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중간선거]'잔물결'에 그친 레드웨이브, 왜?…反트럼프 막판 결집 분석도

뉴욕=조슬기나 2022. 11. 10.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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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기대했던 '레드웨이브(Red Wave, 공화당 열풍)'는 아니였다."

이른바 '경제심판'이 화두로 떠올랐던 미국의 11·8 중간선거에서는 당초 예상했던 공화당의 레드웨이브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4년 만에 하원 다수당 탈환은 확실시되고 있으나, 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의회 완전 장악을 노린 공화당으로선 다소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다. 현지에서는 '반(反) 트럼프' 세력의 막판 결집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개표 상황 살펴보니...기대 못미치는 레드웨이브, 상민하공 유력

중간선거 다음날인 9일(현지시간) 오전 현재 미 전역의 개표 분위기를 살펴보면 민주당이 독식해온 양원을 공화당과 분점하는 '상민하공'(상원 민주당 -하원 공화당)의 형태가 유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CNN에 따르면 미 동부시간 기준으로 이날 오전 10시15분 현재 하원 전체 435석 가운데 공화당은 201석, 민주당은 179석을 확정했다. 하원 장악을 위해서는 과반인 218석을 확보해야 한다. CNN은 공화당으로선 텃밭으로 분류되는 지역외에도 접전지 14곳의 승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같은 시간 상원의 경우 접전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상만큼 레드웨이브가 뚜렷하지 않다. '경합지'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양당 후보간 득표율 격차가 1%포인트를 오가는 초접전 끝에 민주당 존 페터만 후보가 승기를 잡았다. 기존 상원 의원이 공화당 소속이었음을 고려할 때 공화당으로선 뼈아픈 패배다.

또 다른 최대 경합지인 조지아주 상원 선거의 경우 12월 결선투표로 이어지게 됐다. 양당 후보 모두 과반 득표에 실패한 탓이다. 조지아주 상원 선거는 민주·공화당의 상원 과반 여부를 결정하는 중대 승부처로 평가돼왔다. 폴리티코는 "공화당의 상원 다수당 진입 길이 좁아졌다"며 "상원 선거는 조지아, 네바다, 애리조나, 위스콘신에 달린 것으로 예상돼왔다"고 전했다. 상원 다수당을 위해서는 51석이 필요한데,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50석만 가져와도 부통령이 당연직 상원의장으로서 캐스팅보트를 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NBC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확실히 '공화당 웨이브'는 아니었다"고 자평했다.

민주당은 주지사 선거에서도 예상 밖 선전하고 있다. 현재 주지사 선거가 치러지는 36곳 중 공화당이 24곳, 민주당이 22곳에서 승리를 확정했다. 민주당은 현재 민주당 소속이 주지사인 메인, 뉴욕,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일리노이, 미네소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하와이 등 13곳을 수성하고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있는 매사추세츠와 메릴랜드를 탈환했다.

특히 뜻밖의 접전 지역으로 대두된 뉴욕주의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인 캐시 호컬 현 주지사가 공화당 후보인 리 젤딘 하원의원을 안정적 격차로 꺾어 눈길을 끈다.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뉴욕주의 경우 대표적 블루스테이트지만, 이번 중간선거를 앞두고 급격히 공화당 후보의 선전이 확인되면서 레드웨이브가 현실화할 수 있을 지 주시하는 지역으로 떠올랐었다. 민주당으로선 뉴욕주지사를 공화당에 빼앗길 경우 상징적 면에서 타격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공화당의 경우,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전날 일찌감치 재선을 확정한 점이 눈에 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공화당 세라 허커비 샌더스 후보는 아칸소 주의 첫 여성 주지사가 됐다.

◆레드웨이브 왜 없었나...'경제심판론' 속 공화당에도 경고

기정사실화됐던 공화당의 하원 탈환 외에 상원에서 민주당이 예상외로 선전하면서 현지 언론들은 레드웨이브는 없었다는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역시 완패 전망이 옅어지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이다. 뉴욕타임스(NYT)는 "40년 만의 최고 수준인 인플레이션, 인기없는 대통령 등 모든 요건이 민주당에게 불리했지만, 공화당은 물결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실상 미 유권자들이 정권심판 성격이 짙은 이번 선거에서 일단 공화당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양당에 함께 경고의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평가된다.

현지에서는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공화당에게 내준 가장 큰 요인으로는 인플레이션 등 악화한 경제라는 점에 이견이 거의 없다. 전날 에머슨리서치가 CNN, NBC, ABC 등 미국 방송사들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2%는 투표에 영향을 미친 핵심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이어 낙태문제(27%), 범죄(12%), 총기정책(12%), 이민문제(10%)가 뒤따랐다. 유권자 46%는 2년 전보다 가계 재정 상황이 나빠졌다고 답했고, 더 나아졌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AP통신의 조사에서도 유권자 10명 중 8명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예산편성권, 입법권이 달린 하원 다수당 자리를 공화당에 내준 것 자체가 일종의 '경제심판론'이 작용한 것이란 평가다. 바이든 행정부로선 남은 2년 임기 동안 하원의 강한 견제를 받으며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 유권자들은 상원마저 공화당에게 넘기지는 않았다. 경제가 가장 큰 이슈로 꼽혔음에도 레드웨이브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면은 유권자들이 낙태, 민주주의 수호 등의 이슈를 두고는 민주당을 선호했음을 확인시킨다. 공화당이 2020년 대선 등 선거 불복 프레임을 강조하면서 유권자들 사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는 우려가 커진데다, 낙태 금지를 외친 것도 표심을 등지게 하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NYT는 "민주당은 낙태권, 의료보험, 사회보장제도 등을 강조해왔다"며 "경제와 인플레이션이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나, 낙태 역시 강력한 이슈였다"고 전했다. 연방대법원이 지난 6월 폐기한 로대웨이드에 대해 불만 또는 분노를 표현한 유권자의 60% 이상이 민주당을 지지한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상한 것도 오히려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요인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 현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에 실망감을 표했던 민주당 지지층들이 '트럼프만은 안된다'고 막판 결집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공화당이 유리한 정권심판론의 환경 속에서도 압승을 거두지 못한 배경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대선이 사기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을 지지한 225명 이상의 상·하원, 주지사, 주 국무장관 등의 후보가 출마했지만 이들의 성적표는 기대에 미달했다.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소속인 브라이언 켐프 현 주지사는 민주당을 여유롭게 꺾었으나, 같은 지역 상원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민 허셜 워커 공화당 후보는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켐프 현 주지사는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검표 요구를 거부했던 인물이다. 뉴햄프셔 지역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사기 주장을 비판해온 크리스 스누누 주지사는 재선에 성공했으나, 친트럼프인 돈 볼덕 공화당 후보는 패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은 후보들이 일반 공화당 후보들에 비해 훨씬 고전했다"면서 "그의 개입이 없었다면 공화당이 오히려 더 좋은 성적표를 받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치분석가인 척 고플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닌,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이 지지했던 후보가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면 공화당이 손쉬운 승리를 챙겼을 것"이라고 밝혔다.

친트럼프 후보들의 부진 속에 공화당 내 차기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20%포인트 차의 압승을 거두며 일찌감치 재선을 확정지었다. 그는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내 차기 대권주자 경쟁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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