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생애자산관리 두 퍼즐
호랑이는 늙어서 사냥할 수 없으면 죽는다. 반면에 사람은 생산 능력이 없어져도 오래 산다. 돈이라는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호랑이가 돈이 있다면 젊을 때 멧돼지를 많이 잡아서 남은 걸 돈으로 바꾸었다가, 늙어 사냥이 어려울 때 그 돈으로 젊은 호랑이가 잡은 멧돼지와 바꾸면 오래 살 수 있다. 호랑이도 생애자산관리가 있으면 평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생애자산관리는 크게 축적과 인출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둘은 반대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축적은 소득을 수단으로 자산축적이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인출은 축적된 자산을 수단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얻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 또한, 축적은 자산을 증식시키는 것이 중요한 반면 인출은 죽을 때까지 안정적인 소득이 이어지게 해야 한다. 이러한 축적과 인출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퍼즐을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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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시장 참여 퍼즐과
연금화 부족 퍼즐 풀어야
개인은 장기자산배분 유지
금융사는 수탁자 책임을
」
첫번째는, 축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식시장참여 퍼즐(stock market participation puzzle)이다. 축적은 자산을 증식시키는 과정으로 여기에는 주식이 가장 적합하다. 특히, 젊을 때는 채권의 성격을 띤 인적자본이 풍부하므로 충분히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는 주식 보유 비중이 높지 않은데, 이를 주식시장참여 퍼즐이라 부른다.
미국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06년에 디폴트 옵션 제도를 도입했고 이후 퇴직연금에서 주식 비중이 60%를 넘게 됐다. 미국 이외에 영국·호주 등 선진국들 역시 주식시장참여 퍼즐이 많이 해소됐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주식시장참여 퍼즐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퇴직연금에서 DC(확정기여형)와 IRP(개인형 퇴직연금)의 경우 보유 주식 비중이 2021년 현재 10% 정도 된다. 주식 비중이 낮다 보니 장기적으로 수익률도 낮을 수밖에 없어, 지난 5년간 퇴직연금 DC의 연 수익률이 2% 수준에 머물렀다.
두번째는 인출 과정에서의 연금 퍼즐(annuity puzzle)이다. 퇴직을 하면 축적한 자산에서 인출을 통해 소득을 만들어야 한다. 주식 시장 침체가 올지, 얼마나 오래 살지 불확실할 때는 약속한 연금액을 평생 지급하는 종신연금을 사는 게 좋다. 이를 연금화한다고 하는데 이론적으로 노후에는 연금화 비중을 충분히 높이는 게 좋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연금화를 하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니 퍼즐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빨리 죽으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과 목돈을 주고 푼돈을 받으니 심리적으로 손해라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퇴직부터 받는 종신연금이 아니라 대략 평균 수명 이후부터 받는 장수연금을 활용하는 차선책이 제시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85세부터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는 식이다. 미국은 2014년에 퇴직연금에 적격장수연금을 도입하고 2019년 SECURE 법을 제정하여 퇴직연금 계좌에서 종신연금을 편입하는 걸림돌을 제거하여 연금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외에도 민간에서는 수익성과 안정성이 결합된 구조화된 연금 상품을 많이 내놓고 있다.
우리는 퇴직 후 연금화 비율이 3.3%로 연금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도 종신연금이 아닌 단순 인출이어서 자칫하면 노후 파산이 될 위험도 있다. 연금화를 도와줄 장수연금이나 구조화된 연금 상품도 부족하기 짝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연금화도 하기 전에 중간에서 많이 인출된다. 2020년 한 해에 DC에서 중도인출한 것과 IRP에서 해지한 금액을 합하면 16조 6천억원이다.
이처럼, 생애자산관리의 축적과 인출 과정을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두 퍼즐이 우리 연금시장에서는 너무나 극명하게 나타난다. 겉만 생애자산관리인 셈이다. 장기 자산배분 관점에서 주식시장참여 비중을 높이고 장수연금이나 구조화된 연금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단순 인출 시스템이 아닌 투자 상품에 걸맞은 체계적인 인출 시스템이 필요하다.
올 들어 주가가 하락하고 예금 금리가 많이 올랐다. 이런 시점에서 개인은 단기적인 시장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생애에 걸친 장기 자산배분을 유지해야 한다. 금융회사는 매출 극대화가 아닌 가입자의 자산 가치 극대화 관점에서 자산을 배분하는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을 꼭 가져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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