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물든 여덟 암봉 두르고 옥빛 계곡 굽어보니…
경북 영덕에서 바다만 떠올린다면 일부만 아는 것이다. 바다 외에도 다양하고 매력적인 여행지가 넘쳐난다. 내륙의 은밀한 곳에 백두대간 준령을 따라 주왕산국립공원, 옥계(玉溪)계곡, 팔각산(八角山) 등이 병풍의 화폭처럼 펼쳐진다. 기묘하게 깎인 바위들이 서로 기대어 있고 옥과 같은 계곡물이 모여 흐르는 깨끗한 천이 유혹한다.
‘옥같이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계곡’ 옥계는 영덕군 달산면 옥계리에 있다. 14세기 말 조선 정종 연간에 노(盧)씨라는 선비가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한다. 그는 이곳의 자연에 반해 자신의 호를 옥계라 했고, 지명 또한 옥계가 됐다. 포항시 영일군 죽장면 하옥리에 속해 있었으나 1983년 달산면에 편입됐다.
옥계계곡은 영덕의 팔각산과 동대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합류해 흐르는 계곡이다.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지만 늦가을 단풍 숨은 명소다. 주변에 기암괴석이 울긋불긋 가을빛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굽이를 돌 때마다 청류는 검은 소를 이루고, 아름다운 단애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계곡 한쪽에 침수정이 자리한다. ‘베개 침(枕)’ ‘양치질할 수(漱)’를 쓴다. 중국의 역사서 진서 손초전에 등장하는 ‘침석수류(枕石漱流)’에서 따온 이름이다.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한다’는 뜻이다. 번잡한 세상을 버리고 칩거했거나, 세상이 받아주지 않아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의 맑은 정신이 깃들어 있다.
정자는 조선 정조 8년(1784년) 선비 손성을(孫星乙)이 계곡의 아름다움에 반해 세웠다. 뒤로는 여덟 개의 뿔 같이 솟은 팔각산을 두르고 바로 앞 옥빛 계곡을 굽어본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아담한 목조 팔작 기와집으로, 앞에는 마루를 내고 뒤에는 방을 뒀다. 월성 손씨 문중의 소유로, 담이 둘러져 있고 문은 잠겨 있다. 침수정 바로 아래 깎이고 갈라진 바위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손성을은 주변에 빼어난 풍광을 지닌 37곳을 찾아 진주암, 병풍암, 촛대암, 강선대 등으로 이름 붙이고 시를 남겼다. ‘옥계37경’이다. 영덕 옥계리와 포항시 죽장면 하옥리와 상옥리, 청송군 주왕산면 항리에 걸쳐 있다.
제1경은 침수정 정면에서 왼쪽으로 살짝 비낀 해월산의 정상 일월봉이다. 달이 뜨고 해가 돋는 자리라 ‘옥계의 시작과 끝’으로 불리는 곳이다. 제2경은 팔각봉이다. 침수정 뒤 팔각산이다. 3경은 복룡담(伏龍潭). 침수정 바로 아래 굽이치는 물길이 ‘용이 누워있는 연못’의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자 왼쪽 아래 깊은 소에 세 마리 거북이가 물 밖으로 기어 나오는 형상의 ‘삼귀암’이, 그 앞에 촛대처럼 생긴 ‘촛대봉’이 있다. 봉황 벼슬처럼 생긴 ‘봉관암’, 마고할미가 중국에 가져가려던 ‘진주암’, 물에 떠 있는 듯한 ‘부암’, 갓끈을 씻어 세속을 초월한다는 뜻의 ‘탁영담’, 향로에 향불을 피우는 것 같은 ‘향로봉’,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학소봉’…. 37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옥계계곡은 팔각산 산행과 함께하면 좋다. 팔각산은 여덟 개의 기암괴봉이 한 줄기 능선 위에 우뚝 솟아 비경을 연출한다. 하나같이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암봉이 기막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팔각산 산행은 옥계리 입구 학소대 앞 ‘선경옥계’라 새겨진 바위 주변에서 원점회귀로 가능하다. 다른 코스는 산성계곡으로 접어드는 길이다. 산성계곡은 팔각산 뒤편으로 이어지는 산 능선에 성터가 남아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산성계곡 생태공원 입구에서 목재 데크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이동하면 아담한 숲이 나온다. 이곳에 숲속 놀이터가 있다. 아름드리 나무를 연결해 V자와 U자형 그물타기(네트로드)와 동그란 목판 징검다리(원형플랫폼) 등을 설치해 놓았다. 이곳에서 출렁다리로 옥계계곡을 건넌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계곡 풍광이 아찔하다.
늦가을 영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영해읍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이다. 주인이 20여 년간 심어서 가꾼 숲을 누구든 찾아와 쉴 수 있게 무료로 개방하면서 알려진 사유림이다.
숲으로 들어서면 통행로 좌우로 일직선으로 뻗은 나무들이 400m 남짓 경쾌하게 펼쳐진다. 중간쯤 화장실이 있고 군데군데 마주 앉을 수 있는 탁자형 나무 벤치가 놓여 있다. 하늘을 향해 늘씬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가 적갈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완만한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서면 숲과 들판 저 멀리 동해가 아스라이 보인다.
팔각산 등산로 4.4㎞, 3시간 소요
대게·러시아산 게… 강구항 음식점
영덕 옥계계곡은 영덕, 포항, 청송의 경계에 위치한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간다면 당진영덕고속도로 청송나들목에서 빠지면 가깝다. 포항에서 영덕으로 북향해 69번 지방도를 타고 청송 방향으로 가도 되고, 영천에서 청송으로 올라가 930번 지방도를 타고 얼음골을 지나가도 된다.
팔각산 8봉우리를 잇는 등산로는 팔각산장 옆 팔각산 주차장에서 출발해 108계단~안부 갈림길~1봉~2봉~버지기굴~4봉~5봉~6봉~7봉~팔각산 정상~삼거리를 거쳐 팔각산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로 약 4.4㎞이며, 3시간 정도 걸린다. 급경사의 암벽이어서 주의가 요구된다.
숙박할 곳으로는 팔각산장과 덕성식당 등이 있다. 이곳의 별미는 흑염소, 토종닭, 더덕 백숙, 콩두부 등이다. 겨울은 대게의 계절이다. 강구항 음식점들의 수족관에 영덕대게 외에도 러시아산 대게와 북한산 털게에 이르기까지 각종 게들이 넘쳐난다. 인근에 가볼 만한 곳으로 삼사해상공원, 어촌민속전시관, 경보화석발물관, 풍력발전소, 해맞이공원 등이 있다.
영덕=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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