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무의 그림세상]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미술
인류 최초의 메트로폴리스는 어디일까. 고고학자들의 대답은 명확하다. 바로 오늘날 이라크 남쪽 해안지역이 현대 도시문화의 원형이 꽃핀 곳이라고 한다. 여기에 6000년 전부터 여러 도시가 속속 등장하는데, 이중 우르크라는 곳은 당시에도 인구가 5만 명이 넘었다. 현대 메트로폴리스의 기원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경이로운 점은 우르크 주변으로 우르·라가쉬·에리두 같은 대규모 도시가 등장했고, 이런 도시들은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서 바빌론과 니네베같이 인구 10만 명이 넘는 초대형 도시로 발전한다. 오늘날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뉴욕에서 워싱턴DC까지 형성된 메갈로폴리스 같은 도시집단광역을 수천 년 전에 이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
「 인류 최초 문명의 웅장함
국립중앙박물관서 전시
점토판·청동상·사자상 등
6000년 전 사람들 만나
」
오늘날 이라크를 가로지르는 두 개의 강줄기를 따라 형성된 고대 메트로폴리스들이 바로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원동력이다. 이 도시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가늠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무료로 열리지만 전시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박물관의 맨 위층인 3층 세계문화관의 첫 전시실로, 그 직전에는 이집트 문명전이 열렸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전의 키워드는 도시인데, 이 점을 잘 감상하려면 작품의 출토지를 유심히 봐야 한다. 예를 들어 13개 점토판 중 가장 연대가 이른 ‘맥아와 보릿가루 수령 내역을 적은 장부’의 경우 우르크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면에는 거칠게 빻은 보리와 맥아의 양이 각각 적혀있고, 뒷면에 둘의 총량이 기록돼 있다. 점토판에는 쿠심이라는 양조업자의 이름까지 적혀 있다. 마치 오늘날의 영수증 같은 거래기록을 5000년 전에 남긴 셈이다. 이런 점토판이 오갈 정도로 경제활동이 활발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르크에서 멀지 않은 라가쉬를 지배하던 구데아왕은 자기 모습을 남기는 데 열성적이어서 지금까지도 27개의 조각상이 전해오는데, 이 중 한 점을 이번에 만날 수 있다. 돌의 생김새를 살리면서도 왕의 신체를 다부지게 잡아냈다. 구데아왕 조각상과 함께 청동으로 만든 통치자의 초상도 눈에 들어온다. 아쉽게 출토지는 알려지지 않으나, 제작연대나 부리부리한 눈과 위엄 있는 수염으로 미루어 보아 2334년부터 2154년까지 이 지역을 지배한 아카드 왕조의 사르곤왕 청동상과 비슷해 보여 같은 시기의 유물로 판단된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신-앗슈르 제국(기원전 약 911~612년)의 수도 니네베에서 출토된 부조를 빼놓을 수 없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반기에 등장했던 신-앗슈르 제국은 자신들의 수도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번에 출품된 ‘조공 행렬에 선 외국인 마부’와 ‘강을 건너라고 지시하는 앗슈르 군인’ 등은 이 제국의 왕궁 벽을 꾸몄던 부조이다. 원래는 채색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 점을 생각하고 감상하면 더 화려하고 위엄 있게 보일 것이다.
성경에 예루살렘을 뒤이어 두 번째로 자주 나온다고 하는 바빌론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였다. 당시 인구가 15만 명에 이르렀고 도시 안은 세계 곳곳에서 온 상인과 관료들로 붐볐다. 특히 이 도시를 지키는 높이 14m의 이쉬타르 문은 화려하고 웅장하기로 유명했는데, 이 문의 일부였던 ‘사자 벽돌 패널’ 두 점도 이번에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에 가장 흔한 재료는 점토이다. 이곳 사람들은 일찍이 점토를 반죽해서 종이 대신 기록매체로 쓰기도 했고, 벽돌로 만들어 거대한 건물을 짓기도 했다. ‘사자 벽돌 패널’은 벽돌에 유약을 입혀 구운 것으로 특히 이 지역에서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벽돌 제작 기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나아가 절도 있게 움직이는 사자를 통해 용맹함을 뽐내려 했던 통치자의 의지까지 읽어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9년부터 세계 문화를 소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집트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같이 고대 문명에 관한 소장품은 아직 미비하여 해외 박물관에서 임대해 오는 실정이다. 이집트 문명전은 미국 브루클린박물관으로부터 빌려온 것이고, 이번 메소포타미아 문명전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온 66점의 문화재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전시는 2024년 1월 28일까지 열린다. 이후 작품들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돌아가게 된다. 해외 유수의 박물관과 협력해서 문명전을 이어나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적게라도 소장품을 확보하여 3층 세계문화관에 있는 인도나 중국 전시실처럼 언젠가는 상설전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민영 전 남친' 재력가 실체…"빚 100억인데 하룻밤 술값 1억" | 중앙일보
- 대통령실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불가”…MBC “언론 취재 제약” | 중앙일보
- 서머스가 본 美 기준금리 “난 5% 후반까지로 본다” | 중앙일보
- 뚱뚱할수록 수술후 생존율 높다?…위암女 울리는 '비만의 역설' | 중앙일보
- 손흥민 "단 1% 가능성만 있다면…" 수술 뒤 첫 심경 글 보니 | 중앙일보
- 심해 1700m서 北미사일 건졌다…모래사장서 바늘 찾아낸 해군 | 중앙일보
- "자위대 못 당해"…盧 고슴도치론, 제주해군기지 이어졌다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 중앙일
- 딸 앞에서 영화배우 아내 흉기로 찌른 전 남편이 받은 형 | 중앙일보
- 팽목항 136일 지킨 '울보장관' 이주영 "사퇴 당연한 선택이었다" [스팟인터뷰] | 중앙일보
- "모든 게 우리 탓?" 尹 발언 전문까지 올렸다…들끓는 경찰·소방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