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퍼스펙티브] 비장의 방패 전술핵…7차 북핵 실험 시 힘 받을 듯

남정호 2022. 11. 10.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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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대북 억제력 강화 방안
심리적 효과 크고 쉽게 쓸 수 있어
'북핵 폐기 시 전술핵 철수' 의견도
상황 변화에 대비해 검토 바람직

전술핵 재배치 논란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한·미 연합훈련을 구실로 북한이 최근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자 그 대책으로 거론되는 게 있다. 바로 전술핵 재배치다. 여권 중진들이 나서서 전술핵을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와대 안보라인에서도 신중히 검토 중이란 이야기도 들린다. 반면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극히 부정적이며 야권에서도 반대한다. 이 같은 논란을 계기로 전술핵이 무엇이며 도입 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등을 짚어본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제한된 피해 주는 전술핵
전술핵이란 전투 현장 등에서 적군의 공격력을 줄이거나 특정 목표물을 파괴하는 등 제한된 피해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소형 핵무기를 뜻한다. 따라서 위력이 작고 이를 운반하는 미사일이나 포탄의 사거리도 짧은 게 일반적이다. 소형 핵탄두를 장착한 중력탄, 단거리 미사일, 포탄, 지뢰 또는 어뢰와 개인이 등에 메고 운반할 수 있는 핵 배낭이 여기에 해당한다. 현재 미군이 보유 중인 전술 핵무기는 B61 중력탄으로 0.3~170kt까지 파괴력을 조절할 수 있다. 한때 북한의 지하 방공호를 파괴하기 위해 미군이 전술핵을 벙커버스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전략핵이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적국의 대도시 및 산업기지 등을 단숨에 날려버림으로써 전쟁 양상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핵무기다. 전략핵을 대규모로 보유한 미국·러시아·중국 등은 다른 대륙에 위치한 적국을 타격하기 위해 사거리 5500km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실어 발사한다. 현재 미국의 주력 전략핵인 미니트맨3의 위력은 475kt으로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16kt)의 30배나 된다.

무기고에 보관 중인 전술핵 B61-12 중력탄의 모습. 현재 유럽의 5개 나토 회원국에 100여발이 분산배치돼 있다. 이밖에 미국 내에도 500여발이 존재하며 현재 개량 사업이 진행 중이다. 중앙일보 사진 자료

1991년 전술핵 철수
적잖은 인사들이 들여오자고 주장하는 전술핵은 과거 한국에도 상당 기간 존재했던 무기다. 미국은 한국전 이후 펼쳐진 냉전 시대 때 동서 진영 간 대립이 격화되자 1958년부터 전술핵을 들여왔다고 한다. 8인치 및 155mm 곡사포용 핵포탄과 서전트 및 랜스 지대지 미사일 등에 장착할 소형 핵탄두가 미군 부대에 보관돼 있었다. 북핵 문제가 본격화된 1990년대 이전까지 전술핵은 사실 북한을 겨냥했다기보다는 한반도 유사시 중국과 소련의 개입에 대비한 측면이 강했다. 한국 내 전술핵 규모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으나 1967년 950개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전술핵은 1987년 미국과 소련 간에 맺은 중·단거리 핵미사일 폐기조약을 계기로 1991년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철수 당시 한국엔 100개의 전술핵이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2S7M 말카 자주포. 전술핵 포탄을 쏘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디펜스 블로그

