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세월호 때처럼 2차가해 안돼" [이태원 압사 참사]

윤성효 2022. 11. 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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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경남본부, 9일 오후 6시 34분 창원 '이태원 참사 추모제' 열어

[윤성효 기자]

 11월 9일 저녁 창원 한서빌딩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추모제.
ⓒ 윤성효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겪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에서 희망과 미래를 잃었고 다시 이태원에서 희망과 미래를 잃었다. 세월호 참사는 막을 수 있었고, 이태원 참사도 막을 수 있었다.

정부는 그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부는 그때도 책임을 회피했고, 지금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루어지고 있다."

9일 저녁 창원 한서빌딩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서울 용산 이태원 참사 추모제를 열면서 이같이 밝혔다. 지난 10월 29일 참사가 발생하기 전 첫 신고 시간인 오후 6시 34분에 맞춰 추모제가 시작되었다.

이날 추모제를 연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참사로 인해 희생되신 분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시, 글, 이야기로 추모한다"고 했다.

발언이 이어졌다. 이주화(26) 학생(창원대)은 "막을 수 있었다, 국가는 없었다"는 말부터 했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뉴스에서 배가 하나 침몰했다는 보도를 듣게 되었고 저는 당연히 구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유심히 보진 않았다"며 "구조중이라니, 전원 구조했다니, 경찰이 없다니 등등 다양한 내용으로 방송이 되었고, 결국에는 30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했다.

이 학생은 "당시 사망자 대부분은 저와 같은 나이에 친구들이었고 그 소식을 보고들은 저는 상당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며 "더욱 심각한 것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에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왜 막지 않았는지 아무것도 밝혀진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태원에서 또 한번의 참사가 생겼다. 이번 참사에도 대부분의 사망자들이 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이다"며 "이태원에서 있었던 참사도 교통통제만 제대로 되었어도 청년들이 목숨을 잃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바쁘고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오히려 참사를 사고라고 부르고 희생자를 사망자로 부르는 지침을 내리는 행세는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다"고 덧붙였다.

책임을 물은 그는 "이번 참사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정부의 명백한 잘못이며 잘못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며 "이태원 참사를 설명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농담을 했던 국무총리, 우려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행안부장관, 신고를 받고도 부실 대응한 경찰청장 모두 사퇴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안전사고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주화 학생은 "잘못을 바로 잡고 나아가 안전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며 "청년, 아니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저부터 시작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아들이 올해 21살이라고 한 류승택(창원)씨는 발언을 통해 "300명의 우리 아이들이 배가 침몰하는데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차디찬 바다 속에 잠겼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로써 지켜주지 못해 미안함과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어 "슬픔의 눈물을 닦으면서 우리 아이들을 바다에 생매장 한 책임자를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며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나 이태원 참사가 또 발생했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156명의 우리 아들딸을 지켜주지 못해 억눌려 죽어갔다"며 "자식을 둔 부모로써 말문이 막힌다. 특히 세월호 때처럼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

류씨는 "참사 앞에 '나 아이만 아니면 돼'라고 안도한 부모는 없을 것이다. 언제든지 우리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자식을 둔 부모라면 내 자식의 일처럼 아파하고 슬펐다"며 "이런 참사가 또 일어났을까와 국가는 무엇을 하였는가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그는 "이번 이태원 참사는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고 예방할 수 있었다. 군인도 지키고 경찰 수백명이 지키는 용산 집무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수십만명의 국민을 지키기 위해 경찰안전인력만 적정하게 배치하였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책임자인 국무총리도 행안부 장관도 경찰청장도 모두 대통령이 인사권자이고 진짜 사장이다"며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를 엄중처벌하지 않고는 또 다른 참사가 재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승택씨는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이젠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며 "국가와 대통령이 더 이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11월 9일 저녁 창원 한서빌딩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추모제.
ⓒ 윤성효
 
 11월 9일 저녁 창원 한서빌딩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추모제.
ⓒ 윤성효
 
이밖에도 여러 시민들이 발언을 했고, 안혜린(창원)씨는 자작 추모시 "세상의 희망"을 낭송했다. 다음은 추모시 전문이다.
 
세상의 희망
-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게 바침
 
안혜린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 착하고 여린 내 친구들은, / 급기야 배에 물이 차오를 때야 / 손톱이 빠져 없어지도록 / 살려 달라 처절하게 울부짖다가 / 우리의 친구들은 그렇게 물속에 가라앉았고
 
많은 친구들을 물속 깊이 보내고 / 그렇게 친구들을 보내고 / 다시 일어설 기운이 없었던 우리는 / 우리의 꿈도 잠기고 /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습니다.
 
친구들을 물속에 보내고 / 아직은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 무엇을 할지를 모르고 있는 우리들에게 / 세상은 우리가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우리들이 희망이라고 하기에 / 다시 살 수 밖에 없었고 / 앞만 보고 다시 달렸습니다
 
대학을 가야 했기에 / 대학을 왔고, / 학비를 감당해야 했기에 / 알바를 했고 / 취업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 옆을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 그렇게 몇 년을 달렸습니다
 
그 날 우리가 이태원에 간 것은, / 우리에게도 공간이 필요했고 / 숨 쉴 틈이 필요했기에 / 잠시나마 기운을 얻으려고 한 것 뿐이었습니다 / 그 곳은 물 속이 아니어서 / 우리의 꿈이 침몰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우리는 살려 달라 외쳐야 했고, / 살려 달란 우리들의 외침에 / 세상은 답하지 않았고, / 잠시 그 날의 친구들이 떠올랐지만 /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희망이라고 했기에 /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 다시 처절하게 살려 달라 외쳤고 / 세상은 다시 답하지 않았고 / 그 날의 수많은 내 친구들을 떠올리며 / 대답 없는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한 친구가 무너졌고 / 무너진 친구 위에 / 또 다른 친구들이 무너지고 / 한 명씩 한 명씩 그렇게 친구들이 무너졌습니다
 
차곡차곡 한 명씩 무너지면서 / 취업의 꿈도, 미래도 모두 무너지고 / 세상도 무너지고...
 
그 날 무너진 것은 / 우리의 몸뚱이가 아니라 / 우리의 젊은 생명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왔던 / 우리의 미래이고 / 우리가 희망이라고 했던 / 세상을 믿고, 참고 달려왔던, / 그래도 믿고 있었던 세상이었고 미래였습니다
 
그렇게 무너지면서 /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 우리가 희망이라고 하면서 / 우리를 지켜내지 못한, / 우리를 지키지 않은, /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이제서야, 8년전 4월 그때, / 우리는 왜 / 세상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 우리를 원망합니다 / 세상을 원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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