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역습’ 하이브리드카…진짜 ‘캐시카우’는 전기차가 아니다

배준희, 나건웅 2022. 11. 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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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본고장 미국 딜러숍에서는 시판 중인 차에 소비자 가격에 해당하는 ‘스티커 프라이스’를 붙여둔다. 하지만 이 가격 그대로 차를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차량 딜러들이 ‘마크업(mark-up·가격 인상)’이라는 추가 마진을 챙기기 때문이다. 마크업은 소비자 가격에 더해지는 ‘웃돈’으로 일종의 프리미엄으로 보면 된다. 시장의 수요 공급에 따라 인기 차종에 대해 딜러들은 마크업을 붙인다. 미국 시장에서 마크업 수위권에 든 차종은 뭘까. 바로 기아의 하이브리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이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에드먼드닷컴(Edmunds.com)에 따르면, 기아의 스포티지 하이브리드, 스포티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쏘렌토 하이브리드 등은 스티커 프라이스보다 8%가량 웃돈을 줘야 살 수 있다.

전기차의 상징과도 같은 테슬라가 버티고 있는 미국이지만 여전히 품질이 검증된 하이브리드카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모두가 전기차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시장에서 진짜 ‘캐시플로(현금흐름·돈이 되는 주력 사업)’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하이브리드카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시선이다. 하이브리드카의 ‘조용한 역습’을 분석한다.

▶잘 팔리는 하이브리드카

▷전기차 없는 토요타 세계 1위

하이브리드카는 말 그대로 두 가지 이상 구동 장치를 가진 자동차를 의미한다. 주로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를 함께 장착한다. 휘발유를 주 원료로 사용하면서 전기 모터를 보조적으로 활용해 연비를 높인다. 하이브리드카는 크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PHEV)’와 ‘하이브리드 전기차(HEV)’ 두 종류로 나뉜다.

정리하면, PHEV는 순수전기차를 내연기관이 보조하는 성격이고, HEV는 내연기관차를 전기 모터가 보조하는 개념이다. 이 가운데 각종 시장조사기관에서 하이브리드카 통계로 포함되는 차종은 HEV다. PHEV는 대부분 시장조사기관에서 전기차 판매량으로 집계한다.

전기차가 대세인 듯 보여도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실제 시장은 다른 논리로 작동 중이다. 우선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 시장에서 하이브리드 모델 판매량은 총 15만8216대였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약 50% 증가했다.

눈에 띄는 현상은 또 있다. 전기차 전환이 가장 늦다고 평가받는 일본의 토요타가 여전히 세계 자동차 시장 1위라는 점이다. 하이브리드 절대 강자로 평가받는 토요타는 올 상반기 세계 시장 판매량 1위였다. 513만대를 팔았다. 2위 폭스바겐은 400만대를 판매했다. 토요타가 100만대라는 큰 격차로 1위 자리를 수성했다. 무엇보다 토요타의 전기차 판매량이 사실상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1위를 지켰다는 점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시장조사기관 카날리스에 따르면, 올 상반기 토요타는 미국에서 전기차를 ‘고작’ 232대 판매했다. 전기차를 거의 팔지 않고도 토요타가 1위를 질주하자 이를 바라보는 글로벌 완성차업계 속내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하이브리드 왜 잘 팔리나

▷완성차업체, 생산 줄이지 않아

하이브리드카가 잘 팔리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공급 측면 요인이다. 현대차를 포함한 대다수 완성차 회사는 전동화 전환을 외치면서도 하이브리드카 생산을 줄이지 않고 있다.

완성차 회사의 진짜 속내는 ‘전기차로의 가파른 전환이 달갑지 않다’라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모빌리티는 내연기관이 사실상 필요 없다. 순수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배터리다. 전기차는 배터리 없이는 구동이 불가능하므로, 자동차 시장에서 완성차업계의 헤게모니는 이미 배터리업체나 IT 기업에 상당 부분 빼앗겼다.

