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TV·냉장고 자랑한 뒤 “안 팔아요”…삼성·LG 이상한 실험

고석현 2022. 11. 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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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금성오락실’. LG전자는 이곳에 최신제품인 벤더블 게이밍 TV ‘올레드 플렉스’를 활용해 레트로 게임 등을 할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꾸몄다. 고석현 기자


“이 제품을 사고 싶다고요? 여기선 안 팔아요, 구경만 하세요.” 최신 전자제품을 실컷 자랑해놓고 판매는 하지 않는다? 가전업계의 신(新) 풍속도다.

9일 오후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에 있는 ‘금성오락실’. 1980~90년대를 연상시키는 오락실 간판 아래로 들어서는 순간 별세계가 펼쳐졌다. 이곳은 LG전자가 ‘뉴트로’(신복고) 콘셉트로 꾸민 체험용 팝업스토어다. 상호는 LG의 옛 사명인 ‘금성’을 차용했다. LG전자는 벤더블 게이밍 TV ‘올레드 플렉스’ 등 최신 TV 40여 대를 활용해 2층 규모의 공간을 오락실로 꾸며놨다. ‘돌아온 너구리’ ‘버블버블’ 같은 추억의 게임부터 최신 콘솔 게임 등을 플레이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20대 김모(여)씨는 “큰 화면으로 게임에 몰입하는 체험을 할 수 있고, 최신 기기를 직접 만져보니 자연스럽게 구매욕이 생겼다”며 “당장 TV를 살 계획이나 금전적 여력은 없지만 버킷리스트에 넣어뒀다”고 말했다.

LG전자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오픈한 금성오락실은 이달 8일까지 누적 방문객 수가 1만5000명을 넘었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방문객이 80%에 달한다. LG전자 관계자는 “친구들과 방문했던 20대 고객이 주말에 부모와 함께 다시 찾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9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금성오락실’ 입구. 뉴트로 콘셉트로 꾸몄다. 고석현 기자
삼성전자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자취생을 위한 ‘공유 주거공간’ 콘셉트의 ‘스마트싱스 X heyy, 성수’를 운영 중이다. 고석현 기자


삼성전자는 프롭테크(부동산 자산+기술) 스타트업인 트러스테이와 손잡고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스마트싱스 X heyy, 성수’를 운영 중이다. 자취생을 위한 ‘공유 주거공간’ 콘셉트다. 거실·주방·세탁실 등으로 꾸며진 공간 곳곳엔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TV·냉장고·세탁기·큐커 등 가전제품이 놓여 있다. ‘스마트싱스’ 앱을 열어 “빅스비, 나 퇴근했어~”라고 말하자 커튼이 열리고 조명이 켜졌다. 사용자가 집에서 안락한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가전과 주변기기를 생활 패턴에 맞게 조절해 주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개인 공간과 공유 공간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유 주택에서 스마트싱스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며 “특히 MZ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따로 또 같이하는 일상’을 가능케 하는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두 공간은 ‘최신 제품’을 전시하지만 정작 판매는 하지 않고, MZ세대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전업 특성상 MZ세대는 대부분 직접 구매층이 아니어서 당장 매출 확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제품 판매가 아닌 체험 위주로 팝업스토어 공간을 조성한다”며 “다만 이들이 5~10년 뒤 주요한 구매층이 되는 만큼 미래 시장을 위한 ‘씨앗 뿌리기’ 차원에서 경험 확대를 늘리고 있다”고 풀이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경기 용인 에버랜드 장미원에서 갤럭시 팬파티 '제각각 캠크닉'을 열었다. 사진 삼성전자

가전업 생태계 경쟁…MZ 겨냥한 ‘체험 마케팅’


MZ세대를 겨냥한 가전업계의 ‘체험 마케팅’은 더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LG전자는 ‘ThinQ 방탈출 카페’ ‘스탠바이미 클럽’을,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팬파티’ ‘갤럭시 팬파티 제각각 캠크닉’ 등을 각각 진행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올해 운영한 11곳의 체험공간 방문객이 10만 명을 넘는다. 이 가운데 80% 이상이 20~30대”라며 “가전제품의 주 소비층은 40~50대인데, 체험 매장에 젊은 세대가 몰린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체험 이벤트를 통해 장기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이채호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전업계가 단순 제품기능이 아닌 소비자경험 중심으로 마케팅 전략을 짜는 건 대단한 변화”라며 “체험을 통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퍼스널리티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체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기업들이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힙’한 분위기를 무작정 만들어 내는 것만으론 한순간 이벤트로 끝날 우려도 있다”며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을 세워 일관적인 이미지를 경험에 녹여 단계적으로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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