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대 못 당해"…盧 고슴도치론, 제주해군기지 이어졌다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6〉 ‘고슴도치론’과 제주 해군기지
제주 해군기지는 2016년 2월 준공했다. 건설 발표 후 준공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해군기지가 위치한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둘로 쪼개져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마을 주민 등 600명가량이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이나 벌금형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3·1절 특사에서 19명을 사면·복권했지만 갈라진 마을의 앙금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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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독도 주변 탐사선 보내 도발
충돌 직전 상황, 해군력 열세 절감
노무현 “동해 대신 블루씨 어떠냐”
아베 총리 “실무 협의 없었다” 거절
」
제주 해군기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이었다. 진영 논리를 넘어선 실용주의적 결정이었다. 해군기지는 청와대 안보실 소관이지만 노 대통령은 정책실장인 내 의견도 물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노 대통령이 지지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정책은 크게 세 가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이라크 파병이다. 이번엔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한다.
해군 반대로 변경된 거가대교 설계
먼저 개인적인 일화가 있다.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시절, 나는 재정경제원에서 예산총괄과장을 거쳐 예산1심의관(국장급)을 맡았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였다. 그때 건설교통부에서 대전~진주 고속도로 예산안을 가져왔다. 나는 건교부 담당자에게 제안했다. “경남 통영(옛 충무)이 관광도시 아닙니까. 고속도로를 진주에서 끝내지 말고 통영까지 연결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건교부는 검토 끝에 구간 연장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건교부는 경남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 건설계획을 포함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에서 거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와 연결하는 다리였다. 당시 거제는 대우조선·삼성중공업 등 조선업을 중심으로 인구도 늘고 성장 속도도 빨랐다. 그런데 주변 도시와 연결하는 도로망이 매우 부족했다.
다리를 만드는 데 최대 걸림돌은 돈이 아니었다. 해군이 펄펄 뛰었다. 당시 경남 진해(현 창원시 진해구)에는 해군작전사령부가 있었다. 해군의 주장은 이랬다. 거가대교는 해군 함정이 진해에서 부산 쪽으로 나가는 길목에 놓인다. 전시에 북한 폭격기가 내려와 다리를 폭파하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 바닷길이 막혀 해군 함정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혀 납득이 안 됐다. 휴전선에서 보면 거가대교는 최후방이었다. 최후방까지 적의 정밀폭격을 받는다면 전쟁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군의 입장은 완강했다. 재경원 국장 정도의 힘으로는 해군을 설득할 수 없었다. 청와대도 중재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거가대교 구간의 상당 부분을 바다 밑에 집어넣어 침매터널로 건설했다. 공사비는 3000억원 넘게 더 들었다. 나중에 인천대교를 건설할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는데 결론은 달랐다. 해군기지를 인천에서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고 인천대교는 바다 위에 세웠다.
그래놓고 진해 해군작전사령부는 2007년 부산으로 옮겼다. 거가대교를 완공하기 3년 전이다. 처음부터 해군사령부를 이전하고 거가대교를 바다 위에 건설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다리 위 경관도 뛰어나 명물이 됐을 것 같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당시에도 해군기지 입지를 둘러싼 논의가 없던 건 아니었다. 내 생각은 이랬다. 진해는 일제강점기 때 만든 군항이다. 일제는 주요 함대사령부를 본토에 두고 진해에는 해군 정비창을 세웠다. 진해는 주변에 섬이 많고 해안선도 복잡하다. 방어에는 유리한 점이 있지만 먼바다로 신속히 출동하기엔 불리하다.
나는 그때 해군에 기지를 옮길 뜻은 없는지 물었다. 후보지는 제주도였다. “통일신라 때 장보고는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해상무역을 장악하지 않았습니까. 동중국해나 태평양까지 생각하면 진해보다 제주도 같은 데가 좋지 않겠습니까. 예산이 필요하면 힘껏 돕겠습니다.” 그 무렵 해군도 내부적으로는 비슷한 발상을 했던 모양이다. 1995년 국방중기계획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안이 반영됐다.