내연기관 중심 부품 생태계(밸류체인)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도 모빌리티로의 가파른 패러다임 전환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자본력이나 기술력이 열악한 다수 영세 부품업체는 모빌리티 시대가 성큼 다가오는 것이 반갑지 않다. 한국자동차산업연합회가 지난해 12월 ‘제21회 자동차산업발전포럼’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00개(완성차와 부품업체) 응답 기업 중 56%(169개)가 미래차(전기차 등) 분야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런 기류는 전체 산업에서 자동차 의존도가 큰 국가일수록 두드러진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유럽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종주국 독일에서는 세계 최고의 내연기관차 제조 기술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 중이다. 최근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내연기관차를 포기하면 다른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가 그 격차를 메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요 측면에서는 충전 인프라 등 현실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기술적인 제약으로 아직 전기차를 주력 차종으로 고르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가령, 지금도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서는 충전 인프라가 열악하다. 이동 거리가 길어 자동차가 갈급하지만 전기차는 충전이 힘들다. 이런 지역에서는 내연기관과 전기 모두 쓸 수 있는 하이브리드카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동력 성능이 내연기관차를 넘어선 것도 하이브리드카의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현대차, 하이브리드로 ‘미세 조정’

▷美 ‘IRA 쇼크’ 극복 대안 부상

현대차그룹도 2023년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을 늘리는 쪽으로 생산 전략을 선회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이 회사 울산공장 엔진사업부는 내년 엔진 생산 대수를 올해보다 15% 늘리는 것을 뼈대로 한 생산 계획을 직원들과 공유했다. 증산 물량의 대부분은 하이브리드 엔진으로 알려진다. 울산 엔진 공장은 현대차 국내 전체 생산분의 60% 정도를 차지해 내년 사업 계획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현대차가 하이브리드카 증산에 나선 배경은 명확하다. 무엇보다 시장 수요 증가세가 뚜렷하다. 현대차그룹의 국내외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은 누적 200만대를 넘어섰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카 누적 판매량(2018~2022년 9월·PHEV 제외)은 205만316대로 나타났다. 현대·기아차의 연간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역성장한 적이 없다. 2018년 19만6690대였던 판매량은 매년 늘어 지난해 36만6665대를 기록했다. 올 들어 9월까지 판매량은 37만616대다. 4분기가 남았지만 이미 지난해 연간 판매량을 넘어섰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그룹 하이브리드카 인기가 높다.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지난 10월 미국 시장에서 1만2622대의 하이브리드카를 판매했다. 1년 전 같은 달보다 36% 증가했다. 지난해 5월 1만2334대를 뛰어넘는 월간 최대 실적이다. 올해 1~10월 누적 기준으로도 하이브리드카는 9만7148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했다.

전기차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현대차그룹의 전략 미세 조정에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그렇지 않아도 좋지 못한 전기차 손익 구조가 매우 악화한 데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 여파로 전략 수정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IRA는 북미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핵심인 법안이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이브리드카는 전기차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익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우선 살아남아야 전기차 투자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국산 하이브리드카 최강자는

▷쏘렌토·K8…내연기관보다 2배 더 팔려

내수 시장에서도 하이브리드카 각축전이 펼쳐진다. 하이브리드카만 놓고 보면 현대차보다 기아 선전이 두드러진다. 특히 ‘쏘렌토’와 ‘K8’ 하이브리드 기세가 무섭다. 두 차종 모두 일반 내연기관 모델보다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더 많다.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올해 10월까지 3만9538대가 팔렸다. 같은 기간 내연기관 판매량(1만5315대)의 2배를 훌쩍 넘는다. K8 역시 하이브리드 모델(2만7917대)이 내연기관(1만5315대)보다 판매가 훨씬 많다. K8 전체는 판매가 4% 감소했지만 하이브리드 모델은 50% 이상 늘었다. 이외에도 기아에는 1만대 이상 팔린 하이브리드 모델이 즐비하다. 니로 HEV(1만7315대), 스포티지 HEV(1만6241대)가 대표적이다.

올 한 해 현대차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하이브리드카는 ‘그랜저’다. 올 10월 누적 기준 그랜저 하이브리드 판매 대수는 1만873대에 달한다. 올 연말 현대차에서 6년 만에 선보이는 신형 그랜저인 ‘디 올 뉴 그랜저’에도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한 모델 2종이 출격 대기 중이다.

절대적인 판매 대수는 그랜저가 많지만 전체 판매에서 하이브리드카가 차지하는 비중만 놓고 봤을 때는 ‘싼타페’가 낫다. 올해 팔린 싼타페 약 2만2000대 중 하이브리드 모델이 1만285대로 절반 가까이 된다.

하이브리드 모델이 없던 르노코리아는 지난 10월 ‘XM3-E TECH’를 선보이며 출사표를 던졌다. 전기차에 가까운 하이브리드 구동 시스템을 탑재해 시속 50㎞ 이하 도심 구간에서 최대 75%까지 전기차 모드 주행이 가능하다. 연비는 유럽 국제표준시험방식(WLTP) 기준 20.4㎞/ℓ에 달한다.

