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부담 여전…“다주택 규제 풀려야”

김경민, 정다운 2022. 11. 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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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완화 이후 현장 점검해보니
서울 도심 청약·초기 재건축 단지 ‘눈길’
지난 8월 서울 정부청사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매경DB)
“규제를 풀었다고 해도 투자 여력이 있는 다주택자에 해당되는 내용이 없다 보니 매수 문의가 적어요. 그리고 요즘 같은 고금리에 누가 대출받아 집을 사려 하겠어요.” (서울 강남구 일원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수도권 일부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되기는 했는데 분양이 잘될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대출 금리가 너무 올라 시장 여건이 안 좋아졌어요. 여전히 미분양을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B시행사 대표)

지난 10월 27일 정부가 주택 대출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첫 주말. 강남구 일원동 일대 공인중개사사무소는 평소와 다름없이 한산했다. 금리 상승으로 잔뜩 움츠러든 매수 심리를 되돌리기에는 이번 규제 완화가 역부족이었다는 분석이다. 거래 절벽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출 비용이 높아 ‘백약이 무효’라는 반응이다.

▶규제 풀지만 ‘백약이 무효’?

▷당분간 집값 하락세 지속될 듯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10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234건(10월 27일 기준)에 불과하다. 11월 말까지는 실거래 신고 기간이 남아 있다고는 해도 지난해 10월 한 달간 아파트 2195채가 사고팔렸던 점을 감안하면 거래가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셈이다.

집값 하락폭은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0월 마지막 주(31일) 기준 서울 집값은 0.34% 내렸다. 전주(-0.28%)보다 낙폭이 더 커졌다. 2012년 6월 둘째 주(11일) 0.36% 하락 이후 10년 6개월 만에 가장 많이 내렸다. 서울 집값은 벌써 23주 연속 내리막을 타고 있다.

주택 시장은 급매물보다 더 급한 ‘급급매물’이 나와도 실거래로 이어지기 어려운 분위기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낙폭이 가장 컸던 송파구(-0.6%)에서는 하락 거래가 줄을 잇는다.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는 지난 10월 18일 20억3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지난 4월 기록한 신고가 26억5000만원보다 6억2000만원이나 내렸다.

잠실동 C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대출 규제가 풀렸지만 금리가 더 오르면 집값 역시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실수요자가 많다”며 “매물이 팔리지 않은 채 쌓여가니 급한 집주인들은 호가를 더 낮춰 매물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분양 관련해서도 규제 완화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중도금 대출 한도를 기존 9억원 이하에서 12억원 이하로 확대했지만 투자 심리를 회복시키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다. 충남의 D시행사 관계자는 “곧 일반분양 일정에 돌입할 예정인데 주변 지역에서 미분양이 났다는 소식이나 아파트값이 수억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한다”며 “다주택자 규제가 전폭적으로 풀리지 않으면 지방 분양 시장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원자재 가격과 건축 원가는 물론 금융 조달 비용까지 급등한 탓에 지방에는 내년 분양 계획을 아예 세우지 않거나, 이미 인허가를 마친 단지에 대해서도 분양을 무기한 연기하는 곳도 있다.

최근 불거진 부동산 PF발 신용 경색으로 자금 압박을 받는 중소형 건설사까지 포함하면 내년 주택 공급 규모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주택 건설 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10월 전국 아파트 분양전망지수는 43.4로 8월(61.3), 9월(49.4)에 이어 침체 곡선을 이어갔다. 2017년 11월 통계 집계 이래 5년여 만에 최저치다. 특히 경기도(53.5→38.5)는 한 달 만에 분양 심리가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내년 주택 분양 물량이 올해보다 30%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규제 완화에도 내년 집값이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23년 전국 집값이 평균 2.5%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건산연의 올해 집값 하락률 추정치인 -1.8%보다 낙폭이 더 커지는 셈이다. 지방은 3% 떨어지고, 수도권도 2% 하락할 것으로 봤다. 올해도 이미 실거래가가 최고가 대비 40% 가까이 떨어진 아파트가 속출했지만, 건산연은 “경기 둔화 여파로 매수 심리 호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내년 집값 하락을 더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디에 투자할까

