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반구대 암각화 언제 살리나
국보로 지정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또 비상이 걸렸다. 대구시와 경북 구미시의 취수원 갈등으로 어렵게 마련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계획이 사실상 무산 위기를 맞아서다.
1971년 대곡리에서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 면에 새끼를 업은 귀신고래, 호랑이 등 그림 300여 점이 새겨져 있다. 또 단체로 배를 타고 고래를 잡거나 벌거벗고 피리 부는 사람 등 신석기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어 문화·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세계적 유산이다. 2010년 유네스코 잠정 목록에 등재된 후, 2021년 세계유산 우선 목록에 선정돼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반구대는 발견 수년 전 지어진 울주군 대곡천 내 사연댐 저수 구역 안에 있어 매년 장마철마다 수시로 침수 피해를 보았다. 사연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이 암각화가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연평균 42일가량 이런 식으로 물에 잠기는 바람에 그림이 갈수록 희미해졌고 세계유산 등재에도 발목이 잡혔다. 특히 올해는 지난번 태풍 힌남노와 난마돌이 몰고 온 폭우로 20일 정도 더 침수됐다.
울산시 등도 2000년대 초부터 반구대 암각화의 침수 피해를 막을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4월 울산시, 환경부, 문화재청, 한국수자원공사는 사연댐에 수문(水門)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사연댐 47m 지점에 폭 15m, 높이 7.3m의 수문 3개를 설치하면 현재 60m인 사연댐 수위가 52.2m로 낮아져 53m 높이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 침수를 막을 수 있다는 예측이었다.
대신 사연댐 수위를 낮춰 부족해진 울산의 식수는 대구와 구미 등과 협의해 대구의 식수원인 청도 운문댐 물을 울산으로 가져오기로 했다. 대구가 구미의 해평취수장에서 하루 30만톤의 물을 가져오는 대신, 운문댐 물 일부를 울산에 주기로 한 것이다. 이런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을 지난해 6월 국가물관리위원회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가 의결했다. 이어 올해 4월 국무조정실과 환경부, 경북도·대구·구미시, 한국수자원공사 간에 ‘맑은 물 상생 협정’을 맺으면서 암각화 보존 방안이 현실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3개월 뒤 민선 8기에 들어 대구와 구미 단체장이 바뀌면서, 협약이 사실상 무산 위기다. 그로 인해 울산시의 사연댐 수문 설치 작업도 잠정 중단돼 또다시 암각화 보존에 비상이 걸렸다. 반구대는 수십년간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면서 암석이 빠른 속도로 약화하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세계유산 등재는커녕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세계적 유산이 멸실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자치단체 간 막힌 대화의 물꼬를 하루빨리 터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 올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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