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대출, 가계는 예금 최대로...10월 역대급 '역 머니무브'
중앙은행의 긴축 속도전에 역대급 돈의 이동이 시작됐다. 지난달 은행의 정기예금에 56조원의 돈이 몰렸다. 역대 최대 규모다. 반면 채권시장에서는 돈줄이 마르며 회사채 순발행(발행-상환) 규모는 역대 가장 적었다. 채권시장에서 돈을 구하지 못한 대기업들마저 은행 창구를 찾으며 기업대출은 10월 기준으로는 가장 많이 늘었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10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931조6000억원으로 전달보다 56조2000억원이 늘었다. 2002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올해 들어 정기예금에는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올해 1~10월 정기예금에는 187조5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33조원)과 비교하면 유입액이 5.7배로 늘었다. 황영웅 한은 시장총괄팀 차장은 정기예금 증가에 대해 “수신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기업의 자금 유입 등으로 높은 증가세를 지속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시입출식 예금에서는 뭉칫돈이 빠져나갔다. 지난달 수시입출식 예금에서는 44조2000억원의 자금이 이탈했다. 지난 7월(53조3000억원) 이후 가장 큰 폭의 잔액 감소다.
은행 예금으로의 '역(逆) 머니무브'를 이끄는 건 큰 폭으로 뛰는 정기예금 금리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과 은행의 자금 유치경쟁 영향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9월 정기예금 평균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3.35% 수준이다. 10월 들어 시중은행 간의 자금유치 경쟁이 펼쳐지며 연 5%가 넘는 정기예금도 연이어 등장했다.
수시입출식 예금이 줄고 정기예금이 큰 폭으로 늘면서 대출 금리도 더 크게 뛰고 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정기예금 잔액이 늘어나면 은행의 조달 비용이 증가해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변동금리 대출의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예·적금 금리의 반영 비율이 가장 높다.
대출금리의 뜀박질에 가계대출은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10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58조8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000억원 줄었다. 10월에 가계대출이 줄어든 것은 역대 처음이다. 주택담보대출이 1조3000억원이 늘었고,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은 1조9000억원 줄었다. 기타대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11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올해 1~10월 전체 가계대출은 1조8000억원이 줄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올해 말에는 연간 기준으로는 처음으로 가계대출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가계대출의 빈자리는 기업대출이 채우고 있다. 지난달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13조7000억원 늘어난 1169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0월 동월 기준으로는 관련 통계 속보치를 집계한 2009년 6월 이후 최대치다. 자금시장의 '돈맥경화'로 회사채 발행 등이 여의치 않자 기업이 은행 문을 두드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기업대출 중에서는 대기업 대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10월 대기업 대출은 9조3000억원 늘며 중소기업 대출 증가 폭(4조4000억원)의 배 수준이었다. 대기업 은행 대출 증가 폭이 중소기업보다 큰 것은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올해 1~10월 대기업 대출 증가액은 37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증가액(7조7000억원)을 넘어섰다.
회사채 시장에는 찬바람이 불면서 자금 수요는 기업어음(CP)으로 몰렸다. 발행 부진이 이어지며 지난달 회사채는 3조2000억원의 순상환이 이뤄졌다. 순상환 규모로는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반면 CP의 경우 지난달 순발행(3조1000억원)으로 돌아섰다. 레고랜드발 자금 경색 우려에도 SK 등 대기업까지 CP 발행에 나선 결과다.
CP 물량이 쏟아지면서 신용등급이 가장 높은 A1 CP 금리(91일물) 금리도 연 5%를 넘어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일 CP 금리는 전날보다 0.04%포인트 오른 연 5.02%를 기록했다. CP 금리가 연 5%를 넘은 건 세계금융위기였던 지난 2009년 1월 15일(5.0%) 이후 13년 10개월 만이다. 지난달 4일 연 3.31%이던 CP 금리는 한 달여 만에 1.71%포인트가 뛰었다.
단기자금 시장의 불안이 계속되자 시중은행은 CP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시중은행장들은 이날 오전 김주현 금융위원장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서 “단기자금시장에 대해 은행권이 시장안정 역할을 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 지난달에도 4조3000억원 어치의 CP, ABCP 등 매입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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