하이브리드 절대 강자로 평가받는 토요타는 전기차 없이도 올 상반기 세계 시장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사진은 렉서스 ES 300h. (토요타 제공)
▶렉서스·벤츠·BMW 3파전

▷E350 4매틱, ES 300h 아성 위협

수입차 하이브리드카 경쟁 구도는 렉서스와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 그리고 BMW의 3파전 구도다.

‘렉서스 ES 300h’는 자타공인 수입 하이브리드 ‘절대 강자’다. 2012년 국내 첫선을 보인 이후 2021년까지 9년 연속 수입차 하이브리드 부문 베스트 셀링카에 선정됐다. 올해 10월 누적 기준 3500대 이상 팔리는 등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렉서스 ES 300h의 1위 아성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벤츠 E클래스 ‘벤츠 E350 4매틱’ 판매량이 무섭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6372대)는 1위 렉서스 ES 300h(6746대)를 턱밑까지 추격하더니, 올해는 벌써 판매량이 8756대로 ES 300h와 격차가 두 배 이상이다. 벤츠 E350 4매틱에는 여타 경쟁사 하이브리드 차량과 달리 전기 모터 단독으로는 주행이 불가능한 마일드 하이브리드(MHEV)가 적용됐다. 48V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 모터가 가솔린 엔진 출력을 뒷받침하는 형태다.

BMW 하이브리드카 중에서는 ‘BMW 530e’가 효자다. 2019년 12월 BMW 5시리즈 최초로 선보인 PHEV 모델로 지난해 4466대가 팔렸다. 12.0㎾h 용량 고전압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 시 최대 39㎞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순수 전기 모드에서도 최대 시속 140㎞/h까지 달릴 수 있다. BMW는 5시리즈 외에도 3시리즈와 7시리즈, 또 X3와 X5 라인업에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하고 공격적으로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7시리즈에는 BMW M 최초 PHEV 모델인 ‘M760e xDrive’도 새롭게 추가된다.

다른 수입차 브랜드 중에서는 ‘볼보’가 다크호스다. 올해 9월까지 국내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8815대로 벤츠(2만6990대)와 BMW(1만1485대)에 이은 3위다. ES 300h 비중이 압도적인 렉서스(4762대)보다 전체 판매에서는 앞선다. 전기 모드로만 59㎞ 주행이 가능한 ‘S90’, 그리고 신형 MHEV 엔진을 장착한 ‘S60’과 ‘XC40’이 인기 차종이다.


하이브리드카 전망은

당분간 전성시대 이어질 듯…전기차 대세론 ‘주춤’

시장에서는 하이브리드 모델의 전성시대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올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하이브리드카의 글로벌 점유율이 올해 4.9%에서 2026년 10.6%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대세’ 시대가 기대만큼 빨리 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 기준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판매 비중이 각각 28%, 25%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전기차가 자동차 시장에서 지배적 폼팩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학계에서는 이를 ‘기술·사회 공진화(Co-evolution)’ 이론으로 설명한다. 전에 없던 신기술일수록 주류 산업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사회와 서로 상호작용하며 이를 토대로 진화한다는 내용이다. 전기차 같은 하이테크 산업에서의 기술은 전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지식에 기반한다. 이 때문에 신기술 수용과 확산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 정치 시스템 형성이라는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기차 시장 확대 과정에서 완성차·부품업계의 ‘보이지 않는 저항’, 일자리 갈등, 친환경 이슈 등은 정당성 논란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기차 시장 외연이 커질수록 ‘진짜 친환경이 맞느냐’에 관한 의구심도 증폭될 수 있다. 전기차의 초기 확산에 도움을 줬던 ‘친환경 프레임’이 작금의 ‘캐즘(주류로 확대되기 전 단절 구간)’을 극복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로, 전기차가 단일 폼팩터로 자동차 시장을 완전히 지배하기보다는 상당 기간 하이브리드카와 공존하는 구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정부의 ‘하이브리드카 취득세 면제 기간 연장’ 결정도 반갑다. 올해 말 종료 예정이었던 하이브리드카 취득세 면제(40만원 한도)는 2024년 말까지 유지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의 한정된 라인업과 비싼 가격, 긴 대기 시간, 여전히 부족한 충전 인프라 등을 고려해볼 때 하이브리드 차량만이 갖고 있는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3호 (2022.11.09~2022.1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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