‘고슴도치론’으로 자주국방 역설
10년 정도 지나 이번엔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 해군기지를 본격 추진했다. 그는 해군력 강화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국방부 장관에 약 40년 만에 해군 출신(윤광웅 장관)을 기용할 정도였다. 국방예산도 해군에 우선 배정했다. 노 대통령은 유사시 우리 무역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주에 해군기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때 경험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게 의견을 구했다. “제주도로 가야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그러면서 김영삼 정부 때 경험을 자세히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고슴도치론’을 말했다. 당장 우리가 강대국과 대등한 전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하지만 누구든 우리를 건드리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게 한다는 논리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강조하며 썼던 말인데 노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우리 스스로 지킬 힘을 길러야 했다. 제주 해군기지야말로 노 대통령이 구상하는 자주국방의 첫걸음이었다.
노 대통령이 해군력 강화를 고심한 데는 일본과의 해상 갈등이 큰 영향을 줬다. 2006년 4월이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독도 주변의 수로를 조사한다며 해상보안청 소속 탐사선을 보냈다. 우리는 무장을 갖춘 해양경찰 선박을 출동시켰다. 일본은 자위대 출동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군사훈련을 벌였다.
청와대에서 비밀회의를 열었다. 나는 회의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나중에 내용을 전해 들었다. 우리 해군과 일본 자위대가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며칠밖에 못 버틴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도 강경하게 나가자는 게 회의 결론이었다. 설마 미국이 한일 간 군사적 충돌을 가만히 두고 보겠느냐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한다. 결국 일본 탐사선은 철수하고 자위대는 출동하지 않았다.
“평화의 섬에도 비무장은 없다”
사실 노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회심의 카드’를 꺼낸 적이 있다. 그러나 불발로 그쳤다. 2006년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한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아베는 방한 중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며 나름대로 한·일 관계에 성의를 보였다. 역대 일본 총리로는 처음이었다. 6년 후 2012년 말 ‘아베 2기’ 내각 출범 때와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 후 노 대통령이 푸념했다. 자신의 제안을 아베 총리가 단번에 외면했다는 것이다. “동해니 일본해니 바다 이름 갖고 서로 싸울 거 있습니까. 한자로 청해, 영어로 블루씨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노 대통령은 아베에게 이렇게 제안했다고 한다. 서해를 황해 또는 옐로씨라고 부르는 것처럼 동해도 제3의 이름으로 부르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실무진에게서 아무것도 전달받은 게 없다”며 말을 끊었다고 한다. 사전에 실무 협의도 안 한 얘기를 난데없이 왜 꺼내느냐, 이런 뉘앙스의 반응이었다. 노 대통령은 회담이 끝나고 일본 측의 태도에 답답해했다. “이럴 거면 뭐하러 정상끼리 만나 얘기하겠습니까. 사전에 조율된 얘기 외에는 한마디도 하면 안 되는 겁니까.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할 수도 있는데 아예 논의 자체를 부정해 버리네요.”
노 대통령이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한 데는 그런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는 뜻이 있었다. 다만 외교 관계를 고려해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은 해군기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직접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2007년 6월 제주도에서 지역 주요 인사들을 모아 오찬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강조했다. “어떤 평화의 땅에도 비무장은 없습니다. 제주 해상에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 예닐곱 시간 걸리는 남해안에서 올 수 있겠습니까.”
노 대통령이 물러난 뒤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상황은 복잡하게 꼬여갔다. 시위대와 경찰 간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지며 나라 전체가 큰 혼란과 진통을 겪었다. 준공 후 6년 넘게 지났지만 진통은 끝나지 않았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 국민 누군가에겐 상처로 남았다. 지금도 제주 해군기지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정리·대담=주정완 논설위원, 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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