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시기 대중음악 공연 취소, 꼭 그래야만 할까?

이현파 2022. 11. 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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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공연도 애도의 한 방식... 추모의 방법 획일화 할 수 없어

[이현파 기자]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영가 추모 위령법회’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 권우성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정부는 10월 31일부터 지난 5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애도 기간이 선포되었다고 해서 일상의 풍경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었다. 식당과 카페, 주점은 변함없이 영업을 이어갔다. 영화관에서는 여전히 신작 영화가 상영되었다. 프로 스포츠 경기 역시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함성과 치어리딩 등이 제한된 정도만 평소와 달랐다.

반면 다른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대중 음악 공연장이다.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된 이후, 코요태, 이디오테잎, 백지영, 마이클 볼튼 등 많은 아티스트의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물론 사회 보편적인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핼러윈을 주요 테마로 삼은 EDM 페스티벌인 스트라이크 뮤직 페스티벌은 참사 다음 날인 3일차 공연을 전격 취소했다. 핼러윈 축제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만큼, 많은 관객들이 핼러윈 콘셉트를 유쾌하게 즐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정도는 대부분의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에 있었다.

공연도 애도의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뮤지션이 공연장의 문을 닫기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아티스트의 의사에 따라 공연이 취소되기도 하지만, 지자체의 권고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뮤지션 생각의 여름은 자신의 SNS를 통해 "국가 기관이 보기에는 예술일이 유흥, 여흥의 동의어인가 봅니다"라고 운을 떼고, "공연이 업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라고 꼬집었다.

3일 서울 마포구 망원 벨로주에서 공연을 연 김사월 역시 "우리들의 노래를 통해서 서로를 위로하고 보살필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오는 19일에는 해머링, 박근홍, 박상도(써드스톤) 등 록 뮤지션이 함께하는 공연이 열린다. '기억 10.29: 뮤지션들의 추모'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공연은, 수익금의 전액을 이태원 압사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기부할 예정이다.

음악과 애도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음악이 망자와 남은 이를 위로한 역사는 많았다. 2017년 5월 23일,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콘서트가 열리던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로 22명이 사망했고, 1천17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그리고 테러가 발생한 지 2주도 되지 않았던 6월 4일, 아리아나 그란데는 맨체스터에서 'One Love Manchester' 콘서트를 열었다. 증오와 폭력에 맞서 '사랑'을 해답으로 내놓은 것이다.

추모 공연에서 흘러나온 것은 장송곡이 아니었다. 테러로 세상을 떠났던 이들이 좋아했던 음악을 떠올리며, 신나는 팝과 록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오아시스 출신의 리암 갤러거가 밴드 콜드플레이와 함께 'Live Forever'를 부른 장면은 이 콘서트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너와 나는 영원히 살 거야'라는 노랫말에 수많은 청중이 눈물을 흘렸다.

9.11 테러 발생 이듬해인 2002년,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쇼에 선 U2는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을 연주했다. 이 곡이 연주되는 동안 테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무대 뒤 전광판에 엔딩 크레딧처럼 흘러나왔다. 아일랜드인인 보컬 보노는 품속에 새겨놓은 성조기를 보여주며, 미국 시민들에 대한 연대를 표했다.

죽은 자와 산 자를 쓰다듬는 음악
 
 30일 강원 강릉시 명주예술마당에서 열린 전국생활문화축제장이 이태원 압사 참사 여파 등으로 공연이 취소돼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2.10.30
ⓒ 연합뉴스
 
음악은 죽음에 대한 위로 뿐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 역시 가능하게 한다. 싱어송라이터 김뜻돌이 참사 발생 전날 발표한 신곡 '기도'에는 '다시는 이 생의 고통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2022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받은 아티스트 이랑은 '환란의 세대'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열거하면서 ' 다 죽어 버리자'고 노래했지만, 이것은 살아있는 이들에 대한 역설적인 위로였다.

밴드 언니네 이발관은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추모 천막에 영감을 받아 '혼자 추는 춤'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리더 이석원은 거대한 죽음을 목격한 이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했다.

"다들 여기 아닌 곳에 있고 싶어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곳에 끝까지 포기 않는 곳 누구도 포기 않는 곳"
- '혼자 추는 춤(언니네 이발관) 중에서.

그러나 한국에서는 음악이 애도가 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고양시에서는 뷰티풀민트라이프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고양문화재단은 공연 하루 전 "공공기관으로서의 재단은 여객선 침몰 사고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을 뒤로 한채 정상 진행에 협조할 수 없다"며 취소를 통보했다. 당시 고양 시장 선거에 예비 후보로 등록했던 한 정치인은 이 공연을 두고 세월호 통곡 속에 풍악놀이 웬말인가!"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풍악 놀이'라는 말은, 수많은 아티스트와 스태프가 준비한 위로의 무대를 쉽게 묵살했다(해당 정치인은 당시 지역구에서 열린 총동문회 행사에 참석해 명함을 돌리고 막걸리를 마셨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도, 대중 음악 공연은 그 어떤 공연보다 심한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바 있다. 라이브 클럽은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되어 공연 개최 자체가 금지되었고, 비말 전파의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100명 미만의 관객을 받도록 강제되기도 했다.

비슷한 풍경이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누군가에게 공연은 일상적 행위다. 그러나 공연계는 '공연'이라는 일상을 박탈당하고 있다. 공연 취소가 권고되지만, 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성 세대는 케이팝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슈퍼스타의 군면제를 논한다. 그러나 정작 대중 음악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는 왜 재난의 시기에 공연은 취소되는지 묻고자 한다. '지금은 공연 같은 사치 행위를 할 때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유독 대중 음악 공연에만 집중되는 취소는 관제 애도만큼 부자연스럽다. 한 정치인은 "지금은 추궁이 아니라 추모의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추모의 방법은 일원화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침묵이 추모다. 누군가에게는 구조와 사람에 대한 질문이, 또 누군가에게는 목놓아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추모다. 거친 디스토션 사운드도, 랩도 추모가 될 수 있다. 반면,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들의 추모는 그 누구에게도 위안을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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