전략핵보다 실용적
대북 억제력 강화 방안으로 전술핵 재도입이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 까닭이다. 우선 전술핵의 위력은 전략핵보다 떨어지긴 해도 재래식 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막대하다. 지금까지 개발된 가장 강력한 재래식 무기라는 러시아 열압력폭탄(ATBIP)의 폭발력도 44t에 불과하나 웬만한 전술핵은 이것의 수십 배, 수백 배에 이른다. 대북 억제력을 결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이유다.
둘째, 전략핵은 엄청난 파괴력과 그 후유증으로 최후의 무기로 꼽힌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 같은 핵보유국을 향해 전략핵을 쓴다는 것은 완전한 상호 공멸을 의미하기에 사용 자체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긴급 상황이 아닌 한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반면 전술핵은 제한적 피해라는 특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사용이 어렵지 않다. 실용성 면에서 전략핵보다 낫다는 얘기다.
셋째, 심리적 효과가 크다. 특히 적이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핵으로 공격해 오더라도 똑같은 핵으로 응징할 수 있어 상대가 경거망동할 수 없을 거라는 인식 자체가 국민에 심리적 안도감을 준다. 이란이 어떻게든 핵을 개발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란의 가상 적국인 이스라엘은 1950년대에 핵무기 개발에 착수, 이미 200개 이상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끝으로 재배치 지지자들은 전술핵을 들여오거나 도입하겠다고 선언하면 핵감축 협상 등을 통해 북핵을 없애거나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자발적인 핵 폐기 의지가 사라진 현 상황에서는 그나마 효과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한반도 비핵화엔 걸림돌
전술핵 재배치에는 적잖은 단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궁극적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전술핵을 들여온 상황에서 북한에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전술핵 재배치를 조건부로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전술핵을 운용하되,북이 핵을 폐기하는 즉시 우리도 철수시킨다는 방침을 천명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북한이 핵을 폐기할 동기를 얻게 된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둘째, 전술핵이 생기면 핵전쟁 위험도 커질 수 있다. 휴전선 이남에 전술핵이 없으면 북한은 핵 대신 재래식 무기로 공격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도발 시 핵 보복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처음부터 핵을 동원, 남쪽의 전술핵을 철저히 파괴하려 할 게 틀림없다.
셋째, 한국에 미군 소유의 전술핵이 존재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의 분쟁 발생 시 이를 주요 공격 목표로 삼을 게 뻔하다. 비록 전략핵만큼은 안 되지만 전술핵은 파괴력을 큰 폭으로 키울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여차하면 위협적인 대량살상무기로 변신하게 된다. 그러니 서해 바로 건너편에 배치된 미군 소유의 전술핵을 중국이 그냥 둘 리 만무하다.

2008년 당시 미 공군 유럽ㆍ아프리카 사령관인 로저 브래들리 공군 대장이 네덜란트의 볼켈 공군기지에서 열린 B61 전술 핵탄두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미 공군]

현 상황에선 실현 곤란
만약 윤석열 정부가 거세게 반발하는 야권과 진보세력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 전술핵 재배치를 추진한다면 과연 성사시킬 수 있을까. 현재로써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답 같다.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해줄 수 있는 미국의 현 바이든 행정부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사실 핵 사용 및 확산 반대주의자다. 핵무기가 많아질수록, 배치 지역이 늘수록 핵 위험도 커진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핵 위험은 핵전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의 실수, 또는 컴퓨터의 오작동에 의한 핵미사일 발사, 핵무기 폭발사고에 따른 방사능 누출, 도난 또는 밀매를 통한 테러 단체로의 유출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취임 후 입장을 바꾸기는 했지만 대선 후보 시절 바이든은 "핵 공격에만 핵무기로 대응한다"는 원칙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미국 핵전략의 근간을 설명한 '2022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도 지난해에 이어 핵 전략 못지않게 핵 위험에 대한 내용이 비중 있게 실려있다.
이런 바이든이라 현 상황에서 전술핵 한국 재배치를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난달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전술핵 재배치론을 두고 "무책임" "위험" 운운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서 전술핵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한국과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며 재배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뉴스1

미 정치인도 전술핵 지지
그렇다면 북한의 위협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불가능한 카드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상황이 급변하면 전술핵도 하나의 유력한 대책으로 검토될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전환을 끌어낼 만 한 상황 변화라면 북한의 7차 핵실험 또는 최신형 ICBM 실험 성공 등을 꼽을 수 있다.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 핵 위협이 크게 고조되면 바이든의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든 행정부는 여차하면 핵무기까지 동원하는 확장억제로 동맹국 한국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전면적 공격이라고 보기 애매한 '회색지대'에서의 도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2010년 천안함 격침 사건이 터지자 미국은 남쪽 보복 공격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해 자제시키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런 터라 북한군이 백령도를 기습 공격해 점령했을 경우 미국이 확장억제 차원에서 응징에 나서줄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것이다.
따라서 적잖은 부작용에도 불구, 많은 전문가는 전술핵 재배치를 효과적인 대북 억제력 강화 방안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거물 정치인이었던 고(故) 존 매케인, 코리 가드너 전 공화당 상원의원 등도 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따라서 지금은 현실 가능성이 작더라도 앞으로의 상황 변화를 대비해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일 것이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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