▷둔촌주공, 장위자이 등 서울 청약 눈길

집값 전망이 어둡지만 여전히 기회는 있다. 전문가들이 내집마련 적기로 뽑는 시기는 내년이다. 내년 상반기쯤에는 기준금리와 물가가 어느 정도 고점에 다다를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주택 가격이 바닥을 다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금리 인상이 마무리되고, 시장이 적응하는 시점까지 가격 하방 압력이 이어질 것”이라며 “실수요자들은 시장 움직임을 주시하다 내년 하반기 이후부터 매수 시점을 고려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시기를 조금 앞당겨 내년 상반기가 적기라고 꼽은 전문가도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기간이 종료되는 내년 5월 전 급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금리 인상이 멈추고 다시 인하기에 접어들 때는 주택 매매 거래량이 다시 늘어날 수 있는 만큼 매입 시기를 정해놓고 자금 여력이나 후보지를 정해놓는 등 내집마련 시뮬레이션을 미리 해두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다.

특히 서울 인기 지역 아파트 청약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주문이다. 당초 분양가가 9억원을 넘으면 주택도시보증공사, 주택금융공사 중도금 대출 보증을 받을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분양가 12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단지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아파트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 주장대로 일반분양가가 3.3㎡당 3900만원 수준으로 책정되면 전용 59㎡ 분양가도 9억원을 넘어간다. 규제가 풀리지 않았다면 전용 59㎡의 중도금 대출이 어려웠지만 이제 대출이 가능해졌다. 둔촌주공 일반분양 물량은 4700여가구에 달한다.

둔촌주공 외에도 눈여겨볼 만한 단지는 꽤 많다. 서울 성북구 장위4구역을 재개발하는 ‘장위자이 레디언트’의 경우 총 2840가구 중 일반분양 물량이 1353가구에 달한다. 전용 49~97㎡로 소형 평형 물량이 넉넉한 데다 일반분양가가 3.3㎡당 2834만원으로 대체로 12억원에 못 미치는 만큼 자금이 부족한 실수요자가 대거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동대문구 ‘휘경자이 디센시아’, 중랑구 ‘리버센SK뷰 롯데캐슬’도 일반분양 물량이 각각 710가구, 501가구에 달해 청약에 적극 나서볼 만하다.

무엇보다 전용 85㎡ 이하 중소형 평형도 추첨제가 도입되면서 가점이 낮은 청년층 당첨 확률이 높아졌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정부는 현재 투기과열지구 중소형 평형을 100% 가점제로 분양하는데, 앞으로는 전용 60㎡ 이하는 가점 40%·추첨 60%로, 60㎡ 초과∼85㎡ 미만은 가점 70%·추첨 30%로 바꾼다. 자금이 모자란 청년층 입장에서는 이참에 인기 단지 청약을 적극 노려볼 만하다.

물론 ‘묻지마 청약’은 금물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도권 주요 단지 매매가가 수억원씩 떨어지는 상황에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높을 경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분양한 경기도 의왕 ‘인덕원자이SK뷰’ 508가구 무순위 청약에는 단 6명만 청약해 502가구가 잔여 물량으로 남았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개통 수혜 지역으로 입지는 나쁘지 않지만, 분양가가 3.3㎡당 2877만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높기 때문이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한때 수도권 아파트 청약은 로또로 불렸지만 금리 인상으로 대출 부담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찬밥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역세권에 위치한 대형 건설사 브랜드 단지라도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가 저렴한 곳 위주로 공략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1주택자라면 이참에 갈아타기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대출 규제 완화로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해진 데다 1주택자도 기존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50%로 완화됐기 때문이다. 전용 59㎡ 이하 주택을 팔고 전용 84㎡ 이상 대형 아파트로 옮겨 가기 좋은 시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주택자 역시 대출 규제가 풀린 만큼 평소에 눈여겨본 관심 지역 급매물을 노려볼 만하다.

정부가 연내 재건축 안진진단 규제를 풀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업 초기 단계 재건축 단지를 주목하라는 주문도 나온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 첫 관문으로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면 정밀안전진단, 정비구역 지정, 정비계획 수립, 추진위원회 설립, 조합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이주, 철거, 착공 등의 절차를 밟는다. 서울 서초구 양재우성, 강북구 번동주공4단지는 최근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금천구 독산주공14단지, 동대문구 전농우성아파트 등 주요 재건축 단지마다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한 상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3호 (2022.11.09~2022.1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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