이 책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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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인파가 이태원의 경사진 좁은 골목에 몰리면서 156명이 목숨을 잃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한 축제 전문가는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는 지역 축제나 마찬가지다. 통상 축제가 열리면 '우리 구에 사람이 많이 모이니 경찰에도, 소방서에도 도움을 요청하자, 구청 내 안전관리과, 관광과, 위생과 등 해당 과는 이러이러한 대책을 세우고 점검하자' 등 안전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4개월 차 신임 구청장'이라는 이유로 구청 행정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조항은 지방자치법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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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인파가 이태원의 경사진 좁은 골목에 몰리면서 156명이 목숨을 잃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외신에도 대서특필되며 전 세계에 ‘안전 후진국’ 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주최 측이 없는 행사였다는 이유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유령 축제’가 돼버렸다.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주최가 없는 현상’ 뒤에 숨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자.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열린 이번 핼러윈 행사가 무사히 성공적으로 치러졌다면 누가 가장 자신의 공으로 내세울까. 대통령도, 총리도, 시장도 아니다. 구청장, 현직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아닐까. 초선인 그는 다음 선거에 재도전하며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자신의 치적처럼 홍보했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가 뿌릴 재선용 홍보물에는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을 메운 가면 쓴 청춘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청춘의 거리로 치면 이태원은 강남역과 홍대에 밀렸다. A씨는 “그날 강남은 오히려 한산했다. 핼러윈이기 때문에 이태원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인 거 같다”고 했다. 그러니 세계적인 관광 명물 만들기에 사활을 거는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 분위기를 감안하면 용산구가 강남구를 제치고 청춘의 성지가 됐다고 핼러윈 축제를 엄청나게 홍보했을 개연성도 충분히 있다.
또 생각해보자. 관에 보고된 ‘행사 주최’가 없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이 모여든 행사에 책임 주체까지 없는 걸까. 아니다. 관리할 책임이 있는 주체는 있다. 용산구청이 미리 인지하고 상인 단체와 논의가 오갔던 것이다. 이날 인파가 모일 걸 예상하고 회의가 열렸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 핼러윈 관련 회의는 용산구청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세 번이나 열렸다. 지난달 26일 상인연합회 사무실에서 열린 ‘핼러윈 대비 관계기관 간담회’에는 구청과 상인연합회 관계자, 경찰, 이태원역장 등이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안전’에 대한 논의는 열외였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말이다. 다음 날인 27일에는 다른 장소도 아닌 용산구청에서 ‘핼러윈 대비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긴급’이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구청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부구청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박 구청장은 “저는 취임 4개월 차 구청장입니다. 어쨌든 부구청장이 주재하겠다고…”라고 이유를 댄 것으로 보도됐다. 모든 회의에 구청장이 반드시 참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참석하지 않았어도 안전은 챙겼어야 했다.
한 축제 전문가는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는 지역 축제나 마찬가지다. 통상 축제가 열리면 ‘우리 구에 사람이 많이 모이니 경찰에도, 소방서에도 도움을 요청하자, 구청 내 안전관리과, 관광과, 위생과 등 해당 과는 이러이러한 대책을 세우고 점검하자’ 등 안전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 보고 라인의 정점에 구청장이 있다. ‘4개월 차 신임 구청장’이라는 이유로 구청 행정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조항은 지방자치법에 없다.
정부가 정한 애도 기간이 끝나고 이제 책임을 묻는 시간이 돌아왔다. 구청이 행사를 위해 도움을 요청해야 할 대상인 119 소방관과 경찰에만 눈길이 쏠리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조차 정부 책임론에 선을 그으며 경찰만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수면 위에 부각된 그들 아래 숨어 폭풍이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구청장과 구청 공무원의 태도는 비겁하다.
기초단체가 중앙정부에서 벗어나 스스로 책임지고 자치행정을 하겠다는 것이 지방자치의 정신 아닌가. 국가 책임도 따져야 하지만, 가장 먼저는 풀뿌리 정치의 일선에서 민생을 책임지는 구청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태원 참사는 용산구청이 책임져야 할 일이지 다른 구청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지 않은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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