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수십대가 오빠 밟고갔다" 오봉역 사망사고 유족 오열

김경희 2022. 11. 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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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 선로에 접근금지를 알리는 폴리스라인이 세워져 있다. 지난 5일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 화물열차를 연결·분리하는 과정에서 코레일 소속 30대 직원 A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코레일은 사고 원인 조사를 위해 오봉역 인근 대형 시멘트사들의 열차 운행을 당분간 중지시켰다. 연합뉴스

지난 5일 경기도 오봉역에서 30대 코레일 직원이 화물열차 연결작업 중 열차에 치여 숨진 사고와 관련해 유가족이 “억울한 죽음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원치 않게 위험한 업무를 맡게 됐고, 근무 환경도 매우 열악했다는 취지다.

피해자의 동생이라고 밝힌 A씨는 지난 8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코레일 오봉역 사망사고 유족입니다. 제발 많은 분들이 봐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A씨는 “2018년 코레일에 입사했을 당시 저희 오빠는 사무영업으로 채용이 됐다. 그런데 사무영업직으로 입사를 했는데 수송 쪽으로 발령이 된 게 너무 이상했었다”며 글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채용된 직렬과 상관없이 현장직으로 투입이 된 부당한 상황이었지만 힘들게 들어간 회사인데 어느 신입사원이 그런 걸 따질 수 있었겠느냐”며 원치 않게 위험한 업무를 감내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그래도 첫 회사이며 첫 사회생활이니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근무를 하던 와중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빠와 같이 입사했던 동기 한 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당시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 중 대다수가 그 충격으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하거나 다른 역으로 급히 떠났다고 전해들었다”며 “저희 오빠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많은 선배 분들이 ‘여기서 조금만 더 있으면 원하는 역으로 갈 수 있다’ ‘너까지 그만두면 힘들다’고 해 조금 더 남아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병권 철도노조 노동안전실장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에서 오봉역 사망사고 관련 사건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5일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 화물열차를 연결·분리하는 과정에서 코레일 소속 30대 직원 A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연합뉴스

A씨에 따르면 생전 고인은 자갈이 깔린 철로를 매일 1만보 이상 걸으며 일했고, 평소 발목 염증 등으로 인한 다리 통증을 자주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안전에 유의하고 있고, 안전사고와 관련해 개선이 많이 됐다고 가족을 안심시켜왔다. 하지만 결국 34번째 생일을 이틀 앞둔 지난 5일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A씨는 부모님과 함께 오빠의 생일상을 위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로 오빠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사망 사고 직후 코레일 측의 대응은 A씨 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 A씨는 “빈소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코레일 관련 직원들이라며 온 분들은 미안한 기색하나 없이 그저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저희 오빠의 죽음은 빨리 해결해야될 일이었다”며 “사고 관련해 물어도 아는 것이 없다며 영혼없는 말만 했다. 오빠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우리 가족의 동태와 반응 살피기에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찾아간 사고 현장에서 유가족은 열악한 근무 환경을 마주하고 또 한번 오열했다. A씨는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고 생각도 못했다. 우리 오빠가 일하던 현장을 본 부모님과 삼촌들은 말을 잇지 못했고 철조망에 매달려 오열했다”며 “철길 옆은 울창한 담쟁이 덩쿨로 뒤덮인 철조망으로 인해 사고가 나도 도망칠 공간도 없었고, CCTV는 당연히 설치돼 있지도 않았으며, 밤에는 불빛조차 환하지 않아 어렴풋이 보이는 시야 속에서 일을 했고, 유일한 소통수단인 무전기 또한 상태가 좋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그 무거운 열차 수십대가 저희 오빠를 밟고 지나 끝까지 들어갔다고 한다”며 “저 많은 열차를 단 2명이서, 그것도 숙련된 2명도 아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인원 포함 2명이서 손으로 연결하고 떼고 위치바꾸는 등의 일을 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A씨는 “같이 일하던 사람이 1명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이상하다는 걸 빨리 인지해서 (작업을) 멈췄더라면, 피할 공간이 넓어서 빨리 도망이라도 쳤더라면...”이라며 사전 대책 미비를 꼬집고는 “오빠가 억울하지 않게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네티즌들은 “이런 사고가 있는지 몰랐다. 코레일 수송이 저렇게 위험한 직업이었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안전망은 어디있나” “정말 안타까운 사고가 묻힌다” 등 댓글을 달며 공감을 표했다.

한편 이번 사고와 관련해 철도노조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오봉역 사고 원인은 인력이 부족해 입환 작업을 2인 1조로 한 것”이라며 “3인 1조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레일 근로자 사망 사고는 올해만 4차례 발생했다. 모두 작업 중 열차에 치이는 같은 형태의 사망 사고였다. 코레일은 열차 운행 시 선로작업 금지와 열차 경보 앱을 운영하는 등 안전 강화 대책을 마련했다며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에 나섰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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