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보험사의 ‘자발적’ 역주행
모두가 가격을 올릴 때 손해보험사(손보사)들이 홀로 역주행을 하기로 했다. 손보사들은 ‘자발적’으로 내년 자동차보험료(보험료)를 인하하기로 했다. 고물가에 얇아진 주머니를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다.
보험사의 인하여력은 충분하다. 올해 1~9월 기준 4개 대형 손보사(삼성·DB·현대·KB)의 손해율은 77~78% 사이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 대비 나간 보험금 비율인데, 통상 80% 안팎이 손익분기점이다.
문제는 보험료 인하 과정이다. 그동안에도 금융당국은 보험료 결정에 구두 개입을 해왔다. 금융당국에 손보사 임원들이 비공개로 불려가 법적 근거 없는 지침 아닌 지침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금융당국을 넘어 정치권까지 가격 결정에 숟가락을 얹었다. 특히 음지에서 이뤄지던 정부개입이 당정 협의라는 양지로 나왔다.
지난 6일 당정 협의 안건에는 ‘자동차보험 동향 및 대응방안’이 올라왔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이 “손보사들이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 한다”며 보험료 인하를 압박했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보험료의 원가요인을 살피겠다”는 답을 내놨다. 하루 뒤인 7일 손보협회는 “각 사에서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율적 인하라고 했지만, 이 말을 믿는 이는 적을 것이다. ‘동참해야 한다’는 권유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인하 확정 선언이다. 당정 협의 때 나온 “시장의 자율적 기능이 작동되고 있는지 살피겠다”는 말은 보험사에겐 “치도곤을 당하기 전에 알아서 보험료를 내려라”로 들렸을 것이다. 남은 건 인하폭을 어느 수준으로 할 지 정도다.
당정 협의 업무 운영규정에 따르면 당정 협의에서는 ▶법률안 ▶대통령안 ▶국민 생활 또는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안 등을 논의할 수 있다. 자동차보험이 국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 맞지만, 보험료 결정까지 정책으로 봐야 할지 미지수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시장경제의 역동성 회복을 강조해왔다. 시장 역동성의 핵심은 가격 결정이다. 매번 보험료가 금융당국의 입김에 따라 결정되니 각 보험사 사이에서 가격 경쟁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대출 이자도 깎아주면 좋겠다. 마침 가계대출을 보유한 이들도 올해 6월 말 기준 1998만명이다. 자동차보험 가입자(2360만대·2020년 기준)에 육박한다. 은행들도 역대 최대 이익을 보는 등 인하 여력도 있다. 법적 근거도 필요 없다. ‘고통 분담’과 ‘이자 장사로 큰돈을 벌었다’며 은행의 자발적인 참여를 요청하면 된다. 보험료 인하도 당정 협의에서 논의해 사실상 결정하는 상황인데 대출 이자라고 당정 협의에서 논의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안효